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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살아야 하죠?

우울증 증상 기록

by 염쪼


# 누구나



처음 공황발작이 일어났던 때는 일주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다. 가까운 지인들과 갈등이 생겼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나를 제외한 대화방이 있었다는 사실과 예전부터 나눈 뒷담화 내용을 듣게 된 것이다. 함께 했던 추억들과 뒷담화 내용이 뒤섞이며 혼란스러운 감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수면장애와 식이장애가 함께 생기며 체중이 감소했고. 온종일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관계를 정리하고 난 후 금방 좋아질 줄 알았던 공황발작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직장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중,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증상이 나타나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 정 못하겠으면 그만둬도 괜찮잖아.'

일과 엄마의 역할. 모두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접어두기로 했다. 가족들에게도 솔직히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과 똑같이 다루어져야 했다.





"우울증이 회복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의 공황장애를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셨다. 하지만 우울증은 호전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그러니 처방된 약을 꾸준히 먹으며,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이 있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의외로 꽤 긍정적인 편이었나 보다.

잠을 못 잘 때에도, 소화가 안 되어 밥을 못 먹었을 때에도,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큰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진단명을 알게 되어 마음이 편했고,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대로 약 잘 먹고 상담도 받고 하다 보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길 수 있고,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으니까.

잠깐 세게 앓고 가는 열병처럼 느껴졌다.







# 충동 조절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여느 날처럼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고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시에 탔다. 익숙한 길들을 지나 직장 근처의 사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한 차량이 택시 뒷좌석 문과 충돌할 듯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나는 차량의 정면에 직접적인 충격으로 크게 다칠 것이 상상되었다. 반사적으로 몸이 긴장해야 할 그 타이밍에 놀랍게도 불현듯 '이렇게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을 *'수동적 자살사고'라고 하였다.

(*'죽고 싶다'는 감정이나 생각은 있지만, 실제로 죽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 의지는 없는 상태)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지금 당장 삶을 포기하고 싶다라기보다는,

'우연히 사고가 나서' 혹은 '잠이 든 채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다.


다행히 택시기사님의 빠른 판단력으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기사님은 놀라시며 난폭운전자에게 화를 내셨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손님을 진정시키시며 끝까지 직업의식을 발휘해 주셨다. 그저 그 상황에서 죽음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던 나 자신이 당혹스러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이 돌이켜보면 송구하다.





상담사: "사실, 이런 상태가 정말 위험해요. 소리소문 없이 삶을 포기해 버릴 수 있거든요."


다가온 심리상담시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자 상담사님은 위험을 알려주셨다. 잘 지내는 듯 보였던 많은 공인들이 어느 날 생을 달리하는 경우가 이와 같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신은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지 않도록 말씀해 주셨다. 검사 결과 회복탄력성이 높고, 자신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려고 있으니 좋아질 것이라는 응원도 해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자신까진 없지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상담사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내면의 힘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멍하니 앉아있으면 떠오르는 것은 '굳이 왜 내가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가장 명확한 이유 한 가지가 있다.

오직 우리 아이. 아이를 생각하면 가능하다.

그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버티자는 마음이 한주가 되고, 한 달이 되겠지.



가장 힘든 순간에 나를 버티게 해 주는 것 또한 사랑이구나.


(당시의 내 표정을 만화로 그린다면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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