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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08. 2023

교사별곡

생일잔칫날의 짧은 생각

시끌벅적 9월 생일잔치가 끝났다. 아이들은 무거워서 들지도 못할 나를 가마를 태워주겠다고 너도 나도 내 옆에 와서 ‘한 번만’을 외쳤는데 양심상 도저히 아이들의 가냘픈 팔뚝 위에 올라설 수는 없었다. 생일잔치의 하이라이트가 가마 태우기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실망보다 아이들의 부상을 더 염려해야 했기에 실망하는 표정을 애써 등을 토닥여주며 진정시켜 주는 것이 나에겐 최선의 일이었다. 1년에 딱 한 번 있는 모두의 기념일. 소중한 추억의 물건도 보여주고, 생일편지도 읽어주며 즐겁게 생일잔치를 치렀지만 앞으로 매년 찾아올 생일날마다 가마를 태워주겠다고 덤벼올 아이들을 걱정하게 된 열음에서의 첫 번째 생일잔치였다.


그날 오후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혼자 하루를 정리하며 일지를 쓰다가 아이들이 보낸 편지가 돌연 생각났다. 어떤 내용일지 사실은 잘 알 것 같지만 나를 생각하고 편지를 썼을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하나 궁금했다. 대충 접어서 편지를 써준 아이들도 있지만 정성껏 그림을 그려주거나 편지를 예쁘게 접어서 펼쳐보는 것이 아까울 정도인 편지도 있었다. 하나하나 읽어보자니 미소가 번지고 빵 터지는 엉뚱한 글들까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도 비로소 열음의 식구가 되었구나!’     


어쩌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서로 마음을 열고 친해지기엔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는 4개월 남짓의 시간. 좌충우돌의 적응기를 거쳐가며 나는 시나브로 열음 속에 녹아들고 있었나 보다.  아이들의 웃음이 떠오르고, 선물을 건네는 수줍은 미소도 떠오르고, 때로는 대들며 반항적인 아이들의 저돌적인 눈빛도 떠오르지만 또 돌아서면 배시시 웃어주는 아이들의 뒤끝 없는 웃음에 결국은 무장해제되는 순간순간들이 떠오르며 내가 열음속으로 녹아들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교사로 이 학교에 왔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으로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사실은 나 또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이들의 모든 성장의 순간은 놀랍고 대견함의 연속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힘든 저항의 시간이 있을지라도 끝내 그것을 수용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는 건 그 마음을 알아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들이겠지만 그게 뭐라고 항상 감사하다는 얘길 듣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든 과정의 감동과 기쁨의 순간은 내게도 큰 감화를 주고 나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큰 감사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에 오버랩되어 내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감동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엄마’라는 세상 귀한 존재로 나를 만들어주는 내 아이와, ‘선생님’이라는 자리매김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아이들의 귀한 시선들이 어떨 땐 내가 감히 그럴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더욱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고자 분발하기도 하는 일종의 삶의 동력인 것이다. 내가 항상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이유이고, 내가 열음을 찾아온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생일편지를 다시 차곡차곡 정성스레 접으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려보았다. 나를 바라보며 살짝 흘리는 웃음들, 학교생활에서 문득문득 즐겁고 행복할 때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미소들, 무언가에 몰두하는 순간들, 조금씩 서로에게 편해지면서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다가오던 모습들까지 하나하나 떠올랐다. 매일 매 순간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지만 시간이 쌓여가며 또 그 모습들마저 사랑스럽고 귀하기도 하다.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도 매우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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