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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Jun 26. 2023

나는 지극히 평범한 내 아이의 가능성을 이렇게 꽃피웠다

베스트셀러 '당신이 나를 이끌어 줄 때'가 전하는 자녀교육 이야기 


고등학교 전 학년 성적(GPA) 올 A+로 수석 졸업, SAT 1580점 및 AP(고교 재학 중 미국대학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대학과정 인증시험 및 고급 교과과정) 12개 과목 중 8개 이상 5점 만점, 총학생회장과 동아리 회장 역임, Debate 및 모의 UN 등 다수 국제대회 수상, 대학 수준으로 작성된 연구논문, 회사 인턴경력, 중학교 때부터 지속한 봉사활동, 앱 개발 경력이나 특허보유. 


아들이 UC Berkeley 입학을 위해 접수했던 성적과 스펙일까? 아니다. 그럼 이런 완벽에 가까운 성적과 스펙을 갖추면 해외 명문대학 입학이 보장될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최상위 성적과 뛰어난 스펙을 갖춘 지원자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현실에서 이에 못 미치는 조건을 갖추고도 아들에게 경쟁력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니 특별한 이유 1. 발달단계를 따라간 적기교육 내 아이는 Late Bloomer였다

Late Bloomer. 우리말로 ‘늦깎이’, ‘대기만성’, ‘늦은 아이’쯤 되겠다. 심리학 또는 교육학 용어로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 뒤늦게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인정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들의 경우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학습 장애가 있어 선천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경우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일찍부터 많이 공부해 빨리 학업 성취를 내는 것이 점점 당연시되는 우리나라 분위기를 기준으로 할 때 한참 늦게 재능이 발휘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돌 무렵부터 책을 자장가 삼아 읽어주며 재워 그림책을 아주 좋아했다. 빨리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수면 전 독서가 때로 20권을 읽어도 잠이 들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었던 일등공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주면 대부분 한글을 빨리 뗀다던데, 18개월부터 말은 하면서도 오래도록 ‘글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글을 깨치도록 한 글자씩 짚어가며 읽어주기보다는 알록달록 예쁜 삽화들로 가득한 그림과 이미지를 눈에 담으면 상상력이 더 자랄 것 같아 한글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따로 하지 않았다. 


   7살에 미국으로 가다 보니 한글을 가르칠만한 상황이 더 안 되긴 했지만, 학교 입학하기 전 학습지 한 장을 풀린 적이 없어 앞으로 공부를 못 하려나 걱정하면서도 학업에 대해서는 꽤 무심한 엄마였다. 적기교육이 옳다고 믿는 철학도 아들이 자라면서 확고해진 것이지 사실 어릴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내 상황이 힘들다 보니 부끄럽게도 아이를 방목하다시피 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오히려 학습으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생활 속에서 때로는 놀면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랑 먹은 김밥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지와 잘 익은 파파야를 얼마에 팔지 친구들과 상의하면서 수학을 배웠다. 나뭇가지를 들고 “Follow me!”를 외치며 외국 친구들을 이끄는 동안 리더십을 쌓아갔고, 길거리에 가득한 현무암을 밟으며 NASA 천문대에 올라 쏟아지는 별을 관찰하면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알아갔다.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야겠다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유아기는 놀이가 곧 교육이라는 중요한 원리를 실천할 수 있었다. 호기심을 갖기 시작할 때 필요한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지킬 수 있었음에 그리고 더 큰 지식으로 뇌를 채우기 전에 즐거운 경험으로 학습의 뇌를 비운 것 또한 꼭 필요했음도 알게 되었다.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이 아닌 경험과 체험으로 채운 어린 시절은 우리가 평생 한 편이라는 정서적 유대를 갖는 것 이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소중한 교훈을 배우게 되기도 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우리가 머물던 곳은 아이들이 손으로 먹는 음식을 보노라면 동물의 사료인지 사람이 먹는 음식인지 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낙후된 시골 마을이었다. TV에서 후원 모집 광고를 할 때 나오는 가슴 아픈 아프리카 모습의 15년 전 버전이니 오죽하겠는가. 어느 날 아들이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데 우리나라 70년도 택시 같은 낡은 차 한 대가 멈추더니 아빠와 아들이 내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한글이 적힌 낡은 가방과 옷을 입은 아들은 아이들과 놀고 싶어했지만 군복 위로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아빠는 자신의 아들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상류층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아이들과 거리를 두도록 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자의 거만한 표정과 분위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는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고 권위있는 자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지만 부와 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가. 우리나라에서 보내준 옷을 입고 있는데 왜 우리한테 잘난 척을 하냐는 아들의 말처럼 우리가 당시 내세울 것 없는 모습으로 아프리카에 갔지만 적어도 구호 물품을 받아 입힐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배운 날이었다. 너무나 상대적인 부, 학력, 지위 같은 외적인 조건을 누구 앞에 자랑하거나 뽐낼 이유가 없고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자랑할 때 얼마나 초라해 보일 수 있는지느낀 날이었다. 그렇게 나와 아들은 ‘겸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아프리카를 떠났고, 여전히 아들이 명문대 학생으로서 자부심은 느끼되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당시에 뇌 발달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어릴 때 인간성과 도덕성을 가르치는 인성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니 시기적절한 교육을 잘 한 셈이다. 


 글은 저서 '당신은 나를 이끌어 줄 때_When you lead me(책인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40212568634?cat_id=50005811&frm=PBOKMOD&query=%EB%8B%B9%EC%8B%A0%EC%9D%B4+%EB%82%98%EB%A5%BC+%EC%9D%B4%EB%81%8C%EC%96%B4+%EC%A4%84+%EB%95%8C&NaPm=ct%3Dljconfwo%7Cci%3De92ed6cde45cba8366cf4049030844792f2b0309%7Ctr%3Dboknx%7Csn%3D95694%7Chk%3Dd3bad2d24ecf12c9f5e65ea285c4b0545f32f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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