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이야기』
Stories keep me whole.
수하야,
『세라 이야기』는 엄마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동화였어. 그때는 제목이 『소공녀』였는데, 발음할 때 나는 소리가 좋았어. 세라가 입었던 예쁜 공주 옷들을 상상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다락방에 환상적인 상을 차려준 부분에 감탄했지. 세라가 힘들다가 마지막에 모든 게 회복되어서 얼마나 안도했나 몰라.
“어떻게 하루 만에 다 읽었어?”
“엄청 재밌었어.”
“어떤 부분이 그렇게나 재밌었어?”
“세라가 엄청 부자였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갑자기 학교 일을 다 해야 해. 민친 교장 선생님이 못 되게 대하는데도 자기가 공주라고 생각해. 할 일은 하면서도 자기도 잘 돌보더라고.”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으니, 겉으로 보이는 변화보다 세라 내면의 단단함이 더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어. 세라는 이야기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어. 먼저 이야기로 어멍가드, 로티, 베키 세 명의 친구를 구해내. 이야기로 끈끈해진 친구들은 세라가 호화롭게 살 때만이 아니라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도 곁에 있지.
또한 세라는 이야기로 자기 자신을 지켜. 다락방이 너무 힘들 때는 그곳을 감옥으로, 자신을 죄수로 생각하며 웃음으로 버티고, 너무 춥고 배고플 때는 오히려 따듯한 곳이라고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민친 교장 선생님이 세라를 혹독하게 대할 때 자신을 공주라고 상상해. 이야기의 세계가 방어막처럼 세라를 둘러싸고 있는 게 보여.
사람이 이야기를 가지고 상상력을 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위엄을 유지할 수 있어. 민친 교장 선생님이 아무리 세라를 굶기고 몰아세워도, 세라가 '나는 공주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락방은 궁전이 되었지. 그래서 세라는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건네는 친절을 가질 수 있었어.
수하에게 이야기는 어떤 존재야?
“나는 어렸을 때 어멍가드 같았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줄 알았어. 작가 선생님이 따로 있는 거지. 그런데 지금 나는 이야기를 써. 작가가 엄마 눈앞에 있는 거야. 모든 사람은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는 거, 이제는 알지.”
엄마도 예전에 어멍가드 같았어.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거라 생각했지. 네게 읽어주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어. 동화구연 공부를 하고, 그림책을 수시로 찾아보았어. 우리는 그림책의 장면을 실제로 만들어서 놀았어. 기차를 타고, 캠핑하고, 아기자기한 시장을 차려놓고, 그림으로 쌓인 나라를 만들었어. 어느 밤 자려고 누워서 너의 하루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지어줬는데 네 눈이 반짝거렸어. 이야기가 좋아 잠을 못 이뤘지. 그 이후로 매일 밤 네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엄마는 이야기 속에서 블록으로 만든 성이 무너진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토끼를 만났어. 시가 무언지 찾아다니다가 온 세상 모든 순간이 시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은 아이도 만났어. 세상에 맞서서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괴짜 아이도 만났고, 고아이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는 소녀도 만났어.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만난 시간이 사실은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 세상이 나를 '경력단절녀'라 부를까 봐 전전긍긍하던 때였지. 네가 4살 때 엄마가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을 가르쳤잖아. 그러다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 가면서 일을 그만두었어. 무척 속상했어. 또 그림책 서점에서 수업을 준비하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미루고 미루었지. 어떻게든 시작하려는 때 네 동생을 임신했어. 아가를 만나 반가움과 일을 못 하는 아쉬움이 마구 섞였지. Sns에 그림책 소개하는 글을 썼는데, 좋아요 하나에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어.
이야기가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어. 내 말을 들어주고, 사소한 모든 순간이 시라는 걸 상기해 줬어. 엉뚱해도 나의 방식으로 일어서라고 응원해 주고, 매일 새로운 날이라 기쁘다는 걸 알려줬지. 나의 삶을 나의 이야기로 정의하는 법을 배웠어.
우리가 함께 읽은 이야기가 엄마를 둘러싸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