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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Dec 17. 2022

더 나은 영어 공부를 가능하게 하는 '이것'

지니의 언어 탐구 영역

우리는 종종 우리가 목적하는 바에 따라 어떤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본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의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환자란 그의 수입과 직결되는 대상이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 내에 많은 환자들을 만나려 할 것이다. 그에 비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며 인류애의 실현을 위해 의사의 꿈을 키워 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어떨까? 분명 환자를 돈으로 보고 있는 전자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영어공부에 대한 인식



이런 모습들은 외국어를 배우는 환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우리에게 영어란 어떤 의미인가? 이제껏 내가 만나 온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란 "언젠가는 나도 잘하고 싶은 것"인 경우가 많았다.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나 목적에 대해 물어보면, 시험 점수 때문에, 취직이나 승진에 필요하니까, 멋있어 보여서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어는 우리에게 있어 "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도구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들은 자연스레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도구를 갖추고 있는 자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게 한다. 


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런 모습들이 반복적으로 비치고 있다. 누가 누가 영어를 잘하나? 누가 누가 발음이 좋나/ 누가 원어민 발음에 가깝나? 언제부터 영어를 그렇게 잘하기 시작했냐? 등등. 영어회화를 좀 할 줄 안다 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만 하면 빠짐없이 그를 동경하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잡힌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의식 저변의 영어 사대주의를 점점 더 곤고하게 한다. 



잘못된 인식의 폐해



영어와 관련된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실제 엄청난 문제를 가져온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를 좀 잘한다 생각하면 상대적 우월 의식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경우 박탈감을 느끼거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위험하다. 특히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후자를 더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인이니 한국어를 잘하고 외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한국어 발음에 익숙해진 조음기관이 영어 발음에 어눌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언어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이해하고, 실수해 가며 고쳐가면 되는 것을 영어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허용하질 못한다. 부끄러워 입을 떼질 못하고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다. 그런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게 될 리 만무하다. 



외국어를 잘하게 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내 발음이 얼마나 유창한지 자랑하는 장이 아니다. 외국인의 발음이 아무리 유창하다 해도 원어민이 듣기에는 외국인의 발음인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험뿐 아니라 일생을 통해 만들어진 사고체계와 접속된다는 의미이다. 더 크게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한 나라의 문화와 접속되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소통을 통해 나의 세계관과 다른 이들의 세계관이 조우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실로 엄청난 일이다. 내가 늘 맞다고 생각해 왔던 생각들, 혹은 당연시 여겨왔던 생각들이나 가치관에 금이 가고 좀 더 폭넓은 삶들을 혹은 가치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서도 다양한 방법들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외국어 공부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더 나은 영어 공부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 혹은 영어 공부를 하게 되면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진정한 언어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영어 시제의 과거형'을 익히는 모습을 보자. 예전 영어 공부법을 먼저 살펴보자면, 시제가 과거면 동사의 모습이 바뀐다는 설명과 함께 규칙 동사와 불규칙 동사의 변화표를 보고 암기하라는 요구가 주를 이루었다. 이를테면 "be동사가 과거형이 되면 (am, is)는 was로 are는 were로 변화된다. 그리고 말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에 발생된 일들에는 과거형을 써서 표현한다" 이런 식이다. 


그에 비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외국어 공부는 그 형태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음미할 수 있게 한다. 두 사람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다음 예문을 보자. 


1) Jinee is a Psycholinguist and Neurolinguist who is working at the Hong Kong Polytech University. (Jinee는  HK 폴리텍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심리언어학/뇌 언어학자이다.)


VS. 


2) Steve Jobs was an American business magnate, industrial designer, investor and media proprietor.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거물, 산업 디자이너, 투자자이자 미디어 기업인이었다.)


1) 번 문장에는 현재형 시제 is를 사용했다. Jinee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삶의 한 부분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사람에게는 "심리언어학, 뇌 언어학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인 Jinee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보고 하는 삶을 살고 있는 모습, 또한 현재도 그러한 삶을 살아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에 반해 과거형 was를 사용한 2) 문장은 어떠한가? 미국의 거물, 산업 디자이너, 투자자이자 미디어 기업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었던 한 남자,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한 남자가 그려질 것이다. 


문법 시간에 단순히 beV의 현재와 과거형의 차이가 실은 "치열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 vs. 굉장한 커리어의 생애를 살았으나 현재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아래 예문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이미지가 떠 오르는지 실험해 보자. 


1) I love you. 


VS. 


2) I loved you.



1) 번 문장은 현재형이 쓰였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 혹은 가족들 사이에서 꽁냥꽁냥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그에 비해 과거형이 쓰인 2) 번 문장은 어떠한가? 연인의 모습을 상상하였다면 한쪽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사랑이 식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친구가 "I loved him/ her"라고 표현했다면 그 말 저변에 이별의 순간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나도 그런 아픔이 있다면 공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표면적 언어의 차이를 보자면 시제의 차이밖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 그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 함축하는 내용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삶을 위한 언어 공부는 이러한 차이들을 이해하며 더 나은 나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된다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실수하는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멋지게 다가온다. 새로운 세계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한 문화의 사고방식과 사회적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이란 결국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던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사고와 문화, 약속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틀과 새로운 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니 외국어 공부할 때 우리가 범하는 실수는 "틀렸다, 잘못됐다"라고 인식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체계를 수용하고 있는 중이구나. 두 세계가 서로 만나는 과정이구나, 내가 그들의 사고 체계를 수용하고 있구나"로 이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외국어 혹은 영어를 배우는 목적, 외국어 공부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가 다른 학습 방법을 가능하게 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좀 더 큰 의미에서 외국어 교육, 영어 공부를 이해하고 그 성장 과정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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