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까멜리아가 불러일으킨 유년의 기억
동백이가 차렸던, 술도 팔도, 서비스 땅콩도 있지만, 노규태존이 있는 카페 까멜리아, 카운터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던, 잘 생기고 살집 통통한 고양이가 무심히 반겨주었다. 이름은 용식이라 했다. 낯선이의 터치도 잘 받아주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근사하게 포즈도 취할 줄 아는 포토제닉한 고양이였다.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의 촬영지인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숙소가 있는 영일대 해변에서 버스를 타니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는 동안 포항 시내도 보고, 거대한 포항제철 입구도 지나치면서 심심치 않았다. 마침내, 배들이 줄지어 정박한 생존의 터전 바닷마을에 닿았다. 아직도 태풍 뒤끝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다의 심기가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난데없이 포항에 가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 모든 방이 오션뷰라는 한 호텔과 까멜리아 때문이었다. KTX타고 종착역에 내려 찾아가보니 과연 모든 방이 오션뷰이긴 했으나... 저멀리 포항제철 공장 굴뚝이 바다 전망의 반쯤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밤에는 공장의 불빛이 화려해 그럴싸하긴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까멜리아에서 소소한 굿즈들을 사고, 허브티 한잔 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연인들 두쌍이 각자 호젓하게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창가에 자리를 잡자 한 커플이 곧 나가버렸다. 2층 창가를 독차지하고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렸을 적 일본 광업소가 남기고 간 적산가옥 사택에 살았던 추억이 밀려왔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부터 졸업할때까지 몇 년 살았던 것 같다. 화장실이 집 내부에 있었고, 동그란 솥단지 모양에 온몸이 잠기는 목욕탕이 있었다. 비록, 화장실은 푸세식이긴했으나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 매우 깊었고, 변기를 덮는 나무 덮개가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지금의 파우더룸쯤으로 여겨지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 집의 나무 색은 일본인 거리의 칙칙한 고동색 나무색과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께서 춘향목이라고 우리나라 강원도에서 나는 아주 고급 목재라고 알려주셨었다. 욕탕 구조는 부엌으로 연결된 아궁이가 있어 밑에서 불을 때면 바로 덥혀지는 식이었다. 목욕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쇠로 만든 욕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내가 목욕 중인지, 삼계탕이 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집 구조도 완전 일본식이었다. 어머니가 유다락이라고 부르던 수납공간이 방마다 있었고, 다락도 많아 숨바꼭질 하기 딱 좋았다. 몇년 전 회사일로 일본 출장을 갔을때 도쿄 도라노몬(한자로 보니 호랑이문이라는 뜻, 그럼 도라에몽도 호랑이였던가 ㅎ) 힐즈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 안다즈 욕실 모양이 내 어릴적 욕실과 똑 닮았었다. 동그랗고 아이몸이 딱 담길만큼 야트막했다. 까멜리아 2층 창가에서, 그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그녀를 만나기 10미터전...두둥, 설레이나요?
까멜리아 카페 입구,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용식이와 동백이가 반겨줄것만 같다
점심은 까페에서 추천받은 식당이 문을 닫아, 아무 곳이나 문 연 집에 들어갔다. 유명하다는 모리국수를 먹을까 하다, 갈치조림을 시켰다. 갈치도 금방 잡은듯 싱싱하고 살도 부드럽고, 간도 적당했다. 곁들이로 나온 고동소라 식혜가 너무 맛있어 구매를 문의했더니 안 판단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 왈, 팔라는 사람 많은데, 만들기가 너무 힘이 들고, 손이 많이 가 따로 팔 수가 없다고 한다. 소라 고동 등 해산물을 일일이 손질하고, 부드럽고 치대고, 밥에 버무려 삭혀서 곰삭은 맛을 낸다는데, 한 접시 다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아주 편했다. 내가 가자미 식혜 비슷한거냐고 했더니 잘못 알아들으신듯 밥이라고 답하신다. 가자미 식혜보다 더 맛있었다.
홑겹옷을 입고 아무 방비 없이 간 터리 비가 흩뿌리고 바닷바람이 부니 매우 추웠다. 양품점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스웻 셔츠나 후드 티나 아무 옷이나 사려했는데, 나름 명품 스타일의 가죽과 편물 매칭 점퍼와 크롭 기장의 오버사이즈 검정 재킷을 사고 말았다. 구룡포 일본 거리와 어울리는 빈티지스러운 옷이라며, 여행 중의 쇼핑은 추억과 스토리를 사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구룡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