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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Aug 01. 2023

금주 69일째 + 소비 단식의 시작

1+1=?


역시 뭐든 시작이 반이라고... 금주를 시작하니 다이어트를 시작할 수 있었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니 이젠 소비 단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난 소비 단식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일까?




자꾸만 또다시 우울감이 한없이 몰려와 아주 날카로운 칼날처럼 예민해져 있던 요즘... 결국 그 칼날은 스스로를 향하고 자신을 마구 베어 상처와 후회를 남긴다는 것을 평생 반복적으로 깨달았으면서도... 여전히 또 한없이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있었다.



얼마나 더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난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난 사실 알코올의존증의 문제만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언급했던 중독에 취약한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 그건 나 같은 인간을 평생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한 아이였다. 비겁하게 유전자나 집안 내력 따위를 들먹이며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이 이 정도로 망가지는 건 분명 타고나서 그런 거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강박 성향, 모든 일에 과도하게 상처나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 물건에 대한 집착... 이 모든 걸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부터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괜히 성인이 된 후에 알코올중독과 쇼핑중독, 폭식장애에 빠지는 게 아닐 거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나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받아쓰기 숙제를 매일 했던 거 같은데... 이름이 연습장이었나? 표지는 두꺼운 도화지에 유행하는 만화의 화려한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고, A4 세로형에 위쪽에 스프링이 달려있는 위로 넘기는 스케치북 같은 노트였는데.. 연습장에 숙제를 하던 나는 글씨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면 될 것을 지우개로 아무리 박박 지워도 남아있는 연필 자국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서 다시 쓰고, 찢어서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모든 장을 찢어버린 적이 있었다. 7살 때의 기억... 스스로도 그 순간이 트리거로 남았는지 3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지금 내 행동은 정상이 아니야.


라고 판단했던 거 같다.


그리고 아직도 마음이 아픈 에피소드 중 하나는 5살, 6살 때부터 '화가',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나는 매일 집에서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놀았었는데... 정식 미술 학원은 아니지만 동네 아주머니가 집에서 동네 애들을 모여놓고 미술을 가르치셨는데 언젠가부터 거기에 등록을 해서 다닌 적이 있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릴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기에 그 미술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이 꿈같고 행복했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길을 딱 끊게 되었다.

이유는 어느 날 친구랑 신나게 놀다 학원 가는 시간을 까먹었는데... 스스로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의 난 엄청 내성적인 아이여서 친구가 없었고,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기에 그 친구와 노는 시간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거 같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 너에게는 그림이 까먹을 정도로 소중하지 않는 일이었구나?' 스스로 자책하며 벌을 주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그토록 좋아했던 그림 배우기를 포기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많이 이상한 아이였구나 싶다.

결국 미술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남아 15년가량이 지난 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원래 목적인 '영어 배우기'는 완전히 뒤로하고 유럽 여행도 포기한 채 모든 경비를 쏟아부어 세인트 마틴에서 외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픈하는 Short course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원'과 비슷한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를 신청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뭔가 어릴 때부터 강박, 집착, 우울, 무기력증 같은 게 있었던 거 같다.


심지어 20대 때 혜화동 천막 안에서 사주를 보았을 때는



넌 태어날 때부터 우울을 안고 태어났어.
우울한 게 당연한 거니 그냥 그리 알고 살아.




라는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도 들었다.

'아. 내가 우울한 건 역시 운명이었어!!'라고 생각하며 우울해서 힘든 것보다 '나는 왜 늘 우울할까?'라는 자문 때문에 더 힘들었던 내가 내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그런 성향이 점점 심해지면서 고등학교 때는 자살 생각을 매일 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었는데 (꼭 죽고 싶다기보다는 왜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읽은 후로는 절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소설 속에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한 소년이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장례식장에 와서 슬퍼할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확히 나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난 죽고 나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기대하고 갈구하는..
그냥 누구보다 잘 살고싶은 외로운 사람이었구나.



라고 깨달은 것이다.


그 후로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수히 많은 애를 쓰며 살았는데 최근에 또 예전과 같은 우울을 겪으며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폭풍처럼 몰려왔고, 그런 나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현재 술도 끊고, 다이어트도 하고, 일도 열심히 하며... 뭐가 됐든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왜 우울한지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고, 결국 그 이유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면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우울할까? ->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엔 뭐가 있을까? -> 내가 싫어하는 건? -> 나는 술에 집착하는 내가 싫다. -> 쇼핑중독에 빠진 내가 싫다. -> 나는 뚱뚱한 내가 싫다. -> 무기력한 내가 싫다. -> 예민한 내가 싫다. -> 나약한 내가 싫다. ->



그럼 술을 끊고, 살을 빼고, 뭐라도 시작해 보자.




물론, 생각만큼 쉬웠으면 지금의 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작했고, 지금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래, 그냥 닥치고 해보자.



내일부터 소비 단식 +1일!!!




  (오전에 이미 잔뜩 질렀기에 어쩔 수? 없이 내일로 미루는 것은 봐주시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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