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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Mar 13. 2024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이발소를 찾은 남편

강아지는 털발, 사람은 머릿발!


머리 스타일은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크게 멋을 내지 않더라도 단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들은 3~4개월에 한 번씩 이발해야 한다. 특히 짧은 스포츠형 머리는 조금만 때를 놓쳐도 머리가 길어 지저분해 보인다.



자린고비 남편님은 머리를 자르는 시기가 자주 돌아오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단발 같은 장발형 스타일을 고수하게 되었다. 뒤에서 보면 덩치 좋은 아줌마 같다. 주변 어른들이 지저분해 보인다며 이발하라고 권유해도 이발비가 아까워 미용실을 가지 않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남자라고 느껴지는 머리 길이 한계점을 넘어설 때쯤 머리를 자르러 간다. 우리 남편 같은 사람만 있으면 동네 미용실 다 망할 것이다.



15년 넘게 이발비가 아까워서 머리를 기른다는 말을 듣다 보니 돈이 아까운 것인지, 장발 머리를 하고 싶어 이발비 핑계를 대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사 다니면서 가장 먼저 찾아보는 곳이 가격이 저렴한 미용실이나 이발소였다. 동네를 탐색할 겸 산책하면서 가성비 좋은 미용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은 가격이 싸면 옆 동네가 아니라 옆 옆 동네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교통비가 추가되면 안 되기 때문에 편도 1시간 정도 거리는 운동 삼아 걸어 다녀온다.



미용실은 컷트가 1만 원 미만인 곳을 찾기 어려웠는데 이발소는 아직 1만 원 미만인 곳이 드문드문 있어 이발소 투어를 시작했다. 그중 한 이발소는 가격이 6천 원으로 가격이 가장 쌌는데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이발사분이 주인이셨다. 허름한 가게였지만 가격이 쌌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가위가 잘 들지 않아 머리가 뜯기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남편은 가격이 싸면 무조건 1순위로 결정하는데 이곳만은 예외가 되었다. 머리를 자르는 내내 쥐어뜯기는 느낌은 싼 가격으로도 보상이 되기는 힘들었나 보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가장 크고 맛있는 비지떡을 찾고 있었다."



이사 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편 레이더망에 한 이발소가 포착되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이발사가 젊어 보여 들어가 보았다고 한다. 이발비는 단돈 5,000원!


5천 원인 이발소를 본 적은 처음이라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던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삽살개 남편이 외출했다가 치와와가 되어 돌아왔다."



남편이 머리가 길어 찰랑거리면 삽살개 같다고 놀리는데 외출했다가 얼떨결에 이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깔끔하고 단정한 훈남이 되어있었다. 남편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발소를 찾아 얼굴에 환한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가게는 작은 1인 이발소였지만 셀프로 머리도 감을 수 있고 이발사의 머리 자르는 기술도 괜찮다고 평가했다.



아빠의 머리 스타일을 보고서 아이들도 다음날 바로 가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물론 가까운 동네는 아니라서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다. 아빠는 떡볶이로 아이들을 꼬셔 걸어가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 다음날은 아버님께도 말씀드리고 며칠 뒤 조카도 이발하러 갔다. 남편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챙길 수 있는 가게를 발견한 기쁨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었다.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남편 때문에 내가 직접 우리 집 남자들 머리를 잘라주겠다며 바리깡과 가위, 커트 보자기까지 산 적이 있다. 물론 남편의 긍정적 동의와 응원이 있었다. 미용실에서 바리깡과 빗 하나로 머리를 자르는 모습을 많이 봐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 3명 머리를 잘라주면 평생 머리는 공짜로 자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유튜브가 스승님이 되어주었다. 실험 대상은 쌍둥이 아이들 먼저! 아이들 결과물을 보고 남편은 마지막에 잘라주기로 했다. 남편은 사회생활도 해야 하니까. 그때는 초등학생이라서 엄마의 실험정신에 아이들이 동참해 주었다. 반신반의하며 엄마에게 머리를 맡겼는데 바가지 스타일로 잘라 놓았다. 아가들이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썩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착해서 그냥저냥 괜찮다고 했는데 속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이후로 엄마가 잘라주겠다고 하면 바로 미용실로 도망갔다.



이렇게 엄마의 미용사 도전은 한 번 만에 끝났다. 몇 번 더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준미용사급 실력을 갖추었을 텐데 아쉽다. 남편도 머리는 그냥 미용실 가서 자르자고 한다. 잘 안 가니까 내가 잘라주겠다는 거였잖아!



이런 가족 분위기에서 찾은 5,000원 이발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어줄 것이다. 올해부터는 우리 집 남자들이 부담 없이 이발을 자주 해서 깔끔한 머리 스타일로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발소만큼은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유지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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