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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철 Aug 14. 2023

변론일기 #6 산 자는 나를 따르라

#6 횡령 사건

#6 횡령 사건


“이 사건이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상담을 마칠 때 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예, 아무리 빨라도 반 년은 걸릴 겁니다. 1심까지 1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라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어휴. 그렇게나 오래요”라는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러면 다시 “예. 이제부터 제가 대신 걱정할테니, 걱정 인형 하나 뒀다고 생각하시고 일상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      


1년, 아니 그 이상도 걸리는 것이 보통인 송사(訟事)입니다. 그런데 무려 5년이나 가까이 진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22년 겨울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무역 가방 하나 들고 전 세계 박람회를 누비며 아이템을 찾는 것이 일이었고, 보물 같은 아이템을 찾아와 한국에 수입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노력에 비해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밤낮없이 일하며 눈물로 뿌린 씨앗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때마침 분 아로니아 열풍과 함께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연 매출이 1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사람이 더 필요했고, 오래 전 함께 일한 직장 동료와 중학교 동창도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 파죽지세였습니다. 일 년에 절반을 해외에 머물며 아이템 확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절친한 사람들이 회사의 안 살림을 맡아준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수상한 금전거래를 발견했고, 그 금전거래는 거대한 횡령 범죄라는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믿고 모든 회계와 장부를 맡겼던 동료는 수년간 수억 원의 돈을 몰래 빼내고, 쌈짓돈처럼 사용했습니다. 장부는 거짓말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극심한 충격에 휩싸인 의뢰인은 저를 찾아왔고, 저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회계장부와 예금거래내역을 모두 비교하며 횡령내역을 정리했습니다. 횡령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 규모 역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습니다.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란 판에, 어마어마한 돈을 횡령한 동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도리어 의뢰인이 너무 관리하지 않아서 자기가 막 나갔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의뢰인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편인 줄 알았던 중학교 동창마저 배신하였습니다. 동창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편을 들어줄테니 회사의 지분과 막대한 돈을 달라며 무리한 요구를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에 응답하지 않자, 그 친구는 상대방의 편에서서 의뢰인을 협박하고 거짓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었던 동료와 친구에게 배신당한 의뢰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가족들의 권유로 병원에서 검사한 후 청천병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암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지극한 간호에도 의뢰인의 건강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의뢰인은 암 진단 1년 후 가족들의 품을 떠났습니다.    

 

당사자가 사망하자, 막대한 돈을 횡령한 동료와 친구는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꾸고 자신들의 범죄를 전면 부인하고, 급기야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며 회사와 유족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경영권 분쟁을 시작으로 각종 민, 형사 소송이 계속되었고 무려 5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5년에 달하는 인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려 15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되었습니다. 회사의 대표이자 피해자인 당사자가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족들은 끈기있게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고, 결국 단 하나의 소송에서도 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소송에서 승소하였습니다.      


추운 눈보라가 치던 얼마 전 횡령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구속되던 날, 유족들은 이제야 아버님이 눈을 편히 감으실 수 있을 거라며 참았던 눈물을 그제야 모두 쏟아내었습니다.     


법정에서 나오며 다시 한 번 의뢰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허망하고 슬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죽음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남은 자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다져낸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고인의 죽음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 자의 의지(意志)가 망인의 유지(遺志)를 완성한 것입니다.     


2022년 2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을 걸으며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희망찬 내일을 그리며 의지를 다지게 되는 요즈음,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외치는 심정으로 외쳐 봅니다. 올 한 해 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의지를 꺾지 않는 한,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겁니다. “산 자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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