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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un 26. 2022

파가 너무 맵다는 핑계로 눈물을 그렁그렁 흘려버렸다.

정리가 되지 않는 글


나는 스스로가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일매일 나의 감정 상태를 체크하며 오늘 나의 감정은 무슨 색깔인지 살펴보던 시기가 있었다. 별로 다양하지는 않았다. 파랗거나, 보라색이거나, 드문드문 초록색이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의 감정 상태를 살피고, 색을 입히고 나면 스스로를 보살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감정에 색을 입혀보았다.

싱그러운 여름에 축축하게 안개 낀 듯, 어렴풋한 파란색의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지도 않았다.


슬픔을 위로하고자 나에게 줄 요리를 하다가 파가 너무 매워서 그냥저냥 눈물을 흘려버렸다. 참았던 눈물을 이렇게라도 흘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들을 쏟아낸 것 같다. 처량하기 그지없지만 후련하기도 그지없다.


이유도 없이 나에게 책을 선물해 준 이가 말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죠."

그 슬픔은 그가 준 책으로부터 해소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울고 있었다.

나는 함께 울었다.

시작도 하지 못한 연애 끝에 놓인 우리 두 사람의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울었다.

눈물이 흐르는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해서 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내 연애는 실패했지만 모든 관계가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위로가 들렸다.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깔끔하게 하고, 어질러진 책상 위를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래도록 정리하지 못하고 묵혀두었던 관계도 정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에게는 쉼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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