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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Jun 25. 2024

급변한 환경에서

나와 아들의 특별한 여름방학


온도와 습도가 아직은 괜찮은 아침이다. 일어나니 아파트 앞 베란다 쪽엔 달이, 뒤 베란다에는 해가 떠 있었다. 신선한 바람이 불고 아침햇살에 6월의 나무들이 초록빛을 드러낸다. 어젯밤의 무거운 기분도 날아가는 듯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지만 지금의 내 환경도 그렇다. 몇 달 동안 엄마로서 거의 최소한의 수준만 유지하며 내가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하다가 다시 엄마로서의 역할이 두 세배로 불려 눈앞에 확 들이밀어졌다. 대학생 큰아들이 방학과 동시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 한 달을 집에 꼼짝 마하게 됐다. 동시에 엄마인 나도 꼼짝 마 환경이 됐다. 공동운명체다. 


 아들도 나도 아파하고 속상한 단계는 조금 지났고 다리 한쪽 다쳐 못 움직이는 게 이렇게도 엄청난 일인지 서로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우선 나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야는 데 아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나의 수면 시간대가 흔들리고 있다. 아들 방이 조금 떨어져 있어도 밤이라 게임이나 통화하는 소리가 소음으로 들려 자다 깨다 한다. 한 번은 화가 나서 뭐라 했는데 짠한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으로 더 피곤해진다. 밥 세끼를 다 차려줘야 한다. 내가 하던 일도 취소하거나 미루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어제는 병원에 내원해 소독하고 상태를 보러  다녀왔다. 병원 1층에서 휠체어를 빌려 밀고 다니는데 키가 180이 훨씬 넘는 아들은 다리가 길어 앞사람과의 간격이 가늠이 안 되어 몇 번이나 부딪힐 뻔했다. 아들은 ‘어어 엄마 앞에 좀 보고 다니세요’라고 훈계한다. 번호표 뽑고 정신이 없다. 학교에 제출할 서류가 있다 해서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하며 한 시간 이상을 달려갔는데 거기서는 또 엄청난 일들에 봉착했다. 일단 점심시간이라 밥부터 먹자 해서 아들이 좋아하는 식당에 주차해서 올라가는데 아뿔싸! 건물이 특이해서 엘베 타려면 몇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 모르다가 아들이 한 다리로 깡충거리며 올라가는데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밥이 안 넘어간다. 실제로 밥은 왜 그리 맛이 없는지. 맛없다고 말하면 더 맛없을 거 같아 그냥 먹었다. 학교 학생회관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데 맙소사! 주차장이 길고 좁아 아무 생각 없이 끝까지 들어가는데 세상에! 자리가 없다. 일단 먼저 볼일을 보고 얼른 나오자 싶어 주차하고 나오는데 돌릴 데가 없어 그 길고 좁아터진 길을 후진으로 나오느라 진땀 뺐다. 아 운전 솜씨 장난 아니다. 그사이 아들은 왜 이렇게 안 오냐 전화한다. 이런! 


 학생회관에 들어가니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건물이라 엘베가 없다. 그 비싼 등록금 받아서 엘베 좀 만들지! 계단은 목발이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간신히 목발과 깡충 걸음으로 올라가는데 너무 안쓰럽고 이렇게까지 불편한 상황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2층에 가서도 볼일보다는 의자부터 찾고 있는 나. 볼일이 싱겁게 끝나고-꼭 본인이 와야 한다면서 그다지 신경 안 쓰고 관계자들이 서류만 받아 갑자기 화가 나려 한다-다시 내려오는데 계단이 갑자기 깎아지른 벼랑 느낌이다. 우리는 이를 어째하다가 목발을 내가 가지고 내려가고 아들은 난간을 잡고 간신히 내려갔다. 휴~ 내려와서 다시 목발을 잡고 걸어가는데 밖에 드디어 장애인 휠체어 다니는 곳이 눈에 띈다. 안 보이던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이 이렇구나. 자기에게 닥쳐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구나. 


 모든 볼일을 마치고 차를 운전하며 오는데 몇 시간 신경 쓰고 다니느라 피곤이 몰려왔다. 아들은 몇 마디 하다가 갑자기 졸리다며 자장가 클래식을 틀어놓고 잔다. 그 음악을 들으니 나도 너무 졸렸다. 자기 운명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자는 태평한 아들. 나는 졸면 안 되니 사탕을 입에 물고 졸린 음악을 껐다. 아들이 자니 잠 깨는 음악을 틀 수도 없고 창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며 잠과 씨름한 채 차를 몰았다. 집에 오자마자 녹다운됐다. 


 갑자기 뒤바뀐 환경에 피곤이 몇 배로 몰려온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요즘 계속 덥다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살던 큰아들이 여자친구랑 통화하느라 방문을 닫고 소곤거리고 있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할 때는 안 덥구나! 뭔가 특별한 저녁을 작은 아들과 만들려다 기름만 사방에 날리고 있는데 큰아들이 배고프다고 나온다. ‘좀 만 기다려’ 더운 데다가 음식이 잘 안 되어 퉁명스럽게 말이 나간다. 간신히 복구해서 먹고 나니 치울 게 산더미다. 바닥도 닦아야 하고 한 시간을 치우고 닦는데 발바닥이 아프다. 요리 도전은 금물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아 쉬고 싶다. 거의 다 치우고 있는데 금세 배고파진 아들이 다시 나온다. 하~ 젊은 식욕이여. 크루아상 두 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건네주고 방으로 들어와 누워버렸다. 체력 고갈이다. 


 조금 있으니 게임 시작하는 소리가 난다. 에구 저 소리도 익숙해져야지 할 수 없다. 난 엄마니까. 그리고 누구보다 갑갑하고 힘든 건 아들이다. 작년과 재작년에 언니들이 다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백분의 일 정도 알 듯하다.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와 큰아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몇 가지나 있었다. 함께 즐기며 가치 창조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지금은 한여름이지만. 아! 여름은 반드시 가을이 된다로 생각하면 되겠구나. 우선 산에 다녀와야겠다. 엄마 체력이 중요한 시기니까 더더욱. 밖을 보니 주말농장에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나와 아들에게 특별한 여름방학을 하루하루 지지 않고 걸어가야만 한다. 뚜벅뚜벅.


 












#특별한여름방학 #더건강해질아들 #인내 #체력이중요해


#신선한아침 #뚜벅뚜벅 #다리가정말중요해 #가치창조


#주말농장 #공동운명체 #해와달 #안보이던게보여요


#지금은견디는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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