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운다는 것1

딸들과 함께 하는 인생은 재미있다.

by yeony

난 나의 인생을 잘 조정하면서 살 수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나의 아이들을 내가 잘 안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나름 공부를 많이 하고 아이들을 훈육했었다. 육아서적도 많이 읽고, 강의도 많이 들으러 다녔고, 아동심리에 관한 책도 읽었고, 유튜브에 있는 미국의 유명한 보모가 아이들을 돌보는 동영상을 참고하기도 했고 아무튼 나름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었고, 큰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들 키우기 위해서 준비한 모든 것이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나의 신조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고, 큰 아이가 중학교2학년이 되면서 흔히 말하는 중2병을 겪으면서 나의 오만과 편견을 깨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부단한 노력의 시간은 단순 중학교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 시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나의 뱃속에서 나와 함께 숨쉬기 시작한 순간부터 출발이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의 잘못된 시선과 가치관을 고치면서 아이들과 소통이 원활해졌고, 지금은 아주 좋은 인생의 친구들이다.


큰 아이는 너무나 순했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낮 밤을 정확히 가렸다. 모유가 양이 많지 않아서 분유와 섞어서 수유를 했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밤 10시 수유를 해서 재우면 아침 6시에 '응애' 하고 한 번 소리를 냈다. 옆집에서 백일잔치할 때까지 아이가 태어난 것을 모를 정도로 울음이 없었다. 수유시간도 낮에는 4시간 간격으로 거의 정확했었고, 수유도 원샷 원킬로 굉장히 수월했다. 배변 시간도 비교적 일정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아토피 피부염도 없었고 무엇보다 보채거나 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예방접종 외에 병원 가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개월 수에 맞게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너무나 좋았다. 둘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낮밤을 4주 만에 정확히 가렸고, 수유시간 역시 일정했으며, 원샷 원킬은 아니었지만 두 번 이상 나누어 먹지는 않았다. 큰 아이보다 울음소리 컸고, 약간 징징 거리기는 했지만 큰 애가 워낙 수월했기에 작은 아이의 징징거림은 그냥 애교 수준이었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아기를 키우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때에 맞추어서 식사를 할 수 있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재 시간에 편히 소파에 앉아서 볼 수 있고,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큰 아이를 키우면서 이 모든 것들을 했었고, 둘째가 태어난 후에도 거의 비슷하게 생활을 했다. 물론 친정 부모님을 도움을 약간 받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순했던 것은 정말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내가 태교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하하 지금은 그저 웃는다.


올빼미 생활을 하면서 약간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나는, 임신을 한 후에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꾸었다. 밤 11시 전에 무조건 취침을 하려고 노력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최대한 했다. 클래식을 전공을 해서 오전에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악기 연습을 했고, 낮시간에는 행진곡을 주로 들었고 밤에도 잔잔한 클래식을 듣거나 다큐멘터리를 주로 시청했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가 태교 때 들었던 음악과 책을 큰 아이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끊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태교를 위해서 난 과감히 드라마를 끊었었다. 초등학교 때 별명이 '텔레비전 귀신'이라고 할 만큼 TV 시청(특히 드라마와 영화)을 좋아한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주 큰 결심을 한다. 바로 집에 TV를 없애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고, 얼마 전에 우연히 생긴 TV를 방송채널을 신청하지 않고 OTT를 크롬캐스트에 연결해서 그때그때 보고 싶은 프로그램만 선택해서 시청한다.


남편의 키가 조금 작다. 내가 164cm인데 나보다 0.5cm 크다. 그래서 아이들 어렸을 때 키 크는 것에 매우 집중을 했었다. 일찍 자야 성장호르몬이 나온다고 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무조건 밤 9시에 취침을 하도록 스케줄을 짜서 생활을 했었다. TV를 없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절제가 안 될 것 같아서 이고 두 번째는 아이들이 TV 시청 때문에 취침시간을 놓치거나 할 일을 못할까 봐였다. 책을 많이 읽기를 원했고, 컴퓨터 게임보다 보드게임을 하기를 원했고,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놀기를 바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수영과 체조를 가르쳤다. 누구보다 키 크기에 진심이었던 나는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성장판 마사지를 5년 정도 해 주었다. 호르몬 주사를 맞혀볼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일단 내가 작은 키가 아니어서 영양제와 식사를 영양소를 잘 챙겨서 먹이려고 노력했고, 큰 아이는 162cm, 작은 아이는 163cm이다. 이것은 정말 나의 노력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둘 다 편식이 있었기에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식단을 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둘 다 내가 직접 해준 음식을 좋아해서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집밥을 주로 먹었다. 언급하였듯이 편식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음식재료(특히 야채 종류)는 아주 잘게 다져서 볶음밥이나 스파게티를 했다. 토마토는 우리 집 여름주스의 가장 메인재료였다. 토마토 계절이 오면 농수산시장에 가서 못난이로 다 익은 것(더 싸다)을 박스로 사서 껍질을 벗긴 후 냉동실에 보관해서 블루베리, 꿀, 화분 등 각종 과일들과 함께 주스로 만들어서 먹었다. 지금까지도 아이들은 내가 만든 주스를 가장 좋아한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해가 되지 않는 음식 중에서)을 마음껏 먹는 것이 몸에 좋은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큰 아이가 콩의 식감을 너무나 싫어했다. 억지로 먹이다가 크게 체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억지로 음식을 먹이지 않고 대체 식품을 찾았다. 콩의 식감을 싫어했기에 콩 대신 두부요리를 해 먹이고 음료는 우유보다는 고소한 두유를 먹었다. 탄산음료 대신 집에서 직접 갈아 만든 주스를 먹었고(지금도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때 주스나 두유로 마신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 그리고 생활패턴이 아이들을 옭매이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과거에는 이것이 힘들었지만 현재 본인들이 외부에서 인정받고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이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고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기되기 전 까지는 아이들의 훈육을 매우 엄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특히 엄하게 교육을 시켰다. 방황하는 질풍노고의 시절에는 이 예의범절을 모두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아이들 아빠가 화를 많이 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잘 지키고 오히려 지키지 않는 친구들을 더 이상 교류하지 않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면서 그런다. 살짝 어이가 없지만 뭐 괜찮다.


아이들에게 어려가지 다양한 경험을 시키고 싶었고, 초등학생 시절에 교과학습 외에 많은 것들은 가르쳤다. 하지만 절대로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강요를 한 적은 없다. 예를 들어서 큰 아이에게 악기 하나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해금을 가르쳤다. 선택의 이유는 나는 첼로를 전공했는데 악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어디 가서 자랑을 하기 위해 연주를 하려면 필요한 부속품들이 있는데 그것이 늘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독특하면서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국악기 중에 현악기를 찾았는데 그것이 해금이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설명을 했고 다양한 악기의 연주 방법과 소리를 들려주고 결정을 하게 한 것이다.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최종 선택은 늘 아이의 몫이었다. 나의 추천과 다르게 선택을 한 것도 물론 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추천으로 돌아온 경우가 많다. 큰 아이가 나의 의견을 잘 받아들였다면 작은 아이는 자기 주관이 굉장히 뚜렷했다. 그것 또한 존중했기에 되도록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었고, 아니건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돌이켜보면 내 아이들은 나의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너무나 고맙다. 본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개척하면서 부모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알고, 참 잘 자라주어서 너무나 고맙다.


내가 아이들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가?

아니다.

난 늘 조언자이다.

징검다리이고, 마중물 역할을 한다.

단지, 어려운 세상 조금은 쉽게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에 새가 되어서 속삭이거나 바람이 되어서 아이들 주변을 시원하게 해 주거나, 따뜻한 햇볕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뿐이다.


난 현재도 아이들의 러닝메이트이다.

누군가 다른 메이트가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물러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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