정리의 달인
TV에 나온 달인이 알려주는
정리의 비법.
1년 동안 한 번도
쓴 적 없거나
손을 안 댔거나
본 적 없다면 과감히 버리기
이걸 본 엄마는 바로 일어나
책장에서 미라클 모닝 일기장 꺼내고
냉장고에서 할머니가 보내 준 김치를 꺼내고
옷장에서 55 사이즈 가죽 치마를 꺼낸다.
엄마는 금방 정리의 달인이 되겠는데
나는 과연 정리의 달인이 되는 게 맞나 싶다
내가 꺼낸 것은
10년 후 작가가 될지 모르는 내 일기장과
필리핀에 일하러 가셨다는 아빠 전화번호와
내가 태어나 처음 입었다는 배냇저고리이므로
언제부터인가 집에 많은 것이 쌓였다. 늘 그렇듯이 살 때는 모두 의미 있고 뭔가 해낼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하루 이틀 지나면 흐지부지해진다. 그렇게 쌓인 물건이 어느새 내 공간을 꽉 채운다. 보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잘 몰라 정리해야지, 버려야지, 누구 줘야지 하면서도 늘 그대로다.
바람 좋은 초가을 저녁 산책을 하다가 너무 슬픈 이야기를 접했다. 50대 남자가 외국에 가서 5년 넘게 살다가 한국에 다시 나왔는데 두 달도 못 버티고 다시 외국으로 일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외국에서 돈을 벌어 집에 보내주면서 5년을 살았는데 5년 만에 집에 오니 아내와도, 자식들과도 서먹서먹해져서 힘들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 없이 자유롭던 생활에 익숙해져서 때 되면 밥 해야 하고 자유롭지 못한 생활이 힘들겠지. 자식들도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아빠와 전화도 자주 했을 테고 전화에 대고 아빠 언제 와? 사랑해! 를 수없이 말했겠지. 오랜 시간 그렇게 되고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도 아빠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겠지. 삶에는 정답이 없지만 늘 어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질문을 하게 된다. 오늘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애를 써 본다. 그러다 꼭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나 싶다.
어른이 되니 정리할 것이 참 많아진다. 그래서 내 물건은 쉬이 잘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아이 물건은 정리를 못하겠다. 얘가 나중에 뭐가 될 줄 알고, 얘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얘를 위해 해주었던 것이 20년 후에 어떤 위로가 될 줄 알고 정리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나는 오늘도 정리의 달인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