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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Mar 16. 2024

친구 되기

세연이는 뭔가 불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공을 들고 앞장서 가는데 뒤를 따라가는 이정이의 부름에 반응도 하지 않고 표정도 뾰로통해 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완전히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아이들이 무슨 일로 서로 마음이 상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축구를 하자고 나선 길 한복판에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는 곤란했다. 


 곁으로 슬쩍 아이들을 보며 느껴지기로는 공 때문에 생긴 문제 같아 보였다. 세연이는 학교에서 출발할 때부터 공을 독차지하고 들고 가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자신이 들고 있었으니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의지가 큰 것 같았다. 그런 세정이를 보며 이정이도 공을 들고 가고 싶었지만 세연이만 공을 들고 가고 있으니 자신도 한 번 들어보자며 계속 요구를 하는 모양새였다. 


 목적지는 축구장이었지만 도중에 만난 넓은 농구장을 보자 내 마음이 살짝 바뀌었다. 굳이 축구장까지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농구장은 넓고 심지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오히려 더 좋아하며 축구공을 들고 농구공처럼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공을 넣고자 하는 욕구가 다들 커서 열심히 공을 집어던지며 놀았다. 아이들이 비교적 순한 편이어서 서로 욕심내지 않고 양보도 잘하며 두 번씩, 세 번씩 교대로 넣으며 놀았다.


 몇 번 던지고 골인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이정이는 다시 축구가 하고 싶어진 듯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축구를 하자고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정이는 지난주에 아이들과 했던 축구 놀이가 꽤 재미있었던 기억 때문에 오늘도 그때처럼 놀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세연이는 새로운 놀이가 하고 싶었고 농구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것도, 공을 드리블하며 서로 뺏기 놀이하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공은 하나인데 하고 싶은 놀이가 각각 달라서 아이들은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싸움이 날 것 같아 결국 둘을 불렀다.     


“왜 서로 목소리가 높아졌을까? 누가 먼저 얘기해 줄래?”

 이정이가 살짝 눈치를 보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축구를 하고 싶은데 세연이가 안 하려고 해요.”

 세연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간단히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툭 던졌다.

“나는 농구가 하고 싶어요.”

“이렇게 서로 하고 싶은 놀이가 다를 땐 어떻게 하면 같이 놀 수 있을까?”

 그러자 이정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냥 저는 안 놀고 옆에 있을게요.”

 세연이는 이정이의 얘기를 듣더니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공을 들고 다시 농구장으로 달려갔다.     

 세연이와 해야 할 이야기도 분명히 있었지만 우선 이정이와 해결해야 할 얘기가 있어 세연이와의 얘기는 잠시 미루고 본격적으로 이정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정아, 너도 하고 싶은 놀이를 할 권리가 있어. 그냥 서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맞춰가면 돼.  하지만 서로 의견이 다르면 싸울 수도 있지. 친구들끼리 싸우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야. 싸우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더 많이 알 수도 있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해. 그래서 많이 싸워볼수록 더 친해지기도 해. 선생님도 친구들이랑 얼마나 많이 싸웠는데...”

“그냥 내가 안 하면 불편하지 않잖아요.”


 그랬다. 이정이는 오늘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 때도 불편한 마음이 들면 자꾸 놀이를 포기했다. 불공평하면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해서 풀어보려고 하는 노력도,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용기도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제에 다가가기 전에 미리 포기하며 조금씩 혼자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그럼 이정이는 친구들과 계속 어울리지 않고 지낼 거야?”

 이정이는 나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과장된 행동으로 이 이야기를 피하려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다른 주제를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본론으로 돌아와 이정이가 지금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규칙을 알려주며 같이 어울릴 방법을 고민해 보게 해 주었다.     


 이정이는 결국 세연이의 놀이에 맞춰 주었다. 하지만 둘 사이는 여전히 서먹했다. 사실 세연이도 정확히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할 수는 없었다. 세연이는 몸을 쓰며 노는 것이 매우 노련해서 좀 더 농구다운 놀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그 수준을 맞춰줄 수 없으니 세연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라는 것이 완벽한 조건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정이와 세연이는 오늘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도 예전의 친밀함을 찾지 못했지만 내일이 되면 서로의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좋은 친구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니 또 싸우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런 순간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될지 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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