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찾아온 고지혈증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지 벌써 두 달하고도 일주일이 넘었다니...
사실 그동안 쉽지만은 않았고, 찌질한 고비의 순간도 무수히 많았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비루한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금주를 강행하는 게 우선이긴 하지만... 요즘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분노조절장애의 널뛰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금주를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술을 마셔야만 하는 핑계를 대기 위해 짜증이 나는 건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치미는 화를 누르기 위해 술이 마시고 싶은 건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참 다행이도 여기가 동네 피티샵인지 태릉선수촌인지 가짜사나이의 훈련장인지 모를 만큼 한치의 양보도 없는 트레이너 선생님 덕분에 아직까지는 금주를 유지하고 있다. (금주는 유지했지만 트레이너 선생님과의 관계는 유지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100프로 나의 과실 때문이다. 스스로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나의 끝없는 징징거림이 제일 문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술이 마시고 싶다'라는 감정보다도 하루 종일 이어지는 무기력증과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몸의 통증, 어릴 때부터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언젠가부터 사라졌던 기립성 어지럼증의 재발, '이러다 정말 살면서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실신해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거 아냐?'라는 진지한 두려움이 몰려올 정도의 두통과 식은땀, 핑핑 도는 어지러움 등이 날 힘들게 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소고기 파티를 열었다. 뭐라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한 달 내내 먹던 닭가슴살을 외면하고 소고기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았다. 8kg 이상을 감량했지만 여전히 초고도비만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난 몸보신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다행히 트레이너 선생님이 주신 식단 안에는 소고기 200g도 허용되었기 때문에 난 눈치 없이 매일 소고기를 찍어 보냈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무서운 잔소리가 예상되어 두 끼 중 한 끼 정도는 적당히 닭가슴살도 섞어주면서...
그러다 '이제 그만 작작하시죠?'라는 트레이너 선생님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때쯤 며칠 전 받은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가장 걱정되었던 당뇨는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고지혈증'이란 결과... 인생 최고 몸무게인 92kg을 찍었을 때도 고지혈증은 먼 얘기였는데... '역시 나이를 이길 수는 없는 건가'라는 서글픈 생각과 고혈압이 집안 내력인지라 앞으로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내가 지금 소고기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냐!!!
무기력증을 앞세워 한 달 넘게 피티샵에 가지 않은 망나니 같은 태도를 버리고 다시 운동과 닭가슴살 위주의 식단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 "운동 언제 나오셔요?"라는 트레이너 선생님의 톡에 가시가 박힌 "몰라요!!!"를 시전했던 철없던 나에게 트레이너 선생님은 팩폭을 해야겠다며 "운동 '못' 하시는 게 아니라 '안' 하시는 거잖아요!!!"라고 말씀하셨고 난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붙이며 징징거림을 멈추지 못했다.
상대방이 점점 나를 포기하게 만들면 안 되는 건데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하. 스스로도 질린다.
참 나란 사람 추하구나.
창피한 짓인 걸 알면서도 왜 한없이 추락하는 건지.
그렇게 요즘 또다시 자괴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지혈증'을 오히려 터닝 포인트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난 38살을 기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내 인생에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어."라는 말을 떠들고 다녔는데 길게 살아도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인생과 많이 비교되는 등산이란 여정에서 산의 정상에서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은 현실이기도 했고, 이왕 내려갈 거 오를 때는 못 보았던 좋은 풍경을 눈에 담고, 좋은 바람을 몸으로 느끼며 여유롭게, 멋지게 늙고 싶다는 뜻을 내포한 스스로에게 외치는 어떤 선언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말만 앞섰지 늙음에 대한 자기 연민에만 빠져 어떻게 잘 내려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던 거 같다.
허황된 큰 꿈보다는 금주 잘 이어나가기, 운동 꾸준히 하기, 고지혈증에서 벗어나기 등의 눈앞의 작은 목표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잘' 내려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고민해 보려고 한다.
그래도 그동안 좋은 소식도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고 식단만 잘 지켰는데도 또 몸무게와 체지방이 줄었다.
거의 체중은 85kg -> 72.3kg로 12kg 이상이 빠졌고, 체지방량만 7kg 이상이 빠졌다.
아직 목표 체중인 50kg까지는 한참 더 멀고도 먼 험난한 길이 남았지만 고깃덩어리 7kg의 양을 떠올려 보면 실로 놀라운 변화이긴 하다.
더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미루고 미뤘던 운동 스케줄도 다시 잡았다.
이제 그만 '닥치고' 열심히 몰두해 보고 싶다.
모든 금주 중인 사람과
모든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을 위해
모두 좌절하지 말고 파이팅!!
또 어느 순간 다시 무너질지 모를 좌절의 순간에도... 미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