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일기
사람이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는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자아에 흠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인간은 자아에 위협을 가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는 방식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방어기제를 드러낼 만큼 나를 해친다고 생각한 그 무언가가, 실제로는 생각보다 나를 크게 해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지 심리적인 오류에 불과한 것. 실제로 그것이 정말로 나를 해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나의 심리적인 오류에 불과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짜증과 성질이 나는 감정이 지나간 뒤의 침착한 상태에서 그 상황을 한 번 더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심리적인 오류에 빠져 있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2024년 1월 5일이었다. 나는 풋살 경기를 위해 인원을 주도적으로 모으고 있었고, 늘 같이 하는 고등학교 동창 후배인 준표에게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준표는 상황이 안 되어 거절을 했다. 준표의 고의는 아니지만, 근래에 축구를 같이 하자는 내 제안에 대부분 거절했다. 일정이 잘 안 맞았다. 준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절을 한 것인데, 그것이 지속되는 탓에 나는 괜한 자존심이 상하는 감정을 느꼈다. 짜증도 살짝 동반됐다.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내 자아가 상처받는 걸 보호하기 위해 '짜증'이라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 같다.
나는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자문했다.
"내가 왜 '사이가 좋은' 사람의 거절에도 자존심이 상하고 자아에 흠이 나 짜증과 성질의 방어기제를 드러냈을까?"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착각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진화됐을 뿐이다. 과거에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이 생존과 종족 번식에 매우 이로웠기 때문에,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심리적 유전자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만약 내가 준표와의 관계가 나빴고, 준표가 소속의 중심이고, 사람들이 나를 따돌려는 목적으로 내 제안을 거절한 상황이라면, 사회적인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아에 흠이 날 만한 상황이 맞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소속의 중심은 나였고, 내가 리더였다. 방어기제가 발동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방어기제를 발동해 마땅한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만으로도 나는 위협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게 인간의 심리 구조인가 보다.
이 상황을 표현하기 좋은 말이 떠올랐다.
"기 분 탓"
괜스레 찔려서, 내가 예민해졌다.
물론.. 그 과정이 단 6초 정도였다. 근데 6초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민망하다.
준표야 미안해. 내가 많이 아껴 ^..^*
(2024. 0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