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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un 02. 2024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구나2

(타카하타 이사오 展을 다녀와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이 사라지던 시절의 다마 구릉지를 무대로 살 곳을 잃어버린 너구리들이,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변신술을 이용해 인간에게 대항하는 이야기다. 장편인데 박장대소하면서 보았다. 너구리들이 네 가지 형태로 변해서 살짝 정신없긴 한데 너무 재밌다. 총 천연색만화 영화만의 매력 넘치는 터치로 그렸다. 타카하타는 극단적인 환경변화가 너구리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라는 시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타카하타는 한 작품당 수년을 투자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며 제작하느라 항상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한다. 도슨트 말로는 미야자키가 흥행해서 번 돈을 타카하타 작품 제작비에 투자해도 부족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너구리들이 결국 인간에게 무참히 죽게 되는데, 많은 걸 생각하는 묵직한 애니로 기억에 남았다.     

 

타카하타는 도쿄대 불문학과로 애니 연출 하는 사이사이 번역도 하고, 다수의 책도 쓰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등 쉬지 않고 도전하며 움직인 행동가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애니메이션 표현 형식을 탐구했는데 인물과 배경이 일체화한 스타일을 모색해 오다가 드디어 이웃집 야마다 군과 가구야공주 이야기로 결실을 맺었다.' 인물-셀화', '배경-배경화' 이 둘이 합쳐 애니가 이루어지는데 그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손으로 그린 선을 살린 수채화풍 화법에 도전해, 종래의 셀화 양식과는 다른 표현을 달성했다.      

이웃집 야마다 군

이시이 히사이치의 동명 4컷 만화를 원작으로 야마다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장편영화로 만들었다. 셀화가 아닌 컴퓨터 채색으로 손 그림의 수채 터치를 표현하는 기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작품도 보는 내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인물이 삼 등신이고 보통의 남편과 아내가 나오는데 정말이지 조금의 판타지도 없고, 억지로 신파를 자극하는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일상, 그것도 아주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게으르지만 남편은 회사를 다니고, 아내는 살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늦게 퇴근하자 아내는 밥을 먹고 올 줄 알고, 부엌에 음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마침 바나나 하나가 남아서 그거라도 먹으라고 주니 남편은 일하고 온 사람한테 이게 뭐냐 말하면서, 서로 피곤해 쓰러져 자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다. 티격태격하다 남편이 어느 결혼식에 가서 축사를 해야는데 메모를 집에 빼놓고 가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장면은 웃음이 나면서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족의 일반적인 소소한 모습을 통한 타카하시의 인간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도슨트는 타카하타의 애니는 ‘가구야공주’에서 시작해서 ‘가구야공주’로 끝난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입사했던 곳에서 일본 전설에 나오는 가구야공주 제작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의 뜻이 거절되어 이루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나 수많은 작품을 직접 만들면서 최고의 기량과 기술 그리고 관록을 갖추었을 때, 드디어 본인이 원하는 가구야공주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만들고 5년 후 그는 타계했다. 이웃집 야마다 군에서 키운 표현을 바탕으로 더욱 진화시켰다고 한다. 

타케하타의 말씀

"그림-스케치, 즉 活事다. 지금 이 순간을, 대상을 포착하려고 한다. 선과 담채와 여백에 의한 활사가, 여러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 애니 제작만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얼마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스릴 넘치는 모험의 양상을 위해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애니를 보면서 기존의 애니와 다른 기법이 특이하면서도 눈에 익지 않아 처음에는 몰입이 잘 안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몰입해 내용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혁신적인 기법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고 한다.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되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니, 정말 특이하다. 보통은 몰입되게 하라고 주문할 텐데.     

타카하타는 프랑스 출신의 캐나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프레데릭 백을 스승으로 삼았고, 편지도 주고받았다 한다. 

그의 작품들의 귀결은 판타지나 해피엔딩도 아니고 이분법적이지도 않고 평범하게 결말을 맺는다. 


인생은 길고 우리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고, 현실은 이렇다는 담백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일생을 통해 리얼하면서도, 그와는 반대로 ‘여백의 미’를함께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82세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의 존재의 무거움을 생각하면 짧게 느껴진다. 영원히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시간은 흘러간다.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쌓아온 그의 업적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가 사색하고 연구하고 애니에 혼을 불어넣으려고 심혈을 기울인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애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실사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표정과 제스처가 재밌고 애정이 가기 때문이다.


조만간 그가 남긴 작품들을 다시 하나씩, 알고 보는 재미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타카하타이사오전 #가구야공주이야기 #이웃집야마다군 #폼포코너구리대작전 #히사이시조 #재패니메이션 #미야자키하야오 #애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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