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미술학원일지
너는 곱상한 외모와 곱슬 머리의
조용하고 낯도 많이 가린 귀여운 사내 아이 였다.
그런 네가 함께 손 맞잡고 학원을 등록한 아이는 너와 사촌이라고 했다. 종종 동생이나 형제 관계가 함께 등원하는 경우는 봤어도 사촌은 처음인지라 인상 깊었다.
어머님 두 분은 자매로 사촌 아이는 너보다 훨씬 목소리도 크고 당찬 아이였다.
너는 마치 동갑내기 친구이자 가족인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따라온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은 내가 학원에 출근하고 일주일도 안돼서 처음 상담하고 등록까지 하게 된 나의 첫 신규생이었다.
그날은 각자 지정하여 뽑은 사물의 이미지를 관찰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네가 집어 든 물건은 "우산"이었다.
너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지우기를 매번 반복했고 그러다 종이가 많이 긁혀 물감 하기 어려운 적도 참 많았다.
내성적인 친구들은 도화지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워지기까지 오래 걸렸던 아이였다.
조심스러운 성격마저도 너무 귀여웠다.
요즘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은 자유로운 표현의 수단이 아닌 타인에게 평가받는 수단인 적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너와 같이 다니는 사촌도 어쩌면 힘께 늘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둘은 완성 그림을 촬영하는 날이면 내게 그림을 들고 와서 누가 더 잘 그렸냐고 묻곤 했다.
둘 뿐만 아니어도 최근 수업 중 오늘 제일 그림 잘 그린 사람을 골라달라는 요청이 많아 자주 난감했다.
나에게 매일 1등을 지정해 달라고 하는 아이들
어른들이 1순위만 인정하고 기억하는 분위기의 사회를 만든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아픈 순간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제일 잘 그림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물었다.
그럼 제각각 의견이 달랐다.
"00 이가 그린 여기 색깔이 제일 예뻐요, 00 이가 그린 손은 진짜 같아요" 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이야기했다.
"각자 잘하는 부분이 다르듯이 각자 매력이 있는 거야. 선생님은 너희를 가르치는 사람이지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내가 건넨 이야기는 너에게 가장 크게 스며들었구나 알 수 있었다.
너는 잘했는지 확인받고자 하는 인정보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먼저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너의 언어는 많은 친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나는 항상 너에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는 칭찬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사과”를 그려보자 하면 사과 그대로를 그리는 아이가 많았지만, 너는 사과를 반으로 가르거나 혹은 사과 속에 살 수도 있는 애벌레 이야기를 하거나 다양했다.
그렇게 시작한 너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었다.
요즘 학원에서 가장 많이 재잘거리고 가곤 한다.
그리고 항상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장난치고 가더라도 나를 꼭 안아주고 간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나의 이야기가 스며들지 않았다기 보단 스며들기엔 너무 어려운 견고한 기준이 있었다. 보통 그런 경우 아이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소통하는 “엄마”의 화법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드러난다.
아이들의 원동력은 대부분 부모님의 인정과 칭찬에서 자극된다. 네가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던 고래 풍경 그림을 한 번 더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어느 날 학원의 한 여자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왜 화장했어요?”
“선생님 남자 꼬시려고 화장한 거예요?”
일하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순간이었다.
나의 대답은 또 다른 너의 언어가 될까 너무 난처했고 두려웠다. 그 상황에 너도 있었다.
내가 허둥거리며 당황한 모습이 눈에 보였는지
네가 내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선생님 눈이 오늘 별이 박힌 것처럼 예뻐서 그래요 “
어른이 된 나에게도 칭찬은 들을수록 새롭고
매 순간 설레게 다가온다고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곧 타인에 대한 인정일 때가 많다.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일 수도 있다.
아이가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그 아이 또한 타인에게 칭찬 하는 방법을 쉽게 익힐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그림이 더 이상 평가받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치레의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상대를 위해서칭찬하고자 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부터 잘 알아야 했다. 나를 아끼고 칭찬해 볼수록 타인의 장점과 매력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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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고 스스로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나조차도 많이 반성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