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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ug 04. 2022

만 5세 조기입학을 추진한다구요?!

교육에 소명, 마음, 전문성, 경험있는 다둥워킹맘 작심비판

 다른 분야는 잘 모르니 뭐라고 얘기 못 하겠지만 '교육'분야는 심히 걱정이 됐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백 년간의 큰 계획)'라고들 어려운 한자어를 늘 말하지만 길게 잡아 십 년도 못 가는 교육 정책을 만들어 혼란을 안겨주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교육 경험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들을 수장으로 진정성 있는 정책이 실현될지 학부모로서 진심으로 걱정이 됐었다.


그런데, 정말 몇 달도 안 돼 우려는 실체가 되었다.


자녀를 길러보지 않았거나 다 대학에 가서 교육 실태를 정말 모르는지 대선 공약에도 없고 인수위 안건에도 없는 독특한 교육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해 제대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더구나 교육 당사자인 교사, 부모, 학생 등 직접 관계자 의견 수렴도 하나 없이 추진을 하겠다 하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나는 이미 대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들을 두었기에 사실 '만 5세 조기입학' 대상 가정이 아니지만 열거한 이유 외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자'로서 교육에 소명과 진정성이 있고, 대학교 때부터 20여 년 넘게 그곳이 어디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진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업무적으로는 공공기관에서 국가 영재교육사업을 5년간 담당했고, 개인적으로는 2년간 낙제했던 아들을 선행학습 없이 미국 최고 공립대학에 보냈으니 '교육다운 교육'에 대해선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만 5세 조기입학을 추진하는 이유가 1) 교육 취약계층을 공교육으로 흡수해 양질의 교육을 모두가 받게 하겠다는  점 2) 선진국의 교육을 많이 참고했다는 점 3) 아이들의 발달이 빠르니 교육을 빨리 시켜 사회에 진출(산업인력으로?)시킬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이해가 되었다.


하나씩 짚어보자면,

첫째) 좁은 돌봄 센터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픈 데서 시작되어 공교육이 흡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너무 공감한다.  


코로나로 더 심해진 교육기회와 수준의 격차는 국가와 공교육이 책임지는 게 맞다. 그런데, 취약계층을 차치하고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학년들만 보더라도 방과 후 돌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연년생 딸들이 입학하던 작년에 육아휴직을  돌봄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느 많은 워킹맘들이 그러하듯 5시면 끝나는 돌봄 교실과 연로한 친정엄마 찬스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원치 않는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수많은 워킹맘들이 자녀 돌봄이 해결되지 않아 휴직과 퇴사를 고민하는지 알기는 하는가?


그리고 양질의 교육? 우리나라 공교육이 그 말을 당당히 할 수 있으려면 솔직히 몇 년이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힘을 얻고 있는 건 불편한 진실이 된지 오래다.  


최근 신문기사에서 중앙대 김누리 교수의 강연 영상을 인용해 대한민국 청소년 1/3이 자살 충동을 느꼈고, 80%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를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라고 느낀다고 하였다.  


조금 전 'OCED 국가 청소년 지수'라는 검색어를 초록창에 치니 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가 올해도 취하위에 머물렀다는 익숙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연관 뉴스를 알리는 이미지에서 올해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나란히 보여주는 11년 전 뉴스 이미지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정책을 만들기 전에 좀 알아봤으면 좋겠다. 11년 전엔 그나마 없던 단어인 '텐투텐'과 '자물쇠 학원'이란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아이들을 과도한 선행학습과 사교육의 끝없는 경쟁으로 내모는 현실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위해 전력 질주해 달리고 있는 과장되지 않은 실체를 엄마들과 아이들로부터 직접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11년전이나 올해나 변함없이 어린이와 청소년 행복지수는 꼴찌 (출처 : 네이버)


둘째) 선진국의 교육을 참고했다는데 어느 나라 어떤 부분인지 묻고 싶다. OECD 38개 국가 중 만 5세 입학은 4개국뿐이라는데,  뭘 참고했다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수준에 못 미치는 내용물들을 그럴듯한 포장지에 속이 안 보이도록 구색을 갖춰 겉만 포장한 느낌이 들었다.


국을 말한다면, 난 회사에서 글로벌 창의교육 현황 연구로 미국 조사를 담당했고 지금도 사정상 미국에 있다. 세계적인 대학들과 혁신기업들이 미국에 포진되어 있는 것에 반해, 유초등 교육은 아이들을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들을 유학 보내고  공부는 대학부터 제대로 열심히 하고 어릴 때는 책과 놀이로 경험하는 게 진짜 교육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핸즈온(hands on)으로 그저 만지고 관찰하며 유아는 놀이를 통해 학습한다는 원칙을 실현한다.  1학년인 딸 베프가 4학년 수학을 공부하고 한국은 그렇게들 많이(faster and further) 한다고 미국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 함을 여러 번 경험했다.


아니면, 최근 북유럽 교육이 유행이니 핀란드와 덴마크로 대표되는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말하는가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평가받는 덴마크 루이지애나 박물관의 현장학습 나온 학생들

교육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미국, 독일, 핀란드 등은 선행학습을 안 시키는 걸로 잘 알려져 있고, 덴마크의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

3월 덴마크에 직접 가보니 도시 전체가 예술품인듯한 수도 코펜하겐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 안에 수백 년 된 고성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굳이 이야기 안 해도 OECD 청소년 행복지수가 1위 국가인 것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평일에 성이며 미술관 등 어디를 가도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와 감상하고 관찰하며  토론하고  성찰하는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와 문학과 예술과 과학과 건축을 배우며 생생한 창의융합교육을 하고 꿈을 키워가고 있는 덴마크 아이들과 우리나라 아이들이 너무 비교가 되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고 한참이나 마음이 쓰라렸다.


정말 선진국 교육을 참고하고 싶다면, 실제 어떤 분위기에서 학교급마다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참고했으면 좋겠다.     


셋째) 아이들의 발달이 빠르니 빨리 교육시켜 산업현장에 내보낸다는 건 사람을 교육함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것 같다. 


발달이 빨라졌다기보다 무분별한 선행학습으로 아이들의 뇌 발달을 거스르고 있을 따름이 아닐까? 발달 단계상 만 5세는 학습으로 길들여져야 하는 나이가 아니고 말랑말랑한 뇌로 맘껏 뛰어놀아야 할 나이이다.   


오죽하면 UN이 과잉학습으로 인한 영유아 발달권과 놀 권리 침해를 경고하고, 정부 차원에서 과잉학습을 방지하고 놀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을까.  정말 현실을 안다면, 뇌 발달을 역행하는 조기학습과 선행학습을 부추길 것이 뻔한 조기입학을 추진하면 안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릴 때의 몇 달은 아이마다 발달의 속도가 매우 다르다. 1학년인 막내딸의 경우 12월 27일생이라 조리원 동기들이 모이면 1월생들보다 키부터 이해도까지 너무 차이가 나 속상해하고 일 년 늦은 입학을 고민하곤 했다. 30분을 한 자리에 앉아있기 힘든 유아들의 신체적, 인지적 발달 단계를 이해는 하는 것인가.


또한, 교육을 빨리 시켜 현장으로 빨리 내보낸다는데, 그 말은 공교육을 통해 본인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명확히 서 있을 때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작년에 매일경제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신입생 자퇴율은 수년간 매년 올라 2020년 2만 명에 달했고 되어있다. 수많은 가정이 소위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달리고 있는데, 입학 후 2만 명이나 다른 학교로 옮기기 위해 또는 다른 이유로 그만둬버린다니 실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본인이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교육을 받아보지를 않아서 대학을 그만두는 것으로 물음에 대한 탐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오산일까.


우리나라 공교육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 같다. 그러함에도 선행학습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심각한 위기는 근본적인 책임이 절대 엄마와 아이들에게 있지 않다.


그걸 해결해야 할 주체는 먼저 국가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산적해 있는 묵은 교육 과제를 먼저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가 된 후 새로운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게 맞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꼬집어 화제가 된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대사처럼 우리 아이들은 지금 놀아야 하고, 지금 건강해야 하고, 지금 행복해야 하니 말이다.     

    

드라마 속 망상증 환자의 실언이나 비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 그게 선진국 교육의 실제 모습이니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가 행복한 미래가 꿈꿔질 수 있도록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정책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이전 브런치 글에 쓴 '독수리를 새 장에 가두지 마라'는 비유처럼, 우리 아이들은 새장에 갇혀 있어야 할 독수리가 아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나며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독수리로 자랄 수 있는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는 실현되리라 믿는다.


그럴수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교육 정책은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있고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맡아야한다. 문서로 일하는 행정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사람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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