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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 Mar 16. 2024

홍쌍리는 마을이름이 아니다?!

평생을 매화꽃, 매실열매와 함께 살아온, 식품 명인


드디어, 다녀왔다, 광양 매화축제에~~~.

5년 전 가을, 광주에 근무할 때 섬진강변으로 출장을 나왔다가, 우연히 매화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홍쌍리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매화꽃 필 때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매화마을', '홍쌍리 청매실농원'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하얗게, 뽀얗게, 빨갛게, 각양각색의 매화꽃이 섬진강변에, 시골집 뒤편에, 야산 언덕에 피어나고  있었다.

매화꽃이 피어있는 산책길 사이사이로, 많은 방문객들이 매화의 정취를 감상하고 있었다.



                                 홍매화, 백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매화마을, 매화축제장 입구





"홍쌍리는 마을이름이 아니다??"

5년 전, 처음으로 '홍쌍리 매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마을 이름이 "홍쌍리"인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쌍리는 마을이 아니라 사람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매실청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급한, 식품명인의 이름.


광양 매화마을 입구에는 '홍쌍리 매실가'라는 농원이 있다.

이 농원의 주인장이 '홍쌍리'님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매화문화관에서 '식품명인, 홍쌍리 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경남 밀양 출생으로, 광양 섬진강변에 시집을 와, 평생을 시아버지와 함께 매화나무를 키우고, 매실을 연구하고, 매실로 음식을 만들어 온, '홍쌍리'님. 대한미국에 몇 분 안 되는 '식품명인"이 홍쌍리 님이란다. 



홍쌍리 매실농원의 매화나무와 전망대



홍쌍리 매실농원에서 매실청을 만드는 재래식 장독대





"엄마 울지 마, 나랑 여기서 같이 살아~~~"

전기도 없고, 이웃도 없고, 고되고 힘든 시집살이에 지친 홍쌍리에게 어느 날 매화꽃이 들려준 말이라 한다.

이날부터, 홍쌍리 님은 매화나무, 매화꽃, 매실열매와 함께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 홍쌍리 님이 매화나무를 얼마나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웠는지 가늠하게 하는 말이다. 매화나무를 키우던 시절의 이야기와 시를 책으로도 내셨다 한다.


매화마을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는 길에 보니, 섬진강변에도 매화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아~~~ 매실명인, 홍쌍리 님이 이곳에 처음 시집왔을 때, 그때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사람 사는 마을도, 집도 몇 채 없었을 그 시절에, 파란 섬진강 물에, 하얀 모래사장에,  그 옆에 환하게 피어나는 매화꽃이 참 이쁘면서도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겠구나~~~.'

 


매화마을 옆 섬진강변에 피어난 매화꽃, 멀리 좌측 왼편이 매화마을이다





매화꽃이 보내 준 위로와 격려

홍쌍리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매화꽃을 보니, 매화가 이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추어 있는 쓸쓸함과 애잔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 식품명인으로 거듭나게 해 준 힘도, 매화꽃이 보내 준, 마음의 위로와 격려 덕분이 아니었을까?


24년 봄에 만난 매화꽃은 그동안 보아왔던 매화보다, 더 이쁘게,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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