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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11. 2024

빨래를 걷다가

“책 사인해서 한권 부탁해“


책을 출간하고 나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모르겠다. 두번째 책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매한가지다. 정말 읽고 싶어서 달라는 거도 아니다.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사전 예약으로라도 주문을 미리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직접적으로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 친구 지인이 친구를 통해 책 한권만 얻어달라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쯤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는 두 개 즈음 된다. 공짜, 과시 같은 것들이다. 내 친구, 혹은 아는 오빠가 책을 냈는데 내가 굳이 왜 사? 당연히 한 권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거다. 2~3년에 걸친 노력과 인내의 시간들을 그들은 ’관계‘에 기대어 ’공짜‘로 탈취하는 꼴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칫 내가 생색이라도 냈다가는, ’그깟 책 한 권‘의 대수로움에 스스로 말려들 수도 있다.


글을 쓰거나 어떤 작품을 창작하는 다른 분들은 어떨까 싶다.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만 반복되는 걸까.


나는 몰랐다. 서울에 살 때도 몰랐다. 왜 자꾸 사람들이 강남 8학군으로 몰리는지. 나는 시골이라도 그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만 하면 경쟁이 될 줄 알았던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이 강남에서만큼은 벌어지지 않을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남으로 몰리는 거였다. 교육 뿐만이 아닌, 그 지역을 지탱하는 커뮤니티의 문화가 바탕이 되는 셈이었다.


책 나온거 축하한다며 저 멀리서 큰 돈을 보내주시는 선배들도 꽤나 있다. 오늘도 아는 형님네 부부께서 가게에 식사를 하러 오셨다가 ’책값‘이라며 큰돈을 건네주고 가셨다. 다만 나는 이들과 저들을 갈라치기 하며 돈을 바라는게 아니다. 책값이라는 명분으로 건네받은 그 돈을 내가 허투루 쓸거 같은가. 내 돈을 조금더 얹어 차후에 어떤 식으로든 그들한테 고스란히 더 쓸 생각이다. 술이 됐건, 근사한 식사가 됐건, 나는 마음만 받으면 그걸로 족할 뿐이라는 얘기다.


바라고 싶다. 주위에 영화감독이 있다면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새롭게 개봉한 영화의 티켓을 보통의 관객들보다 더 많이 구매해 방방곡곡 소문내며 보러 가시라고. ”오빠!! 나 영화 티켓 2장만 부탁해“ 이러지 말자. 본인만 모르지 꼴사나운 일이다.


공짜라는 건 행위를 주체한 당사자의 마음에 달린거다. 나 같은 경우엔 나이 지긋하신 학교 은사님이나 가족, 혹은 몇몇 지인에게만 해당이 된다. 그 외에 사람들이 허구헌날 ’공짜 공짜‘ 외치면 달갑지가 않다. 그렇다고 쉬이 거절도 못한다. 기사 하나 써달라며 읍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기자 생활 때도 그랬고, 지금도 같은 상황이다.


상대가 먼저 바라는 공짜는 갈취에 가깝다. 그리고 1년 넘게 교류가 없다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 공짜를 바라는 행위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퉁명스러운 이야기들이 길어질까봐 이즈음 하겠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힐난하고 싶지는 않다. 본인들 스스로 잘 생각해봤으면 싶다. 물론 나도 반성할게 많다. 빨래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많은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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