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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4. 2022

양자물리학 책을 읽고서

양자물리학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 가끔은 와이프와 같이 간다. 이 도서관은 1인당 5권씩 대출이 가능하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5권을 다 채워서 빌려 온다. 그리고는 결국 1권만 다 읽고 나머지 4권은 기한에 쫓겨 반납하기 일쑤다. 


반면 와이프는 보고 싶은 책 딱 한권만 빌려 온다. 그리고는 앞부분 1/5만 읽고 반납한다. 다행이다. 수면제는 과다 복용하면 위험하다. (와이프가 독서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워킹맘이라 피곤해서 그렇다.) 그런데 나에게도 수면제가 있으니 바로 양자 물리학에 관한 책들이다. 


***


양자 물리학 책의 저자 서문은 다 똑같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몇 페이지 넘기기 힘든 것을 보면 때론 내 지능이 평균 이하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우울감을 떨쳐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양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인 '이중 슬릿 실험'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럼 다들 이해 못 하거나 엉뚱하게 해석을 한다. 이때 내 지능이 바닥에서 정상까지 급상승한다. 카타르시스다. 


양자 물리학의 입문이자 최대 난관은 언제나 이중 슬릿 실험이다. 이 실험은 19세기 초 토마스 영 Thomas Young이 고안했다. 원래는 파동과 입자를 구별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두 개의 슬릿이 있는 판을 세워놓고 그 뒤에 스크린을 세워놓는다. 그리고 실험하고 싶은 대상을 슬릿이 있는 판을 향해 쏜다. 쏘아 보낸 것인 입자라면 슬릿을 지나 스크린에 단 두 줄이, 파동이라면 여러 줄의 간섭 무늬가 생기게 된다. 


빛을 대상으로 이중 슬릿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물결 모양의 간섭무늬가 나타났다. 파동의 특성이다. 그래서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던 뉴턴의 주장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실험으로 다시 빛이 입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뉴턴, 의문의 1패 뒤 1승이다.)


1927년 클린턴 데이비스 Clinton Joseph Davisson와 레스터 거머 Lester H. Germer는 전자를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을 한다. 당시 전자는 입자라는 게 대세였다. 당연히 이중 슬릿 너머의 스크린에 두 줄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여러 개의 전자를 쏘고 나서 살펴보니 간섭 무늬가 생겼다. 전자가 파동의 특성을 보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이번엔 전자 하나씩 쏘아 봤다. 그래도 여전히 간섭 무늬가 생겼다. 입자인 전자가 어떻게 파동처럼 움직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다시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두 줄만 나타났다. 전자가 입자의 특성을 보인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 물리학계를 뒤집어 놓았다. 처음에는 실험이 잘못된 것이라며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똑같은 실험을 해본 결과, 역시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을 통해 마침내 인간은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알게 되었다. 이어 양자 물리학이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이중 슬릿 실험은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행해진다. 이제는 전자뿐 아니라 원자, 분자, 세포에 이르기까지 조건만 맞으면 파동-입자 이중성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시 세계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직 아무도 답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이 현상을 이용해 반도체나 전자 제품을 만든다. 또 양자 통신, 양자 컴퓨터와 같은 혁신적인 기기도 곧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이중 슬릿 실험의 결과를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나 유사 과학을 신봉하거나, 신봉하지는 않지만 신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관찰 여부에 따라 파동과 입자를 오가는 현상을 근거로 ‘내가 곧 세상을 바꾸는 주체다’, ‘사람의 의식이나 영혼이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한다. 파동-입자 이중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중 슬릿 실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말들이 통한다.


이중 슬릿 실험의 관찰자가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파동-입자 이중성은 나타난다. 진공 속을 전자가 나아갈 때 카메라를 설치하든, 사람이 관찰하든, 고양이가 관찰하든 같은 결과가 나온다.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나 인공지능 로봇 등이 관찰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원숭이, 고양이, 바퀴벌레, 코로나 바이러스, 인공지능 모두 그들의 의식이 우주를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의 의식과 영혼이 그들 수준인가?


사이비 종교인, 엉터리 명상가, 유사과학 신봉자 등은 파동-입자 이중성을 마음대로 해석한다. 때론 나도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이,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절대자나 우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은 영원불멸의 삶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점차 깨닫는다. 어떤 생명체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론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은 예외이길 바란다. 예외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나의 가족이, 나의 민족이, 나의 국가가 그리고 인류가 다른 어떤 존재나 집단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우월하다는 것은 굳이 나의 생존 전략을 바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이대로 쭉 가다보면 영생불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또 생존 전략을 바꾸기 위한 에너지 투입이나 리스크 감수가 불필요하다는 소식이다. 


이런 기쁨에 인간은 중독되어 있다. SF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의 전쟁 초반에는 외계인이 압승한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인간이 외계인의 약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승리한다. 이때 우리는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역시 인간이 최고'라며 뿌듯해한다. 무의식 속에서 ‘이대로 살아가도 되니 다행이다.’, ‘나의 생존 전략은 역시 옳구나.’, ‘역시 난 운이 좋아.’라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 로또 당첨되었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 세포가 똑같이 활성화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속마음은,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와 비슷하거나 낮은 지능을 갖길 바란다. 아마 우리보다 뛰어난 지능과 문명을 가진 외계인을 발견한다면 바로 연락을 끊고 모른 척 할 것이다.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통신 기기를 망가뜨릴 것이다.) 인류가 특별해야 내가 특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의 바램과 달리 사업도 잘 안되고, 돈도 못 벌고, 와이프가 잔소리만 하고, 애들도 공부 못하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하지만 혹시나, 그래도, 어쩌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남는다. 


그래서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무언가 쉽게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10년 후 재벌이 될 거란 얘기를 엉터리로 소문난 점쟁이에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 노력 없이, 아무 에너지 소모 없이, 아무 리스크 없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과 별반 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 슬릿 실험을 우리 좋을 대로 해석한다.


*


최근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연구팀은 전자나 원자 단위가 아니라, 유기체까지 파동-입자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려고 연구 중이다. 더 나아가 아메바에게도 파동-입자 이중성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아메바가 들으면 불안해할 것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사람도 파동-입자 이중성이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질 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하필 내가 인류 최초의 이중 슬릿 실험 대상으로 선정되고, 진공 속 이중 슬릿으로 발사되었다고 상상해본다 (최초이면 목숨을 걸만큼 대단한 영광이다.) 진공이기에 공기도, 빛도, 소리도 없다. 주변에는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가만히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과거에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내 기억 속에는 어찌해야 좋을지 참고할 만한 정보도 없다. 어디 반짝이는 빛이라도 보이면 살려 달라고 손을 흔들겠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소멸하는 것인가? 살아 남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알 수가 없다. 아무런 정보가 없으면 미래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손오공처럼 몸을 나누어 모든 방향으로 가보는 것이 최선이다. 흩어져서 가다가 무언가를 만나서 정보를 얻으면 그때 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때까지 뭉치지 말고 흩어진다.   


꼭 진공관 속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와 비슷하게 살아간다. 사람의 성격은 혼자 있을 때는 정해지지 않는다. 다른 존재를 만나야 생겨나는 것이 성격이다. 그래서 성격은 그때 그때 달라진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을 때와, 영업을 위해 고객을 만날 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다르다. 방에 혼자 있을 때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성격이 없거나 어떠하다고 특정할 수가 없다. 고객을 만날 때는 항상 웃고 활기차 보이려고 한다. 혼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 즉 나와 간섭하는 무언가가 있는지 여부는 나에게 크건 작건 영향을 미친다. 


인간 집단도 인간 개체와 비슷하다. 한 무리의 인간 집단이 운명의 열 갈래 갈림길에 다다른다.  갈림길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집단 전체가 한쪽 길로 가는 '모' 아니면 '도' 전략을 취할까? 아마 현존하는 집단이라면 절대 그런 전략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두 그룹 이상으로 나뉘어 여러 길로 가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몇개의 길이 죽음의 절벽으로 향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한 개의 길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그 길로 간 몇 명이 나머지 사람들을 구해줄 것이다. 마치 전자가 파동의 형태로 이중 슬릿 모두를 동시에 통과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은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아마 하나의 입자로 단합하여 나아가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파동처럼 의견이 흩어져야 한다. 이 세상 70억 명의 인구 중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쌍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사안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의견 통일이 쉽지 않다. 이는 모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 집단은 때로는 파동성을 띤 입자처럼, 때로는 입자성을 띤 파동처럼 흘러간다. 때로는 협업을 하고 때로는 경쟁을 하면서.


새로운 전자 제품이나 기계 장치가 나오면 제조사마다 규격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회사 제품을 쓰다가 다른 회사 제품으로 갈아타면 관련 액세서리를 모두 다 새로 장만해야 한다. 각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규격이 더 우수하다면서 고객들을 설득하고 더 많이 보급하려고 경쟁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소비자들의 선택이 하나로 모이면서 세계 표준 규격이 등장한다.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때는 모두 제각각의 방법으로 대응했다. 누구는 소금물로 양치하고, 누구는 마스크를 썼다. 어느 나라는 도시를 봉쇄하고, 어느 나라는 감기와 다를 바 없으니 정상생활을 하라고 독려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중국산 5G 기지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며 기지국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때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떤 대처법이 유효한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람마다, 나라마다, 집단마다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대처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자, 예방법과 치료법이 하나로 귀결되었다. 이는 전세계 70억 인구의 두뇌 속 신경 네트워크 일부분이 동일한 구조를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패션, 음악, 미술 등 여러 가지 유행들도 그 탄생 과정을 살펴보면 비슷하다. 마치 눈앞에 보이는 두개의 슬릿 모두를 동시에 통과하고, 그후 정보의 간섭으로 파동이 입자로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부분을 모으면 전체가, 전체를 확대하면 부분이 나온다. 사람은 입자로 만들어져 있다. 입자는 원자를, 원자는 세포를, 세포는 신체 기관을, 신체 기관은 우리의 신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인간 70억 명이 모여 인류라는 인간 사회가 구성된다. 


미시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양자 물리학, 어쩌면 인간의 심리 현상뿐 아니라 사회 현상에도 이미 적용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경계선을 구분 못하는 사이에.


 양자물리학 책을 읽을 때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생각. 이중 슬릿 실험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관찰과 상관없이 파동성이나 입자성을 유지하는 희한한 놈 하나쯤 발견되지 않을까? 그런 예외가 있어야 우주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 이건 영어 수업시간에 배웠다. 


***


드디어 양자 물리학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데 성공했다. 중간에 뜯겨 나간 부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읽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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