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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는 길> 독중기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어젯 밤 읽던 책에 빠지기 시작했고, 하얗게 밤을 불태울 뻔 했으나 강이의 시끄러운 항의에 직면하고 계획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에도로 가는 길>은 번역하신 '유강은' 선생에게 연말에 선물 받은 책인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약력 중에 '2021년 퓰리처상 전기부문 최종 후보작'이 있다. 누군가의 전기구나 하고 쉽게 생각했고 이 생각이 틀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19세기에 에치고국이라는 시골 마을에 살던 쓰네노 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12살에 첫 결혼을 한 쓰네노는 28살에 이혼을 당한다. 연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이제 가족들은 쓰네노를 집안 일 해 줄 여자를 찾는 홀애비에게 시집보내려고 한다. 쓰네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한 발 더 나아가려고 결심했다. 가출을 감행한 그녀가 향한 곳은 '에도'였다.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책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었고, 쓰네노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꾼 결심의 계기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는 스팟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가문과 마을을 떠난 쓰네노가 추상적 가능성의 도시 에도에서 구체적 곤란함과 변화를 겪으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수 백 통의 편지를 이야기로 재연한 것이다. 그래서 전기가 맞긴 맞다. 수백 년 전의 편지를 통해 한 19세기 한 일본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에이미 스탠리'라는 미국인 저자는 너무나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편지의 비어있는 시공간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메꾼 성실한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한 군데도 없는 것은 역시 '유강은'이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오게도 한다.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는 문장은 책 60페이지에 등장한다. 앞의 60페이지까지는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쓰네노의 삶이 이때까지는 답답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60페이지를 정점으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에도'라는 공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게 된 이후의 쓰네노의 인생역정과 그녀가 곤란함을 넘어서며 자아를 발현해 가는 과정에 당신은 빠지게 될 것이다.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는 문장은 이 책이 펼치는 서사와는 좀 다른 맥락에서 복잡한 생각으로 나를 이끌기도 했다. '우리의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능성'이라는 말은  '실현 가능성'이라는 말과는 매우 다르게 읽힌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사회적 위기와 불평등을 벗어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고, 그러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절박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저항의 몸짓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질 때 가능성을 인식하는 시선 바깥에 존재하는 시니컬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건 모험이 시작될 것이다. 모험에는 모름지기 동행인이 있어야 할 텐데, 왠지 우리는 조금씩 쓸쓸하지 않은가?


나와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이 되기 위한 몸부림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 강이때문에 완독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독후기가 아니라 독중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강추하기엔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유강은 샘, 책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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