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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May 07. 2024

아주 오만한 글, 명품학부모 안내서

15.  세상 돋보기 2

  덤(정)

  사과 장사의 신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사과 장사를 기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그의 사과는 겉보기에도 품질이 좋고 당도가 높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남이 안 가진 것을 가졌다. 외모가 흉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남달리 잘생긴 얼굴도 아니다. 그의 사과 트럭은 주로 사람들이 많은 아파트 단지 주변 한적한 도로변에 서 있다.

  그는 그의 고객들에게 매주 수요일 그 시간에 온다는 약속을 주었고, 그래선지 그의 고객들은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곳에 나와 있곤 한다. 그의 사과는 가격에 있어서 이미 큰 유익이 있음에도 항시 덤이 따른다. 덤은 모든 구매자들에게 주어진다.  이미 덤을 받은 사람 중엔 한두 개쯤 더 챙겨달라며 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는 ‘이 정도면 진짜 손해일지도 모른다' 면서도, 너털너털 웃으며 정말 사과 한 두 개를 더 덤으로 얹어주곤 한다. 그의 사과값은 물가가 오르거나 말거나 늘 같은 값이다. 덤을 한 번 더 빼앗(?)기면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내가 오늘 점심 짜장을 굶지 뭐’ 어쩌고 하며 고객에게 부리는 투정도 앙증스럽다. 그의 트럭은 언제나 일찌감치 비워진다. 따라서 그의 귀가도 늦지 않다. 그는 항상 웃으면서 그날 장사를 셈해보곤 한다. 날씨만 아니면 그는 장사에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에겐 손님이 항상 넘쳐 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항상 행복해 보인다.


  MZ세대로 대표되는 요즘 청년세대들은 매사에 셈이 분명한가 보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엔 눈길도 안 주는가 보다. 합당하지 않은 요구쯤은 가볍게 물리치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의 이러한 행동 문화를 당황스럽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의 분명하고 얄짤(?) 없는 결단성과 용기가 내심 부럽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아서,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처럼 행동해야 한다 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분명하고 똑떨어지는 당당함이 부럽다 한다.

  젊은 청년들이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어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유튜브 영상 서비스로 엄청난 구독자를 확보한 인플루언서로 등장한다. 빅 데이터를 이용한 수요와 공급을 분석하여 사업을 구상하고,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주식과 가상 화폐에 투자하여 수익을 모색한다. 또 기성세대가 흘려보낸 것들을 뒤져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곤 한다. 대단히 창의적이고 분석적이며, 용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 ‘덤’이란 정서를 활용할 줄 아는지는 모르겠다.


  흔히 학교라는 공간엔 신규 교사와 경력 교사가 혼재해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선 언제나 신규 교사의 새로움과 열정, 경력 교사의 노련함이 서로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요소이다. 그런데 경력에 상관없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기 있는 교사는 따로 있다. 물론 아이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새로운 수업자료, 아이들을 설복시키는 어린이 키 맞춤 설명 능력은 아이들의 수업 동기나 지적 만족도를 충족시키곤 한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할 순 있지만, 아이들이 진짜 좋아하는 선생님은 마음을 내주는 선생님이다. 정을 내주고 곁을 내주는 선생님이다. 물론 이것은 교사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다른 사람들이 요구할 순 없다. 순전히 선생님이 스스로 베푸는 ‘덤’인 것이다. 사실 아이의 마음은 선생님의 이 ‘덤(정)’으로 많이 크는 것이다. 덤은 따뜻하다.

  선생님의 엄중한 말, 냉담한 말투는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명료하게 만들 순 있으나, 선생님을 좋아하게 만들진 못할 것이다. 세상은 선생님을 지식을 파는 직업이라 말하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아이들에게 늘 정다운 말투를 내어 놓는다. 아이의 울적한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말을 건넨다. 아이의 성취나 마음씨, 작은 봉사에 갑절의 미소와 사랑과 격려의 말씨를 내어 놓는다. 아이는 부모가 사과 장수에게 받은 덤을 보며 가족들에게 기쁨을 쏟아놓는 것처럼, 부모에게 달려가 선생님께 받은 덤을 와르르 쏟아내 보이며 신이 나 재잘거린다. 아이의 부모는 다시 아이와 선생님을 싸잡아 칭찬하고 감사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이가 학교를 다녀온 날마다의 행복이다. 아이와 학부모는 ‘종교’처럼 선생님을 무한 신뢰한다.

  어떤 선생님보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는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가르치는 길이 정말 자신의 길이 맞는지 회의를 거듭하시는 선생님도 더러 만나곤 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선생님께선 고농축 지식이나 고도의 지식체계를 효율적으로 재구성하는 교재 연구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말 한마디, 감성적인 칭찬 한 마디의 ‘덤’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아직 깨우치지 못하신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덤’은 사과 장사의 신이 나 종교(?)가 되는 선생님 선생님의 사례를 살펴보았듯이, 그것을 받는 사람을 마냥 기쁘게 한다. 이처럼 합리적인 거래를 넘어서 제공되는 ‘덤’은 다시 ‘호감’이라는 정으로 되돌아가 는 순환체계를 이루게 된다. 사실 덤은 정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덤은 곧 정의 소통을 일으키곤 한다. 자식교육에 관한 한 학부모로서도 자녀에게 자주 ‘덤’을 계획하여 베푸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 자식 간의 정서적 교류를 매우 풍성하게 할 것이다. 자식을 정감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의미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의 선생님에 대해 이해하고 믿어주는 말을, 아이의 귀에 들려주는 부모의 긍정적인 말은,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을 선물하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 외의 ‘덤’이다. 학부모가 선생님 모르게 선생님께 베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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