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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Jan 22. 2023

목마른 빨강

아동미술학원일지



학원에 도착하면 자신의 옷과 가방을

제일 먼저 던져두고 격하게 입장하는 너였다.


인사도 어찌나 우렁차던지

인사말 대신 나를 툭 무심하게 때릴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등장 순간 우당탕탕 에 가까웠다.


8살 주변 친구들에 비해 큰 키,

그리고 빠른 말과 다소 어른스러운 발상을 가진 너는 우리 학원에서 제일 장난기가 많았다.

어쩌다 거친 행동을 할 때마다 너를 말리기 바빴고 종종 원내에서 친구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이나 의자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춘다거나

물을 마시러 나갔다가 정수기를 망가뜨리거나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거나 등

한번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정말 고된 친구였다.


그럼에도 네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자 특기, 취미가 미술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실력도 매우 잘하는 편에 속했다.

한번 집중력은 어려웠지만 승부욕도 많았고 관찰력도 또래보다 뛰어났다.


그렇게 산만한 네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존재가 바로 엄마였다. 통제가 어려웠던 만큼 나를 포함해 다른 선생님들과 원장님들까지 어머니께 당장 연락드릴 것이다라는 최후 호통을 칠 때가 많았다.


결국 같은 수업시간 친구들은 말썽꾸러기였던 너를 하나둘씩 싫어하기 시작했고, 수업 타임이나 요일을 바꾸거나 그만두는 등의 행동까지 이어졌다.

아이를 거부하는 선생님들도 많았기에 그나마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내 수업시간에 홀로 그 친구와 1대 1로 수업한 적도 많았다.


너에게 두 살 정도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동생과 어쩌다 시간이 맞아서 같이 수업하게 되면 이상하게 얌전했다. 그렇게 조금 진정 돼 보이는 날은 특별히 대화라는 것을 나눌 수 있었다.


“친구들 대신 동생이랑 수업하는 건 어때?

네가 오빠로서 옆에서 의젓하고 듬직하던데, 그렇게 수업하면 더 멋지고 재밌는 그림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


걔는 엄마한테 다 일러요.

성격도 엄마랑 똑같아요.


“그럼 오늘 잘 그린 그림을 너 동생이 멋지게 기억하겠네. ”


근데 선생님, 저 그림 잘 그려요?

우리 엄마도 알아요?


“당연히 아시지, 왜 그렇게 생각해?”


한참 우물쭈물 대답이 없는 너였다.

천덕꾸러기 같은 너는 마냥 밝은 친구인 줄 알았다.

그제야 너의 그림이 다시 보이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도화지는 마치 거울이었다.

너무 솔직하게 보이는 자신의 감정 혹은 고민 진심 등 그 자체였다.


원내에서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의 정체성을 좀 더

알고 이해하는 연결 수업이 참 많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면, 가족이나 반려동물 등 함께 같이 있는 인물이 꼭 등장하곤 했다.

너의 세상은 너 그리고 네가 가진 스마트폰 속 게임 캐릭터들 뿐이었다. 그럴 땐 항상 머뭇 거리는 너였고, 그림 속 너는 늘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빨간 옷을 실제로 입어본 적 없는 너였는데 말이다.


내게도 넌 마치 빨간색 같은 친구였다.

어린아이들 중에 원초적이고 강렬한 색상을 좋아하는 친구는 사실 드문 편이다. 그만큼 억누르고 있는 욕구, 속마음 같은 무언가가 남아 있음이 다가왔다. 나는 강인하고 역동적인 너의 외면만 보았다.


너는 그저 외롭고 서툰 어린아이였다.

자신의 그림을 바라봐준 친구의 칭찬이 어색해서

오버스러운 행동을 취한 것이었고 어쩌다 그 칭찬에기분이 좋으면 춤까지 추는 솔직한 친구였다.

그러다 점점 날카로워진 친구들의 시선이 무서웠던 너는 학원 밖으로 뛰어 나갔던 것이었다.


엄마는 날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의 엄마는 직장을 다니셨고,

그간 다니던 다른 학원에서도 산만하고 수업 진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퇴원당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나마 미술학원이 남은 마지막이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재능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젠 아니라고 다그치기보다 다독였고

점점 더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다가갔다.

얼마 후, 원내에서 한국과 과학을 주제로 외부 미술 대회 준비 소식을 들었고 열심히 너를 도왔다.

너는 처음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고, 큰 성취감을 느낀 듯 이후 더 적극적으로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고 주 5회로 연장하겠다고 했다.


맙소사, 사실 마냥 좋을 순 없었다.


어머님은 아이의 수상 소식 겸 커피를 사들고 재 등록 하러 오셨다. 신이 난 네가 엄마랑 같이 들어왔을 땐 누구보다 밝게 인사를 했다. 자신의 옷과 가방도 알아서 척척, 잘 걸어두고 정리도 했다.


“거봐, 엄마 말대로 여기 계속 다니니까 너 상도 타잖아 그렇지? 앞으로 더 잘할 거지? “


어쩌다 듣게 된 대화였다.

상을 탄 건 아이인데, 어째서 어머님 중심의 대화일까? 그 대화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아이도 내게 말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

네가 바르고 멋진 아이가 되는 것,

그래야 잘되는 것

그러면 성공하는 것,

그게 정답인 것,


“그럼 다음 달 2일부터 주 5회로 등록되셨고요, 커피감사해요 어머님.”


“아참, 근데 우리 00이 그림 잘 그려요, 상상력도 풍부하고 관찰력도 뛰어난 게 확실히 재능 있어요, 그래서 상 받은 건가 봐요 “


나의 의도를 혹시 알아들으셨을까,

그저 아이의 칭찬으로만 들으셨을까 하하 호호 웃으면서 나가셨다.

아이 중심으로 평가보다는 성과와 결과에 따른 칭찬을 더 해주셨으면 하기를 바랐다.


가족들에게 받은 그 사랑스러운 인정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더 열심히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애정해도 나는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어쩐지 다음 주가 되어도 아이는 학원을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뒤 어머님 관한 소식을 원장님께 전해 들었다.

최근 네가 아프면서 계속 붙어있는 동안 무언가를 느끼셨는지 아이에게 엄마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는 판단을 하셨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아이와 함께 주의력결핍 심리치료원을 등록하셨다고 했다.

아이의 심리 증상이 완화되면 다시 학원으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마땅히 마지막 인사를 못한 채 아직도 아이의 팔레트와 그림들이 원내 남아있다.


엄마가 바쁘고 힘든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얘기했던 너의 목마른 빨강이 예쁘고 붉은 사랑이 되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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