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悪人] 부서장 열전
악랄 : 악독하고 잔인하다
비열 : 하는 짓이나 성품이 졸렬하고 천하다
악인 : 악한 사람
앞에서 자본가를 나치에, 회사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비교한 바 있는데
실제로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나치 못지않게 너무나도 악랄하고 비열하다
필자가 00카드에서 만난 정말 악랄하고 비열했던 부서장이 몇 명 있었는데 이들은 작은 악(小悪)이라면
이들이 모두 얼마 후에 임원으로 승진한 것을 보면 회사는 그 자체가 거대한 악(巨悪)이다
K는 00카드에서 몇 안 되는 여성 부서장이었다
201x년 처음 부서장이 된 K는 의욕에 넘쳤었고, 매월 정규 업무 외에 부서원 2~3명씩 소그룹을 만들어서
업무개선 및 신규 마케팅 아이디어 발표대회를 하자면서 상품권 등을 우수팀에게 시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직원들은 정규 업무 외에 별도 작업을 하느라 업무량은 1.5~2배로 늘어났고
야근과 아침 조기 출근해서 업무량을 메워야 했다 물론 초과근무수당은 올릴 수 없었다
말로는 시상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한 번도 시상한 적은 없었다
그에 대해서 따지는 사람도 물론 아무도 없었다
K는 또 본인이 원하는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수십 번이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곤 했는데
K가 원하는 대로 맞추다 보면 버전 30~50개 까지 가기 일쑤였지만, K자신도 나중에는 기억을 못 해서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오기가 부지기수였다
말로는 항상 K자신은 합리적인 사람이며 어떤 아이디어나 의견이든 환영한다면서도
실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K가 예전 다 해 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면서 무시하기가 다반사였다
(역시 나는 00한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전혀 00 하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히려 그 반대다!)
아무리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K에게는 그저 K가 경험했던 수많은 시행착오 중에 하나 일 뿐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표리부동한 K에게 질리기 시작했고 K에게 본인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고자 더욱 노력했으나
대부분의 부서장이 그렇듯이 K에게는 이미 생각한 바가 있었고 아무리 필자 아이디어가 합리적이더라도
관철되지 않았다
<쉰들러리스트>에서 건물을 지을 때 유태인 여자가 자신은 건축 기술자라며 나치 친위대 소장에게 이렇게 지으면 건물이 무너진다고
기초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권위에 반기를 든 유태인 여자가
불쾌해진 나치 친위대 소장은 유태인 여자를 그 자리에서 총살하고 나서 유태인 여자 말대로 기초공사를 다시 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해인가 K는 필자에게 갑자기 근무평가 최하점을 주었는데
아마 K는 내가 그 유태인 여자처럼 K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K에게 필자 아이디어를 관철시켜 달라고 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필자는 부서장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직원이라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평가와 소문은 두고두고 필자를 괴롭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필자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피력하면 안 되는 거였다
무조건 납작 엎드려 예스맨으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필자는 필자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또 16~17시 정도에 보고서를 만들라고 하면서 K는 항상 18~19시가 되면 퇴근했다
하지만 퇴근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K가 출근하기 전까지 책상에 올려놓으라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
당연히 야근이 생활화되었고 때에 따라서는 철야근무도 해야 했다
K는 부서장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복사용지 한 권 가까이 되는 각종 백업자료를 요구했는데
그 자료는 당연히 부하직원들이 야근과 철야를 하면서 만들어야 했다
다만 임기응변 능력과 포장 능력은 대단해서 항상 임원이나 사장이 뭔가 물어보면 숫자를 섞어가면서
그럴듯한 답변을 하곤 했다(물론 대답은 항상 K 본인이 다 했다는 식이었다)
어느 날인가 K가 각 직원마다 원하는 바를 말해보라고 하길래
표리부동한 K의 태도에 질려있었고 야근에 지쳐있던 필자는 당시 모 정치인의 구호였던 "저녁 있는 삶"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후에 필자는 지점으로 발령 났다(쫓겨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몇 년 후에 K는 임원으로 승진했다
P는 지점장으로 왔던 사람인데 입에 걸레를 물었다고 할 정도
욕설과 폭언을 함부로 하던 사람이었다
회의시간에 "야 인마", "개XX"등등 20년전 필자가 군 시절에나 들어봤을 법한 욕설을 공공연히 하곤 했다
부하직원에게 저급한 언행만큼이나 하는 행동도 악랄하기가 그지없었는데
회식 날엔 항상 16시나 17시쯤에 김밥이나 떡볶이 등의 값싼 간식류를 먹게 했는데 알고 보니
회식 때 음식값이 많이 나올까 봐 직원들 배를 미리 채워 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회식 때마다 매번 한우 등심이라도 먹었을 것 같지만
회식 때 가는 곳은 항상 가게 사장이 P와 동향인 허름한 순두부찌개 가게였고 우리가 메뉴를 마음대로 시킬 수 도 없었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주는 대로 먹어야만 했다
지점 운영비등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돈은 모두 자기 돈이라는 생각이 깊숙이 뿌리 박힌 사람이었다
지점 운영비에 얼마나 집착했던지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사장이 지점에 친히 방문하면서 하사품으로 커피머신을 한대 설치해주고 간 적이 있는데
커피머신과 함께 주고 간 캡슐은 얼마 안 가 다 동이 났다
당연히 직원들은 지점 운영비로 커피 캡슐을 샀다
그다음 날 바로 난리가 났는데 P가 왜 커피 캡슐을 지점 운영비로 사냐고 노발대발했다는 것이었다
커피머신으로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캡슐은 직원들 돈으로 사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이후로 사장이 주고 간 커피머신은 근사한 장식품이자 눌러봐야 멀건 물만 나오는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매일 법인카드로 술을 마시던 P가 하루나 이틀만 술을 안 마시면 한 달치 캡슐은 사고도 남는 돈이었지만
P에게는 부하직원들이 마시는 커피보다는 P본인이 먹는 술이 더 소중한 것이었다
P도 몇 년 후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P만 직원들에게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필자가 소속한 지점이 회사에서 1등을 하고 있어서
I사장이 고생한다면서 먹고 힘내라면서 홍삼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유명 홍삼제품인 정00의 홍삼정 형태의 제품을 하나씩 주겠구나라며 내심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삼이 과연 들어갔는지도 의심스러운 홍삼향이 나지만 설탕물 같은 팩음료 30포가 사장이 하사한다는 홍삼이었다
인터넷 최저가가 15,000원 정도였으니 한 팩에 500원 정도 하는 거였다
00 카드 사장이 하사한다면서 15,000원 짜리 홍삼음료 주고 생색내는 거였다
주고도 욕먹는 선물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이후에 왔던 또 다른 K도 P못지않게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는데
필자는 업무상 시상을 통해서 본사에서 판촉비로 50만 원을 따온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K가 부르더니 이 판촉비에서 K가 30만 원을 써야겠으니 본래 목적인 판촉비로는 20만 원만 쓰라는 것이었다
역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개 직원에 불과한 필자가 K를 이길 순 없었다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통해 K가 자택 주변에서 한정식, 한우 고깃집 등에서 외식을 즐겼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었다
00카드에서 부서에 내려오는 운영비는 모두 부서장 돈이라는 공식 같은 게 있나 하고 의심해 볼 뿐이다
그다음 A는 군 장교 출신인 것에 대단한 자부심 있는 사람이었다
A주변에는 A가 공식 인정한 심복들이 있었다
마치 박정희가 심복들의 말만 믿고 충성경쟁을 즐기던 것처럼 심복들 하고만 이야기했고 그들의 말만 믿었다
심복이 아닌 다른 직원들이나 심복들과 친하지 않은 직원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소외되었다
코로나19로 회식을 못하게 되자 남는 운영비로 본사의 다른 부서에선 인당 5~6만 원씩 자유롭게 쓰게 했다는데
A는 각 직원마다 약 1만 원어치 빵을 사주는 것으로 끝났다 아마 심복들과 A와 친한 직원들과 따로 맛있는 오찬 또는 만찬을 했으리라 역시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위 K와 A는 임원이 되지 못하고 부서장에서 아웃되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앞서 여성 K와 P의 경우 부하직원을 마른 수건 쥐어짜듯 미친 듯이 쥐어짜는 스타일이었던데 반해
후술 한 K와 A는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4명 모두 부서 운영비는 모두 자기 공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일했다)
모두 x86세대였던 이들은 모두 부서장으로는 함량 미달의 사람이었다(그중에 임원이 된 2명은 특히나 더 그랬다) 그저 운이 좋아서 부서장까지 된 사람들이었고 술자리에선 항상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일장연설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으며 회식이라도 하면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그럴듯한 건배사를 곁들인 건배 제의를 해야 했다 그런 부서장으로 가득한 회사에서 항상 디지털이니 혁신이니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필자는 냉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특히 틈만 나면 부하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던 P가 임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의 악랄함에 치가 떨렸는데 여태까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도 P보다 악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P가 부하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그때부터 회사의 비열함과 악랄함을 꼭 기록으로 남겨서 알려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필자 생각에는 00카드에서는 부하직원을 쥐어짜는 정도가 부서장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것 같다
설사 그 과정에 직원에게 아무리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거나 불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말이다
마치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을 더 가혹하게 두들겨 패는 감시병이 더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