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은 멈추는 것이 아니다

2025. 11. 17.

by Grace

11월 13일. 올해의 수능이 지나갔다. 학생들이 그렇듯이, 선생님도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 왔던 시간과 압박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휴식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일대일 과외로 3명의 고3 학생과 재수생을 가르쳤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3일을 기점으로 수업이 많이 줄었고, 그간 3시간에서 심지어 5시간 이상 연속으로 쉬지 않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하루에 1개 많으면 3개 정도의 수업을 진행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중간중간 딴청을 피우거나 잠시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쉴 수 있었지만, 수업은 그렇지 못하다. 수업은 내내 늘 학생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쉴틈없이 진행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1시간은 그 이상의 무게와 긴장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대학 졸업 이후로 대략 15년 이상을 일해 왔던 것 같다. 그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고, 결국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래서 15년이라는 시간의 밀도는 높았고, 그 15년을 구성하는 하루의 밀도도 높았다. 심지어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고, 별달리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 피로와 스트레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축적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지금의 나는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거나 짜증이 나게 되었다. 일 자체가 지긋지긋해지고 지루한 것이라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왜 마음껏 쉬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쉬면 누가 나를 먹여 살려?'였다. 물론 건강 문제로 1년간 일을 하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당시 아버지께서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 줄 테니 쉬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내심 나는 아버지를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나에게 늘 불안하고 아이 같고 철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땐 물리적으로 쉬곤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늘 일을 하는 상태였다. 계속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면접을 보고, 취업 공부나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결국 그 시간은 내게 이름만 휴식이지, 실로는 일하는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근거 없는 믿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이 세상의 누구도 나를 책임지거나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가엽고 불쌍한 생각인가. 내 머릿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던 이 생각이 내가 끊임없이 발전하도록 한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나의 정신적 탈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던 내가 '휴식'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재정비하는 시간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바로 남편을 만나고 나서부터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일하고 싶지 않다, 쉬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남편은 나에게 과거의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나에게는 자신에게 얼마든지 기대도 된다는 말로 들렸고, 실제로 내가 남편에게 기대었을 때 남편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일을 줄였을 뿐이다.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거나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시간과 양만큼만 일하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음악을 듣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 매일 저녁에는 남편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주말에는 근처 공원이나 주변을 산책하며 바람을 쐰다. 어쩌면 그렇게 특별하거나 엄청난 휴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큰 에너지를 주고 있다.


그간에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예를 들어 인간관계나 정신적인 피로함, 직장 내에서의 갈등이 생기면 모두 내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책을 읽으며 이러한 모든 일이 나만이 경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통과의례처럼 자연스레 겪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 몰랐는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어렸을 적의 내가, 과거의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했는지 떠올리게 되었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해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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