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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07. 2024

남편과 자유여행, 안 싸울 리가 있나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23화)

이제 그라나다를 떠나야 한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아쉬운 마음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라나다 대성당 주변을 돌며 회색빛 벽과 샛노란 오렌지 나무를 쓰다듬었다. 고마웠고 잘 있으라 인사했다. 손끝을 통해 이 마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오래도록 꿈에 그려온 그라나다, 마음에 깊이 담아 고이고이 간직한 채 이제 그라나다를 떠난다.



체크아웃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바로 앞에 선다는 거 확인하고 호텔을 나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도로에 차가 하나도 안 보인다. 버스도 택시도, 그 어떤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가다 보니 경찰들이 열을 맞춰 도로변에 늘어서 있다.


            

▲  도로를 막고 집회하는 현장. 교통통제로 그라나다 공항까지 간신히 도착했다.

ⓒ 김연순



알고 보니 집회가 열리고 있어 도로를 전면 통제하는 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어찌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일단 차가 다니는 곳까지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있지만 힘들다고 지체할 수가 없다.



빠른 걸음으로 한참을 걷는데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으로 들어와 따갑기까지 하다. 저만치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우리처럼 캐리어를 든 여행객들이 모여 있다. 그러자 남편은 이 사람들처럼 여기서 버스나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엥? 이게 무슨 소리인지, 집회가 언제 끝날 줄 알고. 나는 "말도 안 돼" 하며 차가 다니는 곳까지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남편은 여기서 기다리자고 우긴다.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다고 나도 우겼다. 실갱이를 벌이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근처에 한국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머리에 뚜껑이 열리는 것 같았다.



급기야 "그럼 여기서 기다리던지 알아서 해. 난 갈 테니까 공항에서 만나!" 하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여행 다니면서 별탈 없이 재밌게 잘 지낸다 싶었는데, 이제 끝내갈 때가 되나 보다. 분이 안 풀려 씩씩대며 걷고 있는데 남편이 슬금슬금 뒤에서 따라 온다. 모른 척하고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드디어 교통통제가 풀린 도로가 나온다. 비행기 시간에 못 맞출까 봐 초조했다.



한참 만에 빈 택시가 나타났다. 짐을 싣고 택시를 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열 받은 기운 한 차례 식히고 남편에게 물었다. "왜 거기서 기다리자고 한 거야?" 남편은 곧 통제가 풀리지 않을까 싶었단다. "아이고, 답답하다 답답해. 언제 풀릴 줄 알고 기다려" 한 마디 쏘아 붙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긴 시간의 여행 일정, 남편 덕에 잘 지냈던 건 안다. 아는데.. 에휴,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택시 탄 게 어디냐.



우여곡절 끝에 그라나다 공항에 도착했고 무사히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 사람들이 많다. 바르셀로나 5주 만에 다시 온다. 두 번째로 오니 왠지 친숙한 느낌이다. 익숙하게 공항버스 타고 카탈루냐 광장에 내렸다.



에어비앤비 통해 예약한 숙소까지 지도를 보며 걸었고 쉽게 도착했다. 금발의 여성인 주인을 만나 숙소의 시설과 이용 방법에 대해 들었다.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숙소는 깔끔하고 시설도 좋다. 식탁에는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두 개의 잔이 와인과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장을 보러 나왔다. 길을 지나는데 놀랍게도 에로스키 매장이 있다. 반가웠다. 에로스키는 스페인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이다. 역사도 오래 되었고 한국의 생협 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들어가보니 기대한 바 대로 없는 게 없다. 빵과 치즈, 스프와 과일, 각종 채소들과 소스 등 잔뜩 장을 봐서 돌아왔다.


            

▲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서 마련해 준 와인. 와인을 보자 그 정성에 피로가 사르르 풀린다.

ⓒ 김연순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으니 집처럼 편안하다. 남편과 치즈를 곁들여 와인을 마시며 우여곡절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낮에 거리에서 대판 싸워 놓고 어느 새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고 또 서로 낄낄 댄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남편이 빨래해 너는 동안 나는 누워 잤다. 목이 따끔거리고 연신 재채기에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 감기가 시작되나 보다. 그래도 11시쯤 나왔다. 레이알 광장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가는 도중에 특이한 건물을 발견했다. 지도 검색해 보니 카탈루냐 음악당이다. 벽면 한쪽이 공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 외벽의 조각은 디테일이 매우 정교하다. 조각상의 인물들은 생김새와 옷차림, 자세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음악당 건물에 카페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주문한 커피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카페에서 보는 건물 내부가 온통 예술 작품이다.



천정과 아치형 기둥은 꽃 문양으로 가득했고 각양각색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고 따스해 보인다. 타일 장식의 벽, 기둥을 장식한 꽃과 나뭇잎 문양에 마음을 홀라당 뺏겨 버렸다. 주문한 커피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변으로 눈이 휭휭 돌아갔다.



카탈루냐 음악당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곳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철강산업과 무역업으로 부를 축적한 바르셀로나의 기업가와 부르주아들은 카탈루냐의 독립과 문화적 부흥을 이루고자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카탈루냐 음악당이다.


            

▲  카탈루냐 음악당 외부. 한쪽 면이 공사중임에도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 김연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 건물은 스페인의 대표적 건축가 중 한 사람인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몬타네르는 가우디의 스승이기도 한데 2023년은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당 일부만 보았지만 기회가 되면 티켓을 예매해 공연을 봐도 좋을 것 같다. 공간 자체가 예술인 곳에서 듣는 음악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며 감동적일까 싶다.



지나는 길에 바르셀로나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산타 카테리나 시장을 둘러보고 조금 더 걷자 레이 광장(PLACA DEL REI), 일명 '왕의 광장'에 도착했다. 레이 광장에는 뜨거운 땡볕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관광객들이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사방이 회색빛 고딕 양식의 건물로 둘러쌓인 이곳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번성한 아라곤 왕국의 군주들이 머물던 장소라고 한다.


            

▲  레이 광장(일명 왕의 광장). 부채꼴 모양의 이 계단은 항해를 마친 콜럼버스가 이사벨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보고를 한 장소이다.

ⓒ 김연순



광장에서 특별히 눈에 띈 곳이 있는데 부채꼴 모양의 계단이다. 몇 개 계단을 올라 잠시 앉아 보았다. 팔을 앞으로 쭉 뻗고 기지개를 켰다. 햇살이 바사삭 부서지는 것 같다. 해는 뜨거웠지만 개의치 않고 햇빛을 받아들이게 된다. 오랜 역사의 기억들이 내장된 계단에 앉아 상념에 젖어 있다 보니 그 시공간 자체가 내게는 평화였다. 사방의 소리는 잦아들고 고즈넉함만이 나를 둘러싼 것 같았다.



레이 광장 바로 옆은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놓칠 수 없다. 예정에 없는 곳이었지만 입장권을 구매해 들어가 보았다. 이 박물관은 중세 시대 아라곤 왕들의 왕궁으로 사용된 곳을 리모델링 했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먼저 바르셀로나 역사를 기록한 영상을 보았다.


            

▲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 지하에 로마 시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전시되어 있다.

ⓒ 김연순



고대의 유물부터 나온다. 알고 보니 이 유물들은 박물관 지하 1층에 전시되어 있다. 로마 시대의 성벽과 탑, 목욕탕과 도로 일부의 유물들이다. 바르셀로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 바다의 항구와 건물들의 변화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대략 알아 들었다. 박물관 내부를 돌며 사진을 중심으로 둘러 보았다.



사람들이 걷는 바닥에 바르셀로나 상세 지도가 깔려 있는 점이 특이했다. 지하로 내려가 로마 시대 유물들도 보았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바르셀로나 역사를 한번 훑어본다는 면에서 좋았다. 무엇보다 그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박물관에서 로마 시대 유물은 물론 바르셀로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거 기분 좋은 일이다.



점심은 메뉴델디아(MENU DEL DIA)를 먹기로 했다. 메뉴델디아는 주로 점심 식사로 가능한 코스 요리인데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의 순으로 나온다. 각 코스에는 선택사항이 있어 원하는 것을 골라먹을 수 있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대체로 식당 입구에 간판이 있고 간판에 가격과 함께 그날의 메뉴델디아 내용이 적혀 있다.



그걸 보고 마음에 들면 들어가 주문하면 된다. 우리는 식당 몇 군데를 돌다 깔끔해 보이는 한 곳으로 들어갔다. 스프와 채소를 곁들인 생선구이, 감자와 고기를 주문했다. 소스가 뿌려진 채소와 함께 먹으니 간도 적당했고 맛도 괜찮았다.


            

▲  점심으로 나온 메뉴델디아의 디저트 브륄레. 프랑스어로 '태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최상이다.

ⓒ 김연순



무엇보다 디저트로 나온 크림 브륄레가 맘에 들었다. 브륄레는 프랑스 말로 '태웠다'란 뜻인데 우유, 달걀, 크림 등으로 부드러운 커스타드를 만들어 차갑게 식힌 후 설탕을 뿌린 다음 토치를 사용해 굳혀낸 것이다. 숟가락으로 살짝 두들겨 겉면을 깨서 섞어 먹는데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입안에 한가득 들어찬다. 한국에서도 간혹 먹어보긴 했지만 여기서 먹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



근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우리는 미리 예매해 둔 바르셀로나 미술관 티켓을 이용했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3세부터 19세까지 바를셀로나에 살았다. 그의 오랜 친구 사바르테스가 소장한 피카소의 작품을 기반으로 이 미술관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둘러보는데 아는 작품도 있지만 모르는 작품도 많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보니 피카소의 작품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 중 '만틸라를 쓴 여인'을 보는데 그 여인에게 마음이 꽂혀서 움직일 수가 없다.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  피카소 박물관에 전시된 피카소 초기 작품 [만틸라를 쓴 여인]

ⓒ 김연순



굵은 연필의 스케치와 더불어 붉은색과 파란색 그리고 주황색과 노란색 점으로 찍힌 붓터치가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두어 시간 돌아보고 나오면서 기념품 매장에 들렀다. '만틸라를 쓴 여인' 포스터를 사서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액자에 끼워 벽에 걸어 두었다. 눈만 들면 보이는 곳에서 지금도 그 여인과 수시로 눈을 마주하고 있다.



커피 한 잔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저녁 8시에 고딕 지구 야간 투어를 신청해 두었기에 슬슬 나설 준비를 했다.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텀블러에 뜨거운 차를 담았다. 머플러까지 목에 동여매고 밖으로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기온이 뚝 떨어져 있고 바람까지 분다. 한낮의 땡볕이 무색할 만큼 기온 차이가 크다.



한국어 가이드 투어는 리시우 공연장 앞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인 20여명이 모였고 깃발을 든 가이드와 인사를 간단히 나누었다. 낮에 본 거리와 건물을 거의 그대로 다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머리 속에 쏙쏙 박히며 더 재미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레이 광장의 부채꼴 모양 계단은 놀랍게도 콜롬버스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콜롬버스가 항해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왔을 때, 이사벨 왕과 페르난도 왕이 이 계단 위에 있었고 콜롬버스는 아래에서 두 왕에게 항해 결과를 보고했단다. 머리를 조아리며 왕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콜롬버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산 펠립 네리(SANT FELIP NERI) 광장은 작고 아담한 곳이다. 가운데 커다라 나무가 있는데 저녁이라 그런지 더욱 운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이면에 끔찍한 아픔을 안고 있다. 1938년 스페인 내전 당시, 산 펠립 네리 성당 옆 초등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폭격을 피해 성당으로 대피하다 공화파 정부에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 반군의 폭격에 40여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  산 펠립 네리 광장.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정권의 포격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 포탄의 파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 김연순



성당 외벽에는 폭탄의 파편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파편 자국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포탄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피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 하나 잘못한 것 없는데도 단지 어른들의 포악한 행태에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이 너무도 가련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제대로 기억하는 것,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다.



두 시간의 고딕 지구 투어는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마쳤다. 밤에 보는 바를셀로나 대성당은 웅장하면서 기품이 흘러넘쳤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조형미가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밤 열 시가 넘었지만 대성당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담소를 즐기고 있다. 그 모습 자체가 그저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낮에 다닐 때는 반팔 입고 땀흘리며 다녔는데 거의 같은 장소를 저녁엔 찬바람 맞으며 두꺼운 옷 휘감고 다녔다. 5주 만에 다시 온 바르셀로나, 편안하고 익숙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남편과 둘이서 한번 다녀본 장소를 몇 시간 후에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유래를 들으며 다니니 색다른 맛이 있다. 한번 가본 곳이 마음에 들어 다시 가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발걸음을 옮겨 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자유여행의 참 맛 아니겠는가.



▲  바르셀로나 대성당. 밤에 보는 대성당은 기품이 넘치고 더 웅장하다.ⓒ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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