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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지 Nov 20. 2024

오늘의 동시, 그리고 끄적끄적 4

선생님 없는 날


2학년 교실 안에는 스물 여덟 명이 있습니다. 이 교실 안에는 유튜버가 되고 싶은 다섯 명,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은 네 명, 로봇과학자가 되고 싶은 세 명 말고도 기타 잘 치는 의사,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줄 아는 사업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모서리만 둥근 네모난 책상에 앉아 

이십분 넘게 화면만 바라보는 활동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똑같은 책 안에 똑같은 테두리로 된 도안에 

색깔만 다르게 칠하는 활동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다섯 개 중에 한 개 맞거나 다섯 중에 틀린 것을 찾아

번호를 적는 활동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선생님이 아파서 학교에 못오면

여덟 살에 어울리지 않게 하루를 보냅니다.


유튜버도, 아이돌 가수도, 로봇과학자도, 의사도, 사업가도

잠시 잊고 하루를 보냅니다.




  학교에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성찰하는 시간이 따라온다. 담임을 할 때는 하루 중에 한 시간만 수업이 잘 되도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오를 수 있었다. 아이들 입에서 '아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그런 순간을 위해 매일 이런 저런 궁리를 하지만 애쓰는 만큼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애쓰는 그 마음에 쓰담쓰담하게 된지 꽤 되었다. 아직도 해보지 않은 시도들이 많아서 설레기도 한다. 그렇게 3월, 4월, 5월이 지나가고 슬슬 방학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몸에서 신호가 온다. 조금 쉬었다 가라고. 너무 힘들다고. 조퇴로도 안 되는 날이 있다. 도저히 몸을 일으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한다. 아이들은 잠시 잊고 나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런 날에는 아이들에게는 담임 선생님과 하는 수업이 아닌 보결 수업이 배정된다. 매시간 다른 선생님이 들어 오신다. 갑자기 학교에 못가게 되었으니 준비해 둔 것도 없다. 그러면 어떤 선생님은 영화를 보여주고, 어떤 선생님은 색칠 도안에 색을 칠하는 활동을 하고, 어떤 선생님은 시험지를 준비해간다. 아이들은 저마다 열심히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해낸다. 다음 날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다 "선생님 이제 출장 안 가면 안돼요?"하고 묻는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이 출장 가서 못 왔다고 했나보다. 선생님이 안 와서 재미가 없었다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씩 힘이 생겨난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궁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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