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라면 순한 맛'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학기가 조금 지나고 난 어느 날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의 일과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 말에 집중하기보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엄하게 바라보는 나에 대해 아이들이 한 평가였다.
어떤 선생님은 신라면이고, 어떤 선생님은 불닭볶음면인데 나는 진라면 순한 맛이라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나?
‘뭐라고?’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동료 교사들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규율이 느슨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왜 나를 진라면 순한 맛이라고 할까? 이에 동료 교사들은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름의 분석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무섭다고 평가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 중에 한 아이는 스스로 해내는 경험이 적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 꽤 힘든 녀석이었는데 수업을 따라오게 하는 것도,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버텨서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어쨌든 나는 그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실랑이를 벌이는 편이었고 걸핏하면 도망가서 몸으로 막고 나서기도 했었다. 그 아이는 키도 150cm가 넘고 몸무게도 60kg이 육박했던 아이였는데, 그렇게 덩치가 큰 아이라서 그 아이를 제지하며 엄하게 혼내던 내 모습에 다른 반 아이들이 놀라며 코알라 선생님이 그렇게 무서운 분인 줄 몰랐다고 하기도 했다. 그랬다. 나는 마냥 순하기만 한 선생님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나를 무섭다고 느끼지 않을까?
최근 반모임을 통해 올해 아이들이 또다시 진라면 순한 맛 코알라 선생님에 대해 집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정도면 이제 나는 공식적인 순한 맛 교사가 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교실 안에서 지켜야 할 약속들을 무시하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한번 엄하게 약속을 되짚어 주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일러주기도 한다. 잘못해서 크게 혼이 날 때는 내 앞에서 울기도 했던 아이들이었다. 심지어 학습이 뒤처지는 것 같은 아이들은 따로 시간을 들여 수준이 비슷해질 때까지 연습을 시키기도 한다. 아이들은 사실 그런 과정들이 귀찮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할 텐데 그런 엄격한 교사에게 왜 진라면 순한 맛이라고 후한 점수를 줬던 것일까?
어쨌든 나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엄할 테지만 순한 맛이라고 불리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