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회귀 - 음악편
김광진의 <편지>를 들으며 느낀 그 슬프고도 숭고한 느낌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말도 시대 흐름을 타고 변질되고 있기에 이 시대에 ‘사랑’이라고 두 글자만 떡 하니 써놓고 ‘그게 그런 거다’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정의처럼, ‘도대체 그게 뭔데?’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게 뭐냐면… 그러니까… 그런데 그걸 왜 설명해야 하지? 때로는 설명보다 이미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 말이다.
… 시대가, 감성이 어쩌다 이렇게 불통이 되었을까?
현대의 우리 언어는 ‘사랑’이라고 말해도 사랑이 아니고, ‘자유’라고 말해도 자유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으니 참 어렵다. 세대에 따라, 사회 관념에 따라, 이념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성별에 따라 그 풀이가 제각각이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갸우뚱거리지 말고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다.
아무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이라고 말한 부분은 먼저 가사에 나타나 있으니 따로 헤아릴 것이 없고, 멜로디에 나타나 있으니 느끼면 그만이다.
음악의 힘은 선율이 아우르는 감정에 있고, 그 감정에서의 순수성에 있다고 본다. 혼자서만 갖는 감성이 아니라 물결처럼 잔잔하게 널리 퍼져나가지만, 그 강력함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커진다.
음악! 자체만 놓고 보면, 무신론자인 나조차 사실 신을 관여시키고 싶은 심정이고, 인간적인 속세에 놔두고 싶지 않은 욕구마저 든다.
문제는 가수와 작곡가도 사람인지라 시대적 상황이나 이념적 논리에 얽매일 수 있는데, 이 곡의 가사를 보면 이건 시대적으로든 이념적으로든 어떻게 달리 해석할 수 없는, 그저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감정 그대로다. 게다가 너무나 솔직하기에, 아! 듣기만 해도 이 곡은 뭔가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에 기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맞다. <편지>는 김광진의 아내 허승경 작사, 김광진 작곡이다.
김광진이 아직 무명의 음악가일 때, 여자친구 허승경에게는 미래가 불투명한 ‘딴따라’와 교재를 허락하지 않는 부모가 있었다. 허승경의 부모는 김광진과 허승경의 교재를 결사 반대했고, 이 갈등은 가난한 음악가에게는 이겨내기 힘든 어려움이었다.
결국 허승경은 부모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한 남자와 선을 봤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김광진은 너무나 화가 나서 그 남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그를 만나보니 그 남자는 너무나 멋지고, 집안도 부유하며,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김광진은 그 남자가 연인 허승경에게 자신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김광진은 그녀를 포기하려고 했다. 영화 <동감>의 주인공도 바로 이런 심정을 느꼈을 때, 이 곡이 흘러나온다.
선을 본 남자 역시 허승경에 대한 감정이 진심이었다. 남자는 얼마 후 유학을 떠나야 했다. 남자는 허승경에게 같이 떠날 것을 청하지만, 허승경은 결국 가난한 음악가인 김광진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남자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좋은 여자 만나서 잘 살 것 같았지만, 김광진은 자신이 버리면 잘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걱정되었기에 그렇게 선택했다고 한다. 이게 전하는 말이라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쉽지, 아마도 죽고 싶을 만큼 갈등이 있었을 터이다.
허승경의 대답을 기다리던 남자는 대답 없이 긴 시간이 흘러가자 허승경이 자기 대신 김광진을 선택한 것임을 깨닫고는 김광진을 따로 불러냈다고 한다. 김광진은 그 남자가 허승경을 두고 마지막 결전을 각오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남자는 허승경에게 전해달라며 편지 한 통을 남기고는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노래 <편지>의 가사는 바로 자신 역시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포기해야 했던 한 남자의 진솔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 편지의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그래서 노랫말의 주인공은 김광진이나 허승경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이를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 마치 하늘의 별자리처럼 아름답게 빛나도록 걸어두기까지는 그 마음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김광진의 상업적인 음악은 그가 연세대학교 시절 MBC 강변가요제나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 근처에도 못 가보고 탈락한 데 반해서,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 교내 가요제에서 동물원의 리더 김창기를 밀어내고 대상을 수상한 경력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 뒤로 <더 클래식> 결성 후의 음악은 그 성패와 관계없이 필자 개인적으로는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즉, ‘음악을 위한 음악’ 역시 예술인지라 마음을 있는 그대로를 담은 선율로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과, 그저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의 혼성으로 빨리 익숙해지면서도 친근한 음악은 분명 다르다.
이문세의 곡 중에 <시를 위한 시>를 들었을 때, 도대체 詩를 위한 詩에 쓰이는 시어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운율이 있는 음악 자체가 바로 진정한 ‘시를 위한 시’는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김광진’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상업적인 히트곡 시대에서 ‘음악가’의 ‘음악’은 그 시대를 유행하는 상업성에 갇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무명의 명곡들이 모래 속에 파묻힌 보석처럼 머물다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사랑을 예찬하고, 예술만을 표현하기에는 시대가 또는 대중이 원하는 다양성은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2024년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음악과 예술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서 사람의 감정과 솔직함, 진솔함, 그리고 그런 제반 감성이 모두 상품화되어 판촉 되고 있는 현실의 한복판에 서서, 가슴 아픈 고독함과 추억들에 대한 미안함과, 설명하기 힘든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고… 눈물 나도록 그리운 청춘의 시절과 끝까지 부여잡고 싶은 애틋함까지, 혹은 미련이라거나…
찬란한 젊은 날의 풋풋했던 사랑은, 그 안에 있을 때는 결코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잘 몰랐던, 어리석기 그지없는 모두의 애틋한 노래이기에….
“그러니까 우리 모두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진심은 언제나… 씨큐, 씨큐…”
[영화 <동감>에서]
마지막으로 이 곡도 워낙 유명해진 명곡이라 다양한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거나 편곡하여 다시 불렀는데,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시라고 정보를 남긴다. 끝.
김광진의 원곡
윤하
성시경
악동뮤지션 수현
아이유
규현
김필(5.18 40주년 기념식)
BMK(나는 가수다 시즌1, 2011.05.29.)
브라운 아이드 걸즈 제아(리메이크 앨범)
현진영
박효신
에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