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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Feb 05. 2023

검은 심장을 가진 아이

아동미술학원일지




또래보다 일찍 성숙해진 듯한 너는

덩치도 큰 11살 남자아이였다.


핸드폰 게임을 매우 즐겨했다.

그림을 그리면 이것저것 게임 속 세상이

가장 커다랗게 나타났다.

거칠기도 했지만 때론 다양했다.

자신만의 세계는 있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와 지내지만,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고 했고 아이의 정서를 위해 어머님께서 학원을 등록하신 듯했다.


당시 학원의 아이들은 대부분 저학년과 유치부 애들이 많았기에 거의 선생님만 한 너라는 존재가 신기했다. 또한 자신의 또래도 없는 너였기에 걱정에 비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이때까진 미처 몰랐다.

아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제법 기특한 아이인 줄 알았다. 하물며 그런 네가 아동 미술 학원 근무 하면서 가장 힘들고 무서웠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된다.

네가 나를 악몽으로 이끌 줄은 전혀 몰랐다.


너에겐 독특한 화법이 있었다.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도 학원을 먼저 다녔으니

“선배님”이라면서 불렀고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편이었다. 그런 너의 존칭이 아이들에겐 장난처럼 친근했는지 이내 쉽게 잘 어울렸다.


그렇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성격이 된다면,

수업에서 선생님보다 그 아이의 말과 반응이 우선이 되는 주객전도가 될 때 있었다.


원래 고학년 친구들은 파랑반에 앉혀 원장님과 따로수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아이의 확고한 의사로 분홍반에 머물렀다.


그날은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한참 코로나가 돌고 있어서 한 초등학교 몇 학년 몇 반에 누군가 확진자 이러면 격리자로 구분되었기 때문에 다행히 등원한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원장님께서는 분홍반에 모두 모아 수업을 같이 하시게끔 했고, 유치부 7세 한 명과 너, 그리고 한 살 어린 10살 여자 아이와 셋이 수업을 시작했다.


11살, 10살, 7살이 함께 같은 수업은 할 수 없었기에

셋이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며 설명했다.

그러던 사이 7살 아이가 한 말이 화근이 되었나 보다.


”언니가 오빠보다 어린데, 그림 더 잘 그린다. “


7살 여자 아이는 최근 소아 ADHD 판정을 받게되어

치료 약을 복용하고 항상 학원에 왔다.


복용한 약 성분 중엔 아이를 졸리게 만드는 것이 있는지 매번 잠투정을 했고 그렇지 않기 위해 소근육을 적극적으로 쓰는 활동을 위주로 진행했다.


오늘은 약을 먹지 않은 것인지, 컨디션이 좋은 건지 유난히 말이 많은 하루였다. 아이의 어머님께선 아이가 튀는 행동이나 말을 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를 부탁하셨다.


“선배님이 먼저 다녔으니까 당연히 잘 그리겠지” 

한참 재잘 거리던 아이를

멀리서 굳이 대꾸하는 너였다.

순간 싸했다.


“얘들아, 지금 우리 다 같이 잘하고 있는 거야! 그니까 각자 본인 거 그림에 조금 더 신경 쓰자! “


“내 입으로 하고 싶은 말도 못 해요? ”

갑자기 엄청나게 날선 목소리로 벌떡 일어나는 너였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자리에 앉아. 그리고 불만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정중하게 이야기해야지.지금 이건 싸우자는 거 같잖아“


”잘못은 쟤가 했는데요? 7살짜리가 나한테 뭐라고 시비 걸잖아요.”


“시비 건 거 아니야. 그리고 너는 미술학원에 다닌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우리 차근차근해보면 되지, 쟤는 유치원 때부터 여기 오래 다녔던 친구야. 우리 더 잘 할 수 있어“


“저게 시비건거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도 시비 거는 거잖아.”


아이가 나를 “너”라고 했다.

아이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고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는지 앞에 앉아있던 10살 아이도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지랄이야. 우리 엄마도 나한테 뭐라 안 하는데”


솔직히 그림 못 그리는 애긴 했다.

11살 아이가 사람 얼굴, 이목구비 팔다리 하나 온전히 못 그리는 아이였기에 7살 아이가 썩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일까


본인이 못 그리기 때문에 학원을 등록했다는 사실은스스로 대부분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날 서게 다가왔나 보다.


그럼에도 너는 나에게 덤볐다.

그러더니 이내 너는 7살 아이가 쓰던 가위를 채갔다.


“그럼 내가 죽여버릴 거야” 


그 가위를 들고 7살 아이를 향해 돌진했고

나도 이내  뛰어들어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쟤 목을 따서 서걱서걱 잘라버릴 거야!”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이는 극도로 흥분했고 7살 아이도 놀래서 내게 달려왔다. 너무 순식간이라 내가 원장님을 부를 틈도 없었다.


10살 아이 또한 무서웠는지 구석에서 숨죽여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쿠당탕하는 의자 소리들과 함께 나는 이내 바깥의 원장님에게 소리를 질렀고, 원장님이 아이를 빠르게재제했다. 가위를 든 아이와 나도 몸싸움을 하던 중 손에 상처가 났고 원장님 또한 그랬다.


11살 남자아이의 힘은 강했다.

너무 무서웠다.

수업이 없는 초록반으로 따로 격리하였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소리를 질렀고

다른 옆반 아이들도 이 상황을 고스란히 바라보며 공포에 떨었다.

그 난리 사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중 본인 어머님께 또는 경찰에 신고한 아이들도 있어서 상황이 더 커졌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남자아이의 어머니였고,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도 어머니라는 사실을 단번에알 수 있었다. 다친 선생님들께 사과 하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셨다.


마치 빈번하게 이런 일들이 많았던 것처럼,

아이의 어머님께선 돈을 더 줄 테니 원장님께 1대 1

수업을 요구하셨고, 원장님은 결국 등록 원비 때까지 남은 2회만 그렇게 수업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또한 원장님은 어머님께 나와 당시 같은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있는 시간대를 피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어머님은 되려 기분 나빠하셨다.


자신의 아들을 정신 병자 취급 하는 것이냐며 따지셨다.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서도 운운하셨다.


“어머님, 아이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병자가 아니라 이를 알고 바로 잡고 아이를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그 시작은 아이를 인정하는 거고요,


“00이로 인해 놀랜 3명의 아이가 이번 달 휴원하고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아직도 아이를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


라고 단호하게 말씀 드렸음에도

어머님은 별다른 사과하지 않으신 채,

아이를 데리고 그대로 원내에서 영원히 사라지셨다.


가슴 아팠지만,

나에게도 검은 상처가 되었던 하루였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죄책감에 아동미술을 그만 둘 뻔했다.

놀란 나를 위해 원장님께서는 따로 휴가를 주실 정도였다. 부모의 역할을 선생님이 다 해줄 순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임에도 요구하신 선생님의 역할엔 마치 엄마의 역할과 다름 없어 불편했다.


뭐가 그렇게 너를 화가 나게 만들었을까,

남몰래 꺼멓게 물 든 너의 심장을 들여다봐달라는 너의 외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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