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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다 Nov 10. 2023

학교생활기록부를 믿지 마세요

브런치 처방전

 다소 불편한 영업 기밀


  나의 글쓰기 역사를 되짚어보면 가장 많이 쓴 글은 씁쓸하게도 학교생활기록부다. 햇수로 보나 글자 수로 보나 단연 그렇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서이자, 점수로 변환되는 글이다. 그렇다 보니 날것 그대로를 옮기기엔 곤란한 부분이 많다.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매뉴얼도 아직 잠재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부정적인 표현은 지양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아무리 불성실하고 무기력하게 학교에 다니는 아이라 할지라도 이 문서에서만큼은 성실하고 에너지 넘쳐야 하기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쥐어짜는 거짓 문장들도 많다. 선생님들끼리 긍정 필터를 어떻게 씌워야 할지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한다.


  "매일 지각하는 아이는 뭐라고 써줘야 해요?"

  "전 꾸준히 한결같다고 써 주려고요."

  "오, 좋네요. 저도 그런 뉘앙스로 써야겠어요."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는 학급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아이로, 학교에서 잠만 자는 아이는 늦게까지 자기 주도적 학습에 매진하는 아이로, 교칙도 무시한 채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아이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로 탈바꿈한다. 여느 보통 집단이라면 정상분포곡선을 그리는 것이 당연지사겠지만, 학교생활기록부만 놓고 보자면 우리 반 모두가 아이비리그를 꿈꾼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숫자로 보면 정상분포곡선을 이루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타의 모범이 되고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인성을 지녔다. 또한 자신의 관심사에 몰입하여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며 미래가 촉망되는 아이들뿐이다. 15년 동안 과장되게 쓰는 것에 익숙해졌고, 미화하는 데에 능수능란해졌다. 가끔은 전기 대필 작가인 것 같은 느낌에 허무해지는 날도 있다. 진솔한 글을 어떻게 쓰는지 잊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처방이 필요하다.


인생은 타이밍


  매년 12월 31일이면 세 식구 둘러앉아 전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새해를 맞이한다. 올 한 해 아쉬웠던 일, 서로에게 감사한 일 등을 나눈다. 내년에 꼭 하고 싶은 일도 써 둔다. 일종의 공표다. 내가 지레 포기하지 않도록 압박을 해 달라는. 전지를 붙여놓은 복도를 지날 때마다 '1일 1 글쓰기'라고 적힌 메모가 나를 째려본다. 벌써 9월도 다 지나가는데 시작도 못했단 말이다. 이 망할 실행력.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무언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나의 오랜 고질병이여.

  그러던 어느 날, 블루투스 키보드가 내게로 왔다. 우리 신랑의 선물에는 저릿한 낭만이 없어 불만 아닌 불만이 있어왔지만, 이번만큼은 실용적인 선물 센스에 돌고래 소리를 내주었다. 게다가 이 타이밍은 생일도, 결기도 아닌, 브런치 프로젝트 신청기간이란 말이다. 블루투스 키보드가 생겼는데 프로젝트 신청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이토록 다정한 압박을 받고 브런치에 입성을 했으니, 내가 작가가 된 데에는 그의 지분도 상당하다. 인생은 타이밍이고, 글쓰기도 장비발이다.


브런치와 자존감의 상관관계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은 날, 역설적이게도 임용시험에 세 번째 떨어진 날이 떠올랐다. 모니터 화면에 뜬 빨간 볼드체를 보고 첫 해에는 수치심에 좌절했다가 재수 때에는 허망했다. 삼수 때에는 무감각한 지경에 이르자 임용이고 뭐고 자존감부터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수 준비는 잠시 접고 컴퓨터활용능력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독학을 했다. 당시에는 제일 높은 가산점이 걸려 있는 자격증이기도 했지만, 자존감 회복을 위한 발버둥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전공과 상관없는 뇌를 사용하다 보니 활기도 되찾았고, 알고리즘의 매력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그리고 대학 합격 이후에 처음으로 '합격'이라는 글씨를 마주했다. 그래, 나도 합격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고. 기쁨을 넘어 치유를 경험했다.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도 번아웃에 지쳐 휴직을 선택한, 타성에 젖어가던 나에게 힐링 모먼트를 선사했다. 작은 성공 경험들이 모여 자존감이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린다는 것은 진리다. '아직도 나는 꿈꾸는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니.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다.


내 안의 솔직함을 깨워라.

  너무도 오랜만에 나의 마음을 글자로 꺼내어 마주한다. 일상의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때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문어체로 쓰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장례를 치르면서도 ‘쓸쓸하게 넓은 어깨. 그는 오늘 고아가 되었다.’ 이러고 있는 나를 자각하고 고개를 세차게 휘저은 적도 있다.

  정리벽은 있어도 수집벽은 없는 내가 글감을 수집하겠다고 추억을 자꾸 뒤적인다. 박제된 추억을 심폐소생하다 보면 앉은자리에서 해가 진다. 그러다 미처 태워버리지 못한 추억에 머물러 고민도 한다. 우리 집 남자들에게 작가됐다고 자랑하지 말 걸. 어설픈 비밀이 생겼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순간순간 메타인지가 발동하여 전지적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내가 된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움튼다. 결혼을 하면서 그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또 한 번 그랬는데,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세 번째 동력을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다.


새로운 호칭은 언제나 설렌다.


  “작가님.”

  브런치 단톡방에서 나를 이렇게 불러주었다.

  산부인과에서 처음 '엄마'라고 불렸던 날, 학교에서 처음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날 같다. 그때의 그때는 온 감각으로 되살릴 수 있다. 분위기, 공기의 온도와 냄새, 입었던 옷 색깔, 팔에 닿는 촉감 모두 생생하다.


  “작가님.”

  오늘도 그렇다. 오래도록 기억날 이 공기.

  “저요?” 하며 날 부른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해 보고 싶다.


  브런치를 하면서 글 쓰는 방법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 많이 배웠다. 그간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가는 흐름에 참으로 둔감했다. 오히려 낯설다는 이유로 이상하다고 여긴 듯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N잡러 시대를 살면서 직업에 명사 하나밖에 못 쓰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프다. AI한테 질문만 잘하면 멋진 책이 뚝딱 나오는 이 시대에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글을 쓴다고 하면 남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련다.


  "엄마, 이제 학교 안 나가도 되는 거야?"


  엄마가 작가가 됐다 하니 달려와 부서질 듯 안아주며 묻는다. 순수한 아들의 질문은 시공간을 접고 접어 나를 강연장으로 데려다준다. 이동 중에도 메일로 들어온 제안들을 검토한다. 출판사에서 이번에 3쇄 찍는 건으로 상의할 것이 있다며 전화가 걸려온다. 찰나였지만 아들의 질문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대답한다.


  “너는 독서기록장을 쓰렴. 엄마는 브런치를 할 테니. “

  마주 앉아 쓰는 기분이 꽤 우아하고 좋다.



  지금 여기는 어린이 수영장. 유리창 너머로 잔나비 노래에 맞춰 음파음파를 하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평소라면 넷플릭스를 보며 때웠을 한 시간인데, 잔나비가 나를 위해 준비한 마차를 타고 꿈나라로 가면서 문장을 갈고 닦느라 여념이 없다. 디지털 노마드족은 매일 이런 기분이겠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샘도 난다.

  나는 이제 어디에서나 쓴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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