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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진 May 25. 2023

5월 21일 일요일 오후 5시

연애하고 싶다. 근래에 느끼는 감정 중 가장 큰 욕구를 차지하고 있다. 벚꽃도 다 졌는데 마음이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요즘에 날씨가 너무 좋다. 좋아도 너무 좋아서 이 기분 좋음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 청량한 날씨에 바람을 쐬면서 걷다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목이 마르면 음료 한잔을 손에 쥐고 발길 닿는 데로 산책을 하고 싶다. 덥다 싶으면 평소에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으로 달려가 편육에 소주 한잔을 걸치면서 이게 여름이라며 주접을 떨고 싶다. 누군가과 같이 즐기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고, 그런 나를 좋아라 해주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더라? 누군가를 좋아해서 사귀고 싶다가 아니라 반대로 연애를 하고 싶어서 상대방을 구해야 하는데, 누가 나랑 만나줄까? 새로운 사람은 어디서 만나지? 온 동네방네에 소개팅 구한다고 소문을 냈다. 인스타그램을 전체공개로 오픈해 두고 이런 나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연결해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다들 내게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연상이던 연하던 키가 어떻든 직업이 어떻든 큰 기준은 없다. 그냥 먼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전 연애랑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첫 연애에서는 받기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 연애에서는 마음껏 주는 연애를 해 볼 거라고 다짐했고 그런 사랑을 했다. 이제는 마음껏 주되 당연히 사랑받는 연애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할 수 있겠지?


직장 동료분이 동호회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월요일에 연락을 시작하고 그 주 일요일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하고 일주일 동안 카톡을 주고받았다. 음, 그..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굿모닝이라는 아침인사에 할 말이 없어서 점심시간돼서야 굿눈이라는 점심인사로 답하게 되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일요일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익선동의 골목 초입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은 채 해서 친구와 하던 전화통화를 급하게 정리했다.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다던 상대방이었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는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했던 거였다. 주문한 바질 리조또와 라구 파스타는 아주 맛이 좋았다. 맛이 좋은데, 난 왜 먹질 못했니. 낯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긴장되는 마음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익선동에서 저녁을 먹고 계동길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정독도서관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광화문광장에서 연등축제를 끝으로 지하철에서 오늘 즐거웠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방금 영화 한 편이 쓱 지나갔는데 출연진은 두 명뿐이고 관객도 그 두 명뿐이었다. 가로등 조명이 켜진 한옥 돌담의 골목은 그림이었고 그 골목길 끝에 펼쳐진 광장의 연등축제로의 화면전환은 순간 멍하니 침묵의 시간이 생겼다. 분명 아무 소리가 없는 순간인데도 머릿속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방금 BGM이 자동 재생됐어요" 침묵을 깨는 상대방의 말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에어팟을 꺼내지 않고 지하철의 소음을 들어며 멍하게 몸을 실었다.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지어졌다. 목마르시지 않냐며 커피 한잔 마시자는 말이, 아까 언덕을 지나면서 숨소리가 거치시던데 벤치에 잠깐 앉았다 가자는 말이, 슬쩍슬쩍 부딪히는 손등이, 주고받는 농담들이 미소를 짙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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