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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락 Nov 24. 2022

대화 녹음과 도청에 관하여

대화 녹음과 도청에 관한 미국법 이야기

1972년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은 근현대 미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정치적 스캔들 중 하나다. 5명의 요원들이 닉슨 대통령 재선 캠페인 기간 중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붙잡혔는데, 대통령의 측근들이 배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닉슨 본인 역시 사건 은폐를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밝혀져 결국 대통령직까지 사임하게 되었다. 사건에 연루된 많은 인사들이 옥살이를 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사임 연설을 하는 닉슨 대통령과 사건이 일어난 워터게이트 호텔


이처럼 도청은 개인의 사생활을 몰래 엿듣는 불법행위인데, 미국에서는 연방과 각 주에서 중범죄로 다스리고 있다. 따라서 뉴욕 주의 경우 최대 4년, 연방 법으로 최대 5년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감청은 도청과 동일하게 개인의 사생활을 엿듣는 행위이지만,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행하는 것으로 합법적 정보활동이다.  


도청이나 감청이 타인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비밀리에 엿듣는 행위라면, 본인이 대화에 참여를 하면서 상대방이 모르게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이혼 소송을 준비할 때 배우자와 자신의 대화를 녹음한다거나 회사에서 당하는 부당한 대우나 차별로 인해 소송을 준비할 때 상사가 모르게 대화 내용을 녹음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규를 모르고 녹음했다간 법적 처벌은 물론 녹음물의 증거 효력이 없어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에 관련된 법은 각 주마다 다르다. 연방이나 뉴욕 등 대부분의 주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만 대화가 녹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법적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주 등에서는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대화가 녹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들어 스마트기기와 감시카메라 등의 사용이 늘어가면서 일반인들도 도청이나 대화 녹음에 관련된 법규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생겼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보모가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가지는 않는지 등을 감시하기 위해 소위 내니 캠(nanny cam)을 설치하는데, 최근 모델들은 소리까지 녹음이 되기 때문이다.  


보모들의 아동 학대 모습이 내니 캠에 적나라하게 찍혔다


우선, 미국의 모든 주에서 자신의 집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합법이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카메라 설치의 목적이 자녀의 안전 보장, 재산의 손실이나 도난 방지 등 타당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녹화나 녹음이 된 영상을 상업적 목적으로 유포한다거나 공갈과 같은 범죄에 사용할 수 없다. 또, 보모나 방문자가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만한 공간인 화장실이나 개인 방 등에는 설치를 할 수 없다.  


뉴욕과 같이 한 사람의 동의만으로 녹음이 가능한 주는 보모나 방문자의 동의가 없어도 녹음이 가능하지만, 캘리포니아 주 같이 대화를 하는 양측이 녹음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주는 보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서면 동의를 받으면 법적 분쟁의 싹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  


또, 뉴욕과 같이 법적인 의무가 없는 주에서도 보모에게 감시카메라가 작동 중이라고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할 수 있고, 내니 캠의 주요 목적은 부정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아이들 방치 사례를 방지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글은 2022.11.23. 미주 한국일보 뉴욕판에 실린 칼럼을 브런치 사정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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