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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26. 2023

태국 치앙라이, 택시 기사의 꿈

살림남의 방콕 일기 (#183)


치앙라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한 곳을 선택한다면 매파루앙이다. 매파루앙은 라마 9세의 모친 스리나카린드라 왕태후의 별칭으로 하늘에서 온 어머니란 뜻을 가지고 있다. 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왕이었던 라마 9세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특히 치앙라이를 사랑했다. 그중 아편으로 중독된 약자인 소수민족의 치유와 회복에 힘써 양지보다 음지를 위왕실의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매파루앙은 지역 전체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소수민족의 아편 농장을 왕실의 별장으로 만들고 양귀대신 계절마다 꽃피우는 아름다운 난을 심었다. 왕실의 거처가 자리 잡으니 자연스럽게 아편대향기 좋은 커피나무와 차밭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흔한 산속 정원이지만 숨은 이야기를 알고 나니 왜 그리 아름다운지. 마치 무미건조한 토스트 위에 부드러운 버터와 잼을 올리니 풍미와 맛이 살아난 느낌이다.


쿤사는 마약왕으로 악명 높았던 미얀마 무장단체의 수장이었다. 그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인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소수민족의 노동력을 이용해 많은 아편을 재배하고 밀수하였다. 매파루앙은 메콩 강과 인접하고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아편 생산지로 쿤사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역설적이게도 쿤사가 아편을 위해 운영하던 용병훈련소는 이름마저 아름다운 매파루앙에 있다. 왕실별장에서 미얀마 국경으로 구불구불 가파른 길을 1시간 넘게 달렸을까. 쿤사의  올드캠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로 남겨진 마약왕의 올드캠프. 문이 굳게 잠겨진 막사가 꽃으로 화려한 왕실별장과 대조적이다.


동행했던 택시 기사도 5년 전 딱 한 번 와봤다는 오지인 이곳은 강원도 동막골처럼 한가롭고 평화롭다. 태국에서도 시골인 치앙라이, 치앙라이에서도 산골인 이곳에 규모 있는 학교와 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라마 9세의 소수민족 재건사업인 로열프로젝트는 산골마을까지 삶의 질을 개선하였다. 몰락한 마약왕의 흔적을 찾아 힘들게 찾아왔지만 을씨년스러운 옛터만 남아있다.


쓸쓸한 올드캠프를 한참을 배회하고 있었을까. 관리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자물쇠를 열어줄 테니 돈을 요구한다. 인건비도 없이 고작 하루 서너 명도 안 되는 여행객으로 건물을 유지할 수도 없다는 말이 공감된다. 먼지가 수북한 쿤사의 침실, 천장이 무너져 내린 집무실, 조명 없이 컴컴한 창고 같은 막사내부 등을 보니 캠프뒤편 위풍당당하게 말에 올라탄 쿤사의 동상마저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비게이션도 끊기는 산속. 택시기사는  기억을 더듬어 겨우 이곳까지 왔다.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는 길, 이런 수고로움이 유감스러워 적막한 분위기에 뜬금없이 택시기사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당장은 유학으로 방콕에 있는 를 위해 하루 쉴 틈 없이 운전하고 있지만, 뉴와이프를 맞아 마약왕 쿤사처럼 매파루앙 산골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위트와 함께 소박한 꿈으로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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