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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생각 Oct 22. 2023

4편 : 공부 좀 해라

고1이 되는 2016년 겨울방학이었다.

매일같이 오전부터 밤까지 학원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집에서 여유를 느끼는 중이었다.

이때 엄마한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따르릉'

"OO아 고등학교에서 전화 왔다. 그것도 교장선생님이 엄마한테 직접 전화왔다.

엄마한테 너 공부 좀 시키라더라. 맨날 공부하는거 같더니 뭐하고 다니는거냐? 공부 좀 해라."


엄마한테 이런 전화를 받고 나서 하염없이 울었다. 우리 지역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연합고사를 봐야했다. 난 연합고사 성적으로 전교 7등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심화반에 들어가기 위해 심화반 선발 시험을 봤다. 심화반 선발 시험은 고1 과정으로 이루어졌고, 고1 선행을 거의하지 않은 나에겐 난생 처음 보는 문제들로 가득했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성적이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뒤에서 5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살면서 20점이라는 점수를 처음 맞아봤다.) 이 결과를 본 교장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냥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단순한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부모님께서 나에게 공부라하는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고, 줄곧 난 잘해왔다.


학창시절 내 공부의 목적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었다. 사업으로 힘들어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나를 자랑스러워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마치 내가 공부를 잘해야 훌륭한 아들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지원해주시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찾아서 공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엄마 모습은 나에게 단순한 잔소리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내가 불효자가 된 것 같았고,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엄마도 알고 계시면서 나에게 화내는 엄마에게 너무 서운했다.


학창 시절 우리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내가 공부로 해결해야된다고 난 굳건하게 믿었다. 내가 공부해서, 내가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거라 생각했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나이에 너무 큰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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