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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Jul 04. 2024

F 남자를 사랑하는 법

만난 지 13년째. 

내가 만난 그는 F의 남자다. 

100점 만점에 공감 60 예쁜 말 80 다정함 80 대신 싸울 때 나쁜 말 99.9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T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T라 한다면 정도의 다름은 있겠지만 다분히 이성적이고 그래서 깊은 공감을 원하는 여자들과의 성향과는 상극이라고 해야 될까. 와중에 내가 F를 만난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운명일까.   




우리가 만날 때만 해도 MBTI는 학교 다니던 그때의 스쳐 지나가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적성을 찾는 것은 타로카드로 내 장래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것보다는 확률적으로는 훨씬 높겠지만, 그저 학창 시절 지나치는 적성검사 정도로 간주해야만 할 정도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것으로 서로의 성향을 판별하고 나눈다는 것은 실은 그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MBTI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한창 유행했던 혈액형별 성격 분류법처럼 급속도로 퍼졌고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이 진행되고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 서로의 MBTI를 확인하는 것이 국룰처럼 되었고, 그렇게 알게 된 서로의 MBTI는 그와 그녀의 성격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입한 현재의 시대에 10여 년을 함께 하고 나서야 나는 그가 F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MBTI가 같은 것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언제였을까, 6-7여 년 전 시아버지가 재미로 권한 MBTI 검사 때만 해도 같은 성향이네 싶고 넘어갔던 것이 이제야 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때도 같고 이제도 같았는데도 나는 아직도 F의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대개의 남자들은 T라고 한다. 여기서 성별을 굳이 나누어 성향을 구분시킬 이유는 없겠지만, 우스갯소리로 T발 너 T야의 돌풍을 선도하던 유행어가 문득 스칠 만큼 꽤나 T와 F를 구분 짓는 것은 J와 P를 나누는 것만큼 MBTI에서 꽤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F의 남자와 살아서 참 부럽다고. 그럼 내 속에서 미처 지르지 못한 괴성이 끓어오른다. 그러다 아니라는 말이 목젖을 치고 나오는 것을 참을 인 자 셋을 세어서야 비로소 인내할 수 있게 된다. 대다수가 간과한 것은 F의 남자는 대개의 F의 여자와 다르다. 대체적으로 여자들의 F 성향은 꽤나 공감백배이며 상대의 일을 마치 내일처럼 생각한다. 그 정도가 높을수록 절실하다. 이미 공감이라는 능력을 탑재한 여자로서 T를 탑재한 것과 이미 T인 상태에서 F를 겸한 남성의 뇌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비과학적 내용이며 작가의 뇌피셜임을 공지합니다)




그러면 나의 F의 남자는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객관을 내세우는 주관적 리뷰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누구보다 나의 F에게 객관적이며 또한 주관적이다. 그는 꽤나 공감적이고 다정다감하며 도저히 남자에게 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한다. 이를테면 속상할 때 여성 친구에게서 들을만한 위로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F의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토록 공감 만 배이고 다정다감한 말을 수없이 선사할 수 있는 그에게 실은 나는 불만이 아주 많다. 싸울 때 누구보다 따가운 말투를 내뱉는다는 것. 누구보다 F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기에 공감대를 이용한 최악의 말이랄까, 싸울 때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 


슬퍼서 힘들 때 의지한 만큼의 10배가 돌아온다. 공감받은 것의 정확히 열 배만큼 그대로 돌아온다. 





나는 F의 남자와 살아가고 있는 주부이다.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며, 남편이다. 

F의 기질이 다분한 그는 누구보다 자상한 아버지이며, 다정한 남편이다. 


사랑할 땐 누구보다 뜨겁고 사근사근하게 다가오는 그가 나는 가끔 불편하다. 


F의 내가 

F의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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