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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Oct 19. 2024

성격이 세 번 바뀌듯, 식성도 세 번 바뀌는 걸까?

요즈음 나는 본연에 가까운 맛이 좋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좋아하는 플리를 들으며 브런치를 켰다. 격무에 치이며 이런저런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요즈음에 글을 놓지 않았다는 게 큰 위안일까. 오늘은 가벼운, 하지만 중요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최근에 느낀 건데 근래, 그러니까 몇 달 전부터 입맛이 크게 바뀌었다. 
과거부터 따져본다면 지금까지 세 번의 입맛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서 재밌었다.
그 시기에 비슷하게 성격도, 하는 일도, 생각도 달라졌기 때문에.

음식이란 건 어쩌면 '욕망'의 가장 직관적 표현이기도 하니까
삶의 욕망, 에너지가 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지,
이십대 초중반, 소고기 애호가
출처: 핀터레스트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던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에도 나는 단연 소고기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말해준 에피소드인데 소풍에 갔다가 소고기가 든 친구의 김밥을 먹고 와서는 종일 그 이야기를 했더란다. 야채 김밥 보다는 고기 맛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나 역시 기억나는 에피소드인데,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일 때 들깨가루를 넣거나, 북어포를 넣어서 끓이는 편이었고 나는 소고기 미역국이 너무나 먹고 싶어서 '먹고 싶다'라고 떼썼다. 


결론적으론, 바다에 나는 것을 먹을 땐 바다에 나는 재료들로 끓여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논리에 밀렸지만, 이 두 가지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듯 어린 날의 나는 '강경 소고기파' 였다. 


출처: 핀터레스트

특히 숯불이나 불판에 맛깔나게 구워 소금만 딱 찍어 먹는 걸 즐겼는데, 이로 딱 베어무는 순간에 고기 본연의 육즙과 소금 간이 절묘하게 섞여 감칠맛이 제대로여서다. 육질을 음미하기에도 소금 간이 제격이었다. 


이 취향은 방송국을 다니던 이십대 중반까지도 계속됐는데, 스트레스도 많고 업무도 많았던 그 일을 하는 내내 기가 빨려서인지 매주 소고기를 구워먹었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하루 쉴까말까였는데 쉬는 하루면 꼭 집 근처 마트에서 호주산 소고기(한우는 비쌌고 미국산은 기름졌고 호주산이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담백한 맛이라 좋았다)를 사서 구워 먹었다. 단순한 한끼가 아닌, 한 주의 기운을 책임지는 보양식과 같은 존재였다. 그때 내게, 소고기란. 


출처: 핀터레스트

당시의 나는 차돌박이와 같은 얄팍한 고기는 취급도 하지 않았다. 


부위로는 부채살을 가장 좋아했는데, 내가 자주 가던 마트에서는 '오이스터 블레이드'로 포장되어 팔곤 했다. 쫀득한 식감에 즐겨 먹었고, 그 외에 갈비살도 참 좋아하는 부위다. 


어린 시절부터 이십대 초중반까지의 성격을 떠올려 보자면, 아득하긴 하지만... '승부욕'이 강하던 시기였다. 나는 빛나야 했고, 잘해야 했고, 내가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성미였다. 


'승부욕'이 워낙 강한 편이라 체육이나 게임 같이 아예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조차 두지 않았다.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해야겠다 생각한 것, 흥미 있는 것에 몰두했고 "선두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라거나, "잘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라거나, "하기로 맘 먹은 건 1등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들끓는 열의, 승부욕이 있는 한편으로는 그런 나의 '불도저' 같은 내달림에 짓밟혀 울부짓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잘해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못하면 나 자신에게 엄청난 욕설을 쏟아댔기 때문에.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의 대사 중 내가 참 좋아하는 게 있는데,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다. 


기억컨대 이 대사가 끝나고 미실이 지체없이 칼을 꺼내 누군가를 베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실수해선 안 되고 부주의해서도 안 됐다. 완벽해야 했고, 승전보를 울려야만 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욕망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연료를 넣겠단 차원에서 강경 소고기파가 되었던 게 아닐까. 뭔가, 원초적인 행위잖아. 고기를 뜯어 먹는다는 건, 남의 살을 잇새로 잘근잘근 씹어 먹는 건. 



날 것만큼 맛난 게 또 있을까?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회처돌이  
출처: 내가 가끔 기록하는 먹방 계정

소고기를 말할 때보다도 격하게 '회처돌이'라는 말을 실로 '처돌이' 수준이어서다. 위의 사진은 간간히 먹은 것들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는 인스타 계정인데 슬쩍만 봐도 회 사진만 그득한 걸 알 수 있을 거다. 


특히 좌측 상단에 자리한 저거, 민어회다. 여름엔 민어를 꼭 먹어야만 한다며 회사 퇴근길에 강남에서 노량진까지 지하철 타고 가서 민어회를 포장해서 다시 1호선과 4호선을 갈아타 당시 자취하던 경기도 어느 동네까지 갔던 추억이 깃든 사진이랄까. 쫄깃하니 맛났던 게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게, 회처돌이가 된 계기가 바로 민어회였다. 바야흐로 방송국을 그만두고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방황하던 시절에 지인을 따라 <자매수산>에 갔다가 민어회에 꽂힌 것! <자매수산>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서 웨이팅이 길길래... 못 간지 한참 됐다 ㅠㅠ 


광어나 연어, 우럭을 먹었을 때는 물론 맛이야 있지만 그닥 특별하진 않았었는데 제철 민어는 달랐다. 부레와 껍질을 같이 먹었던 그날의 기억은 정말... 환상 그 자체. 씹을 때마다 탱탱하게 튀어오르는 쫄깃함이라니..! 회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먹어서 그런가, 그 뒤로 회맛이 달라졌다. 


출처: 핀터레스트

고기 특유의 두툼한 밀도와는 달랐다. 고기는 씹다보면 아무래도 질겨지고 막판엔 더부룩해지기 일쑤였는데 회는 말 그대로 꿀떡꿀떡 넘어가고 소화도 잘 됐다. 


여름엔 민어회를, 겨울엔 방어회를 먹어야 한단 것도 회를 먹으러 다니며 '지론'처럼 생겼다. 봄에는 단연 도다리와 참돔이고, 방어회와 함께 겨울에 잊어선 안 되는 게 밀치회(가숭어)와 고등어회였다. 


특히 고등어회는 당시 살던 동네에 단골집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갔다. 양념장이 기가 막힌 곳이었는데 회의 신선도도 좋았다. 씹을 때 약간 부스러지면서도 마지막엔 탱탱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고 코끝에 살짝 스치는 등푸른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원래 내가 고등어란 생선을 좋아하기도 한다.


밀치회(가숭어)는 쫄깃꼬독함 때문에 즐겨 먹는데 간혹 숙성이 잘못됐거나 신선도가 별로인 집에 가면 너무 흐물거려서 별로였다. 가족들이 즐겨 가는 포항 죽도시장의 횟집에서 밀치회를 먹은 적 있는데 그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숭어회의 탄력은 역시 물가가 제일인 가보다. 


껍질이 살아 있는 참돔은 한 점씩 흥겹게 씹어 먹는 와중에 이에 걸리는 껍질이 정말 킥이고, 도다리는 배가 그리 고프지 않을 때도 수루룩 넘어갈 만큼 소화가 잘 된다. 광어와 우럭, 연어도 잘 먹긴 하지만 이건 정말 베이직한 맛이기 때문에 지금 언급한 회들을 더 좋아했다. 


출처: 핀터레스트

멍게, 해삼, 개불, 전복회, 해삼 내장(고노와다) 이건 뭐 없어서 못 먹는다. 


특히 개불을 정말 좋아하는데 시장에서 사도 가격 대비 양이 적은 편이라 한 점씩 먹을 때마다 소중하다. 이만큼 꼬독꼬독하게 잘 씹히는 식감이 또 있을까. 초장 찍어 먹기도 하지만 아무 양념 없이 그냥도 먹는다. 


해산물 특유의 바다 향을 좋아하는 편이고, 신선도가 좋은 회와 해산물을 먹었을 때 혀에 착 감기는 식재료들의 탄력이 좋아서다. 술 없이 맹물만 있어도 회와 해산물을 먹는다고 하면 이 애정이 설명 될까.  


이 즈음에 나는 회를 주 1-2회는 꼭 먹었다. 기억하기로는 스물여섯부터 서른둘까지 약 6년간 나는 회를 매주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회의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공공연히 회 먹으려고 돈 번다고 말하고 다녔고, 여의치 않을 때면 마트회라도 사와서 먹었다. 


놀라운 건, '알람시계'라도 입 안에 있는 것처럼 묘하게 회가 자꾸 땡겨서 달력이나 사진첩을 확인해보면 귀신 같이 1주가 딱 지나 있었다는 거다. 혹은, 1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땡겨서 먹어댈 때도 있었지만, 1주의 알림은 정확했다. 


여기서 더 무서운 건 초밥이랑 회덮밥은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는 거다. 


출처: 핀터레스트

달로 따지자면 회는 4-6회, 초밥이랑 회덮밥은 못해도 10회 이상은 었을 거다. 먹었을 수도 있고. 


이 시절에는 고기마저도 회로 즐겨 먹었는데, 육회랑 천엽을 좋아해서 즐겨 먹었다. 천엽은 정말 기름장에 찍어먹으면 햐, 지금도 군침돈다. 그 돌기가 혀에 느껴지면서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랑 기름 향과 기름의 꼬소한 맛이 아주 트리플로 입을 즐겁게 해줘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육회 역시 육회로도 먹고 육회 비빔밥으로도 먹었다. 아, 이때는 육사시미도 좋아해서 가끔 지갑이 여유로울 때는 시켜서 치즈 얹어서 야무지게 먹었다. 뭉티기는 이따금 먹는 특식 같은 거였는데 아무래도 고기가 차지고 육질이 밀도있다 보니까 자주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출처: 핀터레스트

사실 회에 미친자였기 때문에 회처돌이로 표현하고 있지만, 해산물에 미쳐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익힌 음식을 꼽으라면 '해물찜'을 좋아했는데 꼭 아구가 들어 있어야 했다. 아구찜을 시키면 해물이 풍성하지 않아서 아구를 추가해서 먹었기 때문에 비용도 양도 장난 없었다. 


처음엔 동생과 함께 살아서 거뜬했는데, 혼자가 돈 뒤로는 매 끼니 양껏 먹어도 5-6끼니는 거뜬했다. 


해물도 좋아하지만 양념이 담뿍 밴 콩나물 맛으로 먹는 거기 때문에 처음에는 콩나물과 해산물들을 골라 먹고, 그 다음에는 취향껏 먹다가 마지막 즈음엔 꼭 양배추와 함께 냄비에 넣고 육수를 좀 더 해서(그래봐야 육수코인?) 탕으로 끓여 먹었다. 


해물찜은 회, 해산물보다는 덜해서 1달에 1번은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이 음식을 안 먹고는 그 달을 지나갈 수 없달까. 잊을 새도 없이 땡기면 아... 안 먹었구나 하는 수준이었다. 


출처: 핀터레스트

이 시절의 성격, 그야 말로 '깨발랄'이었다. 


술도 엄청나게 마셔댔고, 'E'를 사람화하면 그게 나였다. 흥도 많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모임도 즐겼다. 사람 관찰하는 게 취미였다. 


오죽하면 이 시절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소개팅을 'JOB토킹'라고 말했다. 잘되건 못되건 생전 첨보는 사람이랑 여러 이야기를 하고 대부분 나와 직업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배경의 다른 직업의 다른 성격의 사람과 말하는 거잖아. 직업부터 여러저러한 잡토크들을 하는 건데, 재밌었다. 


인터뷰하는 기분? 인물 연구하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글 쓰는 사람이라 캐릭터 수집은 필수여서 더 열의에 불탄 건지도 모른다. 브런치에도 글로 남겼는데 살롱 문화의 최전선에서 온갖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가하고 다닌 시기가 이때다. 


약 6년간, 나는 정말 '모임'에 빠삭한 사람이 되었고 모임장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어떤 모임원은 그 시절의 나에게 '레몬' 같이 상큼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내가 등장하면 시선이 확 쏠리고, 말을 꺼내면 알게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나. 화술도 많이 길러졌고 집중 받는 것도 즐겼고 내가 갖고 있는 여러 면 중에 '깨발랄함'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화사한 기세가 남다르단 이야길 가끔 듣는데, 내가 기분이 좋은 날엔 모두도 알 만큼 얼굴이 환하고 머리 주변에 꽃 달고 다니는 기분이랬다. 입체적으로 보일 만큼 주위의 컬러가 달라보일 만큼의 기백이었다고 친구가 평했는데 내 얼굴을 내가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소고기 애호가이던 시절의 내 성격이 '밟고 올라서, 1등이 돼야 돼'라고 외치는 선봉장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시절에는 'why so serious?'라며 꽃밭을 뛰어다니는 무희 같았다고 해두자. 


이 시절의 욕망은 사람 탐구 그리고 '주목 받는 즐거움' 더불어서 '자아찾기' 였다. 내게 맞는 옷을 찾아 헤매었고, 헤매는 와중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깨발랄력'을 꺼내서 애처럼 뛰노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아, 물론 일을 할 때는 각 잡힌 성격이란 점은 비슷했다. 일은 철저하게, 빈틈없이 해내야 하니까. 내게 일용할 돈을 주는 귀중한 회사라는 마음으로. 다만 하나, 보다 융통성이 생겼다. 과거에는 융통성 ZERO에, 거짓말 1도 못하고, 딱딱한 느낌이었다면 이 시절에는 일 할 때도 유드리 있게 능청도 부리면서 하얀 거짓말도 해가면서 살기 시작했다. 



회도 고기도 그닥... 알리오 올리오, 버섯, 두부가 최애
바로 지금 
출처: 핀터레스트

먹는 이야길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지만, 식성의 변화에 놀라워 하는 '지금'을 말해보겠다. 


크림, 토마토, 오일 중에 고르라면 원래도 오일 파스타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집에서 혼자 해먹을 정도까지 최애 음식이 될 줄은 몰랐다. 요즈음 가장 많이 먹는 게 아마 알리오 올리오일 것이다. 


냉동새우와 면을 같이 삶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알리오 올리오 소스를 넣고 볶아 먹는데 때에 따라 굴소스와 올리브유를 넣어서 볶기도 하고 올리브유에 고춧가루를 곁들여 볶기도 한다. 방식이야 어떻든 오일 파스타를 재택 근무할 때도 즐겨 먹는데 그닥 질리지 않는다. 


밖에서도 오일 파스타를 사먹는 일이 늘었다. 피자나 스테이크는 그냥 그런데 오일 파스타에 휘번뜩 눈 돌아가는 즁...! 아, 예외가 있는데 밖에서 먹을 땐 트러플이 들어간 파스타면 뭐든 좋다. 


트러플 특유의 향과 맛을 좋아하는 편이라 알리오 올리오와 트러플 크림 파스타 중 고르라면 고민 끝에 트러플 크림 파스타를 고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출처: 핀터레스트

자연스럽게 두 번째 최애 버섯으로 넘어가 보자. 원래도 버섯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즈음엔 고기보다 버섯이 더 맛있다. 최근 회식 때도 고기 집어 먹다 말고 구운 버섯을 소금에 찍어 먹으며 감탄했다. 


구운 버섯도 좋고, 샤브샤브나 탕으로 먹을 때처럼 끓인 버섯도 좋다. 


구워 먹을 땐 송화버섯, 송이버섯,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팽이버섯을 좋아하고 끓여 먹을 땐 종류 안 가리고 다 좋아하는데 미니 새송이나 느타리버섯이 특히 탕에 넣었을 때 맛있다. 


버섯을 듬뿍 넣은 전골류도 좋아하고 샤브샤브도 좋다. 샤브샤브 먹을 때면 고기보다도 야채랑 고기 먹는 맛이 취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트러플 오일 넣은 버섯 포케에 메밀면 추가해서 먹어봤는데 와, 예술이었다. 연어나 고기 들어간 포케보다 훨 배 맛있는?! 어쩌면 트러플과 메밀면의 시너지 효과일 수도 있다. 


면으로 따지자면 파스타면을 제외하고는 메밀면을 좋아한다. 메밀소바, 메밀냉면 같은 것들... 뭐랄까 메밀 특유의 질감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바로 그래서 평양냉면도 막 찾아 먹을 정도의 애호가는 아니지만 즐겨 먹는다. 특히 강남의 <진미평양냉면>, 그 근처에서 일할 때 자주 먹었다. 여긴 정말 은은한 육향과 간간하게 깔끔한 뒷맛이 맘에 든다. 


출처: 핀터레스트

사실 두부는 일생 좋아하는 최애 음식이다. 소고기 애호가, 회처돌이 시절에는 그 두 식재료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잠시 묻혔을 뿐. 갓 나온 뜨끈한 두부는 그냥 먹을 때도 많은데, 아닐 때는 살짝 데쳐서 간장이나 김치와 같이 먹으면 밥이 필요 없다. 


뭉텅뭉텅 썰어서 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밥보다 두부를 더 많이 먹겠단 심산) 아무 간도 하지 않고 퍼먹기도 한다. 두부가 사실 씹다보면 꼬소한 맛이 정말 잘 느껴지는 편이다. 쓰다가 느낀 건데 나는 약간 꼬소한 맛, 쫄깃하거나 쫀득한 식감, 부드러운 목넘김을 좋아하는 편인 듯? 


오죽하면 작년 겨울 혼자 강릉 여행을 갔을 땐 모든 끼니를 두부로 끝냈다. 초당두부를 먹고 싶어서 간 거기도 해서다. 초두부 먹고, 두부 전골 먹고, 순두부 젤라또 먹고... 행복했다. 중간에 간식으로 빵도 하나 먹어줬지만, 기억나는 건 두부뿐이다. 초두부가 정말 맛있었어서 또 기억나니까 배가 고파온다 ㅠㅠ 강릉... 주기적으로 찾는 혼여행지인데, 올 겨울에 또 한번 다시 가야겠다.  


출처: 핀터레스트

이건 바로 어제부터 시작된 건데 두유가 땡기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라떼류를 먹을 땐 두유로 바꿔먹긴 하지만 막 최애까진 아니었는데, 느닷없이 두유의 꼬숩한 맛이 마구마구 땡긴다니? 


아마도 목요일에 검은 콩 두유를 아침 대용으로 먹으려고 사갔다가 오후 3시 배고플 때 드링킹 해줬는데 그때 넘 맛났던 덕인 것 같다. 무튼 요즈음에는 강렬한 양념맛보다는 약간 밍숭맹숭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 게 좋다. 


과거에는 솔직히 매운 맛 중독자였기도 했고, 매운 맛부심이 있었던 터라 매운 갈비찜이나 매운 짜장면(최고가 4단계였는데 아마 3단계까지 먹었다, 회사 근처 식당이었는데 다들 2단계도 버거워했던...)을 주기적으로 먹었는데 요샌 일절 안 땡긴다. 


엽떡이나 신전 같은 매운맛 떡볶이도, 한때 최애였던 로제 양념도 먹어 보면 별 맛이 없어서 안 찾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고요하고 밍숭맹숭한, 꼭꼭 씹으며 음미해봐야 느껴지는 '간'을 좋아하는 요즈음 성격도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졌다. 

 

출처: 핀터레스트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할까. 본래 내 목소리가 여자 치고는 중저음인데, 그 중저음에 가까운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근래 많이 들은 말은 선생님 분위기 혹은 작가 분위기가 난다는 거였다. 


머리카락이 염색하지 않아도 염색했냐 소리 들을 만큼 새카만 편이고 얼굴이 흰 편인데 뉴트럴 톤이어서 줄곧 염색을 하다가 안 하기 시작한지 쫌 되었다. 지금은 이 검정 머리와 내 이목구비가 거울을 보면 참 잘 어울린다. 전반적으로 인상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작년과 다른 점이다. 


작년에는 비슷하게 걸치고 다녀도 반짝거리는 생명력이랄까... 그런 게 조금 더 강했다면 지금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뒤로 비껴나와 고요하게 서 있는 기분이다. 


모임을 하고 나돌아다니면서 너무 사람을 많이 만났고(아마 제작년 말에서 작년 말까지 한 해동안 만난 인원만 해도 백명은 넘을 거다), 사람들의 유형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람 탐구에 큰 열의가 없어졌다. 외양과 겉성격은 달라보일지라도 모두 다 애틋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컸다. 


모임장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고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다 보니까 모두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사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유독 튀어 보이는 사람들은 그만큼 결핍과 외로움이 큰 사람들이기도 했다. 


어떤 외양, 어떤 겉모습, 어떤 직업, 성격을 갖고 있든 모두가 저마다의 지옥 하나쯤 짊어지고 사는구나 깨달았을 때 너나할 것 없이 애틋해졌고, 사람을 객체가 아닌 전체로 보게 됐다. 개개인에 집중하기 보다 그냥 어떠한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면서부터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덜 쏟게 됐다. 


출처: 핀터레스트

본래 예민한 구석이 좀 있는 편이라 내 주위 사람의 변화(머리, 의상, 패션 등 외양적인 부분이나 오늘의 심경 변화 같은 심리적인 것까지)를 빠르게 캐치하는 편인데 요즈음엔 보여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해야 할 때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때에 대해 생각하고 대부분의 경우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이 예전만큼 무겁지 않고 오히려 침묵이 편하다. 


관계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하든 용 쓰고 힘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타인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내 내면으로 돌려 오랫동안 외로이 살아왔던 나 자신을 쓰다듬어줘야 할 때라는 것도 느끼고 있다. 이전까지 나는 날 몰아세우기 바빴으니까. 


잘 해내야 한다는 채찍질로 정신을, 정신없이 몰아치는 각종 스케줄로(회사 다니며 이게 가능하냐는 말을 들을 만큼 엄청나게 스케줄이 많았다... 오죽하면 친구가 에너지가 엄청나서 이걸 감당하는 거라고 말할 정도) 육체적인 에너지를 많이 갉아먹었으니, 지금은 회복해야 할 때라고 본다. 


지금 나의 욕망은 '꾸준히 써나가는 것', 그리고 '글만 써도 되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일을 위한 일을 하지 않게, 작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작가로서 글만 고민하며 살아간다면 좋겠다. 지금 내게 남겨진 '앞으로의 과제'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마흔까지의 유예기한을 주었다. 그 안에 등단과 더불어 살 길을 찾도록. 


지금도 따지자면, 등단을 한 상태이긴 하지만, 중장편 소설 한 권을 내 이름자로 내놓을 수 있는 '등단'의 찬스를 잡을 수 있게 내달려야 한다. 내달리기, 발 돋음하기 직전의 상태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현재 나의 욕망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에 가깝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 내 글로 나를 알리고 싶다. 허울뿐인 작가 말고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한 기틀을 닦기 위해서는 현 상황을 잘 버텨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 말이다. 


회사 일로 받는 스트레스가 그대로인 가운데, 몰아치는 야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내가 내년 초까지 완성하기로 맘 먹은 중편 소설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야 하는... 앞뒤좌우가 꽉 막힌 채로 '가능성'만 바라보고 단련하고 수련하고 또 쓰고 참아내야만 하는 시기를 보내는 건 참, 쉽지가 않다. 


하나 다행인 건, 자극적인 것보다 말갛고 적당히 간간한 것을 좋아하는 식성으로 변화한 것처럼 나의 성격 역시 예전처럼 불같거나 '모 아님 도' 식은 아니란 거다. 이전만큼 날 몰아세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예민한 나와 불도저 같은 나 사이의 조율점을 찾고 있다. 


출처: 핀터레스트

앞날은 모르겠지만 나니까 잘 될 거고 현실에 충실한다는 마음으로.


분산시켰던 에너지를 모조리 내게로 가져와서 습작하고 플롯을 분석하고 캐릭터에 골몰해야 한다. 차츰차츰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으니... 이 외에는 최대한 절전 모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일하면서 또 극도의 스트레스와 일종의 강박이 치밀어 고통 받으며 느낀 건데 내 안에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 완벽주의와 강박, 정리벽에 치어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미어캣처럼 바짝 긴장한 채로 또 다른 나를, 내 주위 환경을,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지켜보고 있는 가련한 아이 말이다.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건 참 어렵고, 실은 지금도 많이 내려놓은 게 지금이지만.... 이제 더 내려놓는다거나, 마음 수련 같은 걸 하겠단 거창한 맘음 없다. 그저, 평안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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