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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정 Jul 22. 2022

<스페이스 오디세이> 귀착과 착상의 노스텔지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포일러가 담긴 글입니다

왜 스페이스 오디세이일까?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전방위적인 '노스텔지아(Nostagia)'를 모티브로 한 SF영화라고 생각한다. 노스텔지아란 향수 내지는 향수병의 영문 함축어이지만 그리스어로서의 정체성은 "집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이다.


오디세이와 같은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에는 궤적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인물이 어떤 사건의 발단으로 인해 출가하게 된다. 일상의 자장으로부터 이탈한 인물은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위기와 좌절을 맞이하고 그 선회 불가능한 울타리를 월담할 수 있는, 교착 상태에서의 깨달음을 매개로 성장동력을 부여받게 된다. 최종적으로 수많은 시험 아래 산전수전으로 검증받은 인물은 변화된 모습으로 고향으로 귀환하게 된다.


일상으로 귀착한 영웅의 삶은 물리적으로는 복고했지만 현재의 삶은 여정을 떠나기 이전인 과거와 교통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니 이미 인물의 외양과 정신세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범해졌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과거의 정서와 교류할 수 없는 변압적 정상성에 돌입한다. 다시 말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의 파찰이 빚어낸 그 노스텔지아(집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 때문에, 그 이질감으로 하여금 과거의 관성에 회답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인류의 진화도 그러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여정과 진화를 비약적인 슬로우 모션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멸로 변용한다. 우주계로 확장되는 자연의 지평에서 인류의 방황과 표류는 피로하고 장기적이지만 진화는 줄자의 눈금처럼 찰나의 순간이고 도량적이다. 영화의 콘텍스트가 그렇다. 영화의 전반적 이미지의 템포는 왈츠의 지휘 아래 광막한 우주를 유유히 유영하며 느림의 미학을 표방하지만 인류의 진화는 '모놀리스'에 의해 '블링크'(blink, 눈 깜빡임)로 전환한다. 대표적으로 모놀리스를 발견한 유인원이 짐승의 뼈로 무기를 발명하고, 그 태초 도구를 공중에 부양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이 매치컷은 장면과 장면이 접합되는 점멸성 구간에 초대의 도구인 뼈를 청소하고 그 위치에 우주 공허에 안착한 선진문명 기술인 인공위성을 배치한다. 그로부터 편집 양식은 시점과 시간대를 엮는 큐브릭 감독의 '웜홀'의 장치로서 적확한 시공간 대역을 스크린에 노출한다.


점멸과 블링크는 영화가 눈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령, 인공지능 '할 9000'의 유일한 감각기관은 노란 동공과 붉은 홍채 모양의 카메라일테고, 웜홀에 탑승한 주인공의 눈을 클로즈업한 장면에서 몇 번 깜빡임에 도착지에 당도하며, 엔틱한 방에서 할9000의 관점으로 제공된 시점이 마우스 클릭하듯 관점을 경유하며 인물이 노화(초월적 공간에서의 시간의 흔적)한다. 또한 동이 틀 무렵, 유인원 무리(소사회) 중 최초로 개안한 개체가 모놀리스를 발견한다.


눈의 테마(파장 변화에 따른 형형색색 웜홀의 투사)

선각자가 잠에서 깨어나 미래에 처음 당도하듯, 잠은 오늘날과 다음날(미래)을 잇는 일종의 '웜홀'이다. 그래서 영화는 잠을 부각하여 조망한다. 가령 선내에서 졸고 있는 '플로이드' 박사 위로 펜이 허공을 부유한다던지, '할 9000'이 동면중인 승무원을 절멸시킨다던지(진화와 도태의 필연성). 영화에서 잠은 진화의 과정이자 시공간(인간이 느낄 수 없는 제4차원의 감각)을 초월하는 통로이자 생략의 도구이다. 또한 웜홀을 관통하는 시퀀스에서는 인류의 조상이 내던져졌던 황량한 자연을 부감의 파편적인 이미지 형태로 삽입하면서 꿈의 온상을 산출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시공간의 초월에 대한 은유는 잠과 웜홀뿐 아니라 플로이드 박사와 딸의 실시간 화상 전화(시공간 제약 초월)를 통해서도 반증된다. 생일선물에 대한 의중을 물어보는 부녀간의 통화 중에 딸이 의례 집에 이미 많다는 전화기를 주문한다는 역설에서 이 뉘앙스는 점층적 다층화를 이룬다.

눈을 부릅 뜬 스타차일드의 출범과 본향으로의 환원

도구의 효시격인 짐승의 뼈는 뜨거운 유기체에서 해리된 본질적인 목적을 소실한 중성화된 물체이다. 다시 말해 반쪽 짜리 특성에 발상을 전염(극 내 전염병의 창궐의 맥락)시킴으로써 인류는 진화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먹이사슬의 체계는 뼈에 대한 발상을 달리하는 선택으로 새롭게 정립된다. 물형(물리 세계) 위에 발상이 결착됨으로써 적과 짐승을 도륙하는 특권을 인수하게 되고 인류는 자연계에서 진급하며 새롭게 변태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영화는 착상을 다룬다. '디스커버리 호'는 가분수의 정자의 형상이며, 이 장중한 여정의 험로는 난자에 수정되기 위한 정자의 태곳적 역경과 고난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한계가 명백한 불완성 존재가 온전한 교조적 존재로 점철되기 위한 갈망에서 피어난 서사이고 무한한 공간을 끝없이 전진하는 현재 진행형 서사이다. 그럼에도 웜홀으로 초미래적 접근을 허가한 ‘스타 차일드’라는 상징성을 조성하고, 최종적으로는 그 기대에 일정 부응해주며 인류문명의 갈증을 해갈해주는 입체적 영화이기도 하다. 마치 영웅의 여정이 그렇듯.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서사에 재환원되는 것은 본향으로 회귀이나, 그 결말은 실로 판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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