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지나칠 과(過), 오히려 유(猶), 아닐 불(不), 미칠 급(及)으로 만들어진 사자성어.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는 자녀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다스리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원하는 대로 커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관계도 어긋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사자성어를 요즘 교육 현실에 동일하게 적용해 봐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저명한 부모교육 전문가인 박재원 에듀니티랩 소장은 2020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교육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질서가 초등 입학 전엔 나이, 입학 후엔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조기교육이 나이를 그리고 선행학습이 학년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입시의 승자와 패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아이가 피해자가 됨을 수년간 몸담았던 대치동 사교육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저서 「열두 발자국」에서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내용을 채우는 데 대한민국 전체가 몰두하고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남들보다 먼저 입력하는데 집집마다 많은 사교육비를 쓴다고 비판했다.
한편, 신의진 세브란스 소아정신과 교수는 20만 부 이상이 판매된「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라는 저서에서 무분별한 조기교육으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치료한 경험으로부터 발달단계에 맞게 천천히 키우는 것을 강조했다. 비단 이뿐인가. 앞서 언급한 서유헌 교수는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20년에 걸친 뇌 발달에 맞는 적기교육을 주장하며, 뇌 발달과 맞지 않는 선행교육이 가장 나쁨을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시기별로 뇌의 발달 부분과 각 부분이 기능하는 영역이 다 다른데, 아직 인지기능이 발달하지 않은 유아에게 인위적인 외국어 교육을 한다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어 정보전달력이 떨어지는 저녁 시간에 계속 뇌에 뭔가를 집어넣어 과부하가 걸리게 하는 방식은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고 하였다.
얼마 전 한 엄마의 블로그로부터 전문가들이 염려하는 우려가 실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접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난독증 치료를 위해 센터를 찾은 여덟 살 아들의 상담이 효과적이었다는 후기보다 왜 어린 나이에 난독증을 겪게 되었는지 나열한 학습 종류에 눈길이 머무른 것이다. 3년간 영어유치원을 보내면서 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뮤지컬 잉글리쉬를 보냈고 수년간 사고력 수학과 학습지에 피아노 학원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바람과 달리 영어는 여전히 잘 못 하고 피아노는 '떴다 떴다 비행기'밖에 치지 못한다고 했다. 모국어 기본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는데 외국어만 학습하다 학교를 입학하고도 한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선생님과 소통이 안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아이마다 걷고 말하는 시기가 다름을 인정하기에 신체적으로 그 시기를 억지로 앞당기려 애쓰는 부모는 없는 반면, 뇌와 인지발달은 고려하지 않고 학습을 주입하다 뇌 발달을 오히려 방해하는 엄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 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까지 선행학습의 폐해를 경고하고 적기교육을 강조하는데, 많은 엄마는 이 확실하고도 전문적인 조언을 믿지 못한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많이들 부러워하는 미국, 독일, 핀란드 등 교육 선진국에서도 발달단계를 거스르는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다는데 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고 시간과 돈을 몰방하다시피 아이를 키우는 걸까. 뛰어난 전문가 견해와 선진국의 교육 경향은 따르지 않고 전문성도 없는 주변 엄마들 말과 학생들을 수단으로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교육 시장의 논리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아이를 내달리게 하는 엄마들의 의식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중략)
요즘 주위에선 몇 년 전 그 설명회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신문에서 읽은 4년 치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대치동 초등 학원의 ‘의대반’을 들어가기 위한 6:1의 높은 경쟁률 이야기나 초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학까지 다 끝내야 한다고 강조하더라는 유명 수학학원 이야기에서 이제 사교육 시장이 불안 마케팅을 넘어 공포 마케팅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엄마들이 분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저서 '당신이 나를 이끌어 줄 때_When you lead me(책인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