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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지 않은 우울증

by 염쪼


#친근하면서도 낯선



"우울증으로 보입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차.

집 근처로 병원을 옮기면서 새로운 검사를 진행했고,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추가되었다.



나: ".. 우울한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잠이 안 들고, 잠들면 자주 깼을 뿐이에요.

소화가 잘 안돼서 밥 먹는 양이 줄었어요.

출근하려고 일어날 땐 몸이 천근만근 같아요. 일할 때는 집중이 안돼서 실수를 자주 해요.

집에선 누워만 있어요. 방에 앉아 걸레질하고 있는 남편과 '엄마엄마'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괜히 살아서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나 봐.

그냥 그랬을 뿐이에요.

이 감정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우울하다기보다는... 굳이 표현하자면 무기력해요.'

머릿속에서 나열되는 생각들을 진정시키며 진료실 책상에 시선을 두었다.


의사: "검사결과 점수가 30점이 넘어요. 약물치료를 하셔야 해요."



조심스럽지만 명료한 대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내리깔자 양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에 동요한 건 아니다.

공황발작이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과긴장상태가 되었다.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입이 바짝 말랐다.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도 몸이 자동적으로 불안해졌다.


우울증.

숱하게 들어온 병명이라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우연히 나와 비슷한 증상의 사람을 보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함께 겪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우울증이라는 병명 때문에 우울감이 많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환자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 공허감, 자기 비난(& 죄책감)이라고 한다.



의사:"공황 증상은 어떠세요?"

나:"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양손을 포개었다. 원래는 말을 할 때 제스처가 많은 편이었데, 손을 모으고 있으니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눈을 마주치며 차분하게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을 보았다가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까지 눈 맞춤은 어렵다.

떨리는 목소리와 어색한 자세, 여기저기 헤매는 시선처리. 그래도 상대는 의사니까, 매일 이런 사람 만날 테니까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의사:"먼저 약을 드셔보시고 3주 뒤에 다시 뵙죠."



두서없이 느릿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던 선생님과 진료가 끝났다.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한 뒤 진료실을 나왔다. 처방된 약이 나오길 기다리며 정수기 앞에서 미지근한 물을 홀짝인다. 공황발작이 시작된 이후로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선 종종 멀미를 느끼곤 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 끼자니 멀미가 날까 싶어 입구 쪽 문 앞에 멀뚱히 서있는다.


'우울증. 병명은 같아도 각기 다른 모양의 우울증이겠지. 어떤 사람은 별모양, 나는 육각형, 누군가는 번개모양...'

의미 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붙잡지도 않고 나열해 본다. 실속도 없고, 결론도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에는 딱 좋다. 목적지 없이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oo님~' 하며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전보다 두터워진 약봉투를 들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지금부터 내 목표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내일 아침에도 눈을 뜨고 숨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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