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님, 이 번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어떤 광고가 상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얼마 전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동료가 물었다.
“어떤 광고가 기업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었냐가 기준이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 참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동료의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가 다시 질문한다면, "모든 캠페인은 제각각 받을만한 상을 받았을 것이고, 상을 받은 업계 동료를 축하하며 우리도 다시 멋진 상을 받도록 하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제는 있는데 정답은 없다. 광고는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 앞길을 막는 문제들과 같다.
늘 새롭고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뾰족한 정답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정답에 가까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답에 가까움’이라는 표현부터가 이미 함정이다. 누군가에겐 가까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멀다.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 우리는 늘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느라 고생한다.
내가 왜 하필 수학을 못해서 이과를 못갔고 그래서 이놈의 정답 없는 문제의 답을 찾느라 고생하는지, 신세 한탄을 한다.
정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낸다.
그리고 그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누군가는 우리가 낸 결론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오답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지금껏, 비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가까운 정답을 선택하는 역할을 했다.
어떤 경우는 확신에 차 정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다른 경우엔 정답이 아닌 거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최면을 걸기도 했다.
동료들의 생각이 정답에 가깝지 않다고 느낄 때, 내 기준에 맞게 수정을 하는 과정들도 많았다.
그렇게 10년을, 내가 생각하는 정답에 가까운 광고들로 바꾸고 고쳐왔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선택’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삭제’의 시간이기도 했다. 더 과감한 아이디어, 더 낯선 톤, 더 불편한 진실, 더 이상한 방식… 팀의 가능성 중 일부는 “이건 정답이 아닐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조용히 빠져나갔다. 리더의 확신은 팀을 앞으로 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좁히기도 한다.
최근 중요한 비딩을 실패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데 왜 나는 내 기준에 가까운 것들을 정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어쩌면 내가 믿었던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설득할 수 있는 논리, 설명 가능한 구조, 발표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장. 그것들은 나를 안전하게 해준다. 하지만 광고가 겨냥하는 곳은 발표장이 아니라 시장이고, 회의실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그 영역은 통제보다 관계에 가깝다.
광고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나는 많은 동료들에게 우리의 업은 "광고주나 소비자도 모르는 브랜드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이라고주장해 왔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답에 가까운 하나의 답일 뿐이다. 가치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탐험가가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탐험가이기만 한가. 종종 우리는 통역가가 되고, 조율자가 되고, 때로는 치료사가 된다.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과, 소비자가 듣고 싶은 말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광고는 그 간극을 메우는 기술이기도 하고, 간극 자체를 드러내는 용기이기도 하다.
광고주, 소비자, 광고인 모두에게 각각 다른 기준의 답이 있다.
누군가에게 광고는 재미있는 것이고, 상을 받으려는 수단이고, 세상을 바꿀 무기이고, 비즈니스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마케팅적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광고는 정답이 없지만 모두 정답일 수 있다.
나는 이제 ‘정답을 고르는 사람’에서 ‘정답이 만들어지게 하는 사람’으로 역할을 조금 옮기고 싶다. 정답이 없는 일을 할 때 리더가 할 일은 정답을 선포하는 게 아니라, 팀이 각자의 답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게 판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답들이 충돌하면서도 부서지지 않게, 한 번 더 질문하고 한 번 더 실험할 수 있게,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팀의 실력을 키우게 하는 것.
나만의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출발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다.
“이 브랜드가 지금 풀어야 할 문제는 정확히 무엇이냐”,
“사람들이 진짜로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건드리면 관계가 바뀌는 지점은 어디냐”,
“이 아이디어가 실패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패하겠냐” 같은 질문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답에 ‘가까워지는 방식’은 있다.나는 그 방식을 더 넓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가진 답을 더 크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팀이 가진 답의 세계를 더 크게 만드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