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 카페는 없었다
"머하다가 이제 타는교?"
운전기사께 쿠사리를 들으며 신호에 멈춰선 버스를 가까스로 잡았다.
포항에서 외곽행 버스를 타려면 온힘을 다해 버스 타려는 열망을 기사님께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버스 도착 직전 한눈 판다거나 나처럼 어쩌다 핸폰 검색이라도 하다 기사님과 아이컨택을 하지 못하면, 쌩하고 버스는 지나쳐 버린다.
버스 안은 헉하고 놀랄만큼 연장자들 뿐이다. 형형색색 등산복풍 이지웨어 속에서 내 옷차림만 유독 튀었다. 나는 레깅스에 샤랄라 발레리나 스커트를 겹쳐입고, 어제 구룡포에서 산 오버사이즈 크롭재킷으로 레트로 Y2K패션을 나름대로 완성하고 있었다.
어제 구룡포에 이어 오늘은 청하면으로 가는 길이다. 청하면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Hometown chachacha 라는 영어제목으로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되어 역주행 신드롬을 불러일으킴) '의 촬영지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청하 공진시장만 휘리릭 둘러보고 왔다. 오징어탑, 오윤카페 파사드 등 드라마 세트장들도 그대로 남아 있어 드라마 시청자들의 감흥을 더했다. 드라마에 반한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 사람에게도 생소한 이 조그마한 면소재지를 찾아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아이들 어렸을 때인 2002년 경, 미국 동부 뉴저지에 1년 정도 살았는데, 동부지역을 자동차로 가족과 함께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떄는 네비게이션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 나는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남편 보조를 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 무렵 컴컴하게 해가 질 무렵, 숙소를 찾아가는데, '미스틱'이라는 지명을 발견했다. 앗, 미스틱 피자라는 줄리아 로버츠가 신인일 때 나온 영화가 있었다. 미스틱 피자라는 이름의 피자 가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였다. 오래 되어서 그 내용은 잊었는데, 줄리아 로버츠만은 독특하게 예뻐서 영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미스틱 이라는 이름이 독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속 도시가 아니고 실재하는 도시라니, 투덜대는 남편을 어르고 달래 들른 작은 마을에 들어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자. 맙소사, 그 피자집이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물론 영업 중이기도 했다. 그 미스틱이 이 미스틱인가 싶어 반신반의 하면서도 영화 셋트장과 똑같은 미스틱 피자에서 아이들과 큰 피자를 시켜서 먹었다. 피자 맛은 잊었지만, 추억의 맛으로 보정되어 세상 어느 피자보다 맛있었음이 분명하다.
갯마을 차차차는 주연보다 조연들이 살린 드라마이다. 주인공 친구 간호사의 러브 스토리, 이혼남녀의 다시 시작하는 사랑, 할머니의 애틋한 죽음으로 인한 마을 축제 같은 장례식...
우리들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날들에도 언젠가 기적같은 기회가 쏟아질지 모르는 일 아닌가.
청하면에서는 식사는 하지 못했다. 고깃집들 정육식당들이 보이긴 했으나, 호텔 조식을 너무 과식하여 도통 배가 고프지 않았다. 호텔에는 포항 클래식 페스티벌을 위해 외국 연주자들, 페스티벌 참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단체로 투숙을 하고 있었다. 포항이 제철소만이 있는 곳이 아닌,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지방 도시로서 자리매김하기를 응원한다.
추수 직전의 나락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