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9월은 끝났다. 우선 변명을 해보자면, 책은 9월 중순 무렵 다 읽었지만 9월 안에 글을 쓰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노느라 바빴다.
이번에 읽을 책을 고를 때를 돌아보면 회사 도서관에 연체로 인한 대출 정지가 드디어 풀렸고 일도 소강상태여서 책을 빌리러 갈 시간도 조금 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틈의 시간이 있었다. 책도 얇았고, 그래서 쉽게 읽을 줄 알았는데 벌써 9월의 끝이 왔다. 처음 빌릴 때만 해도 햇살이 뜨거웠는데, 다 읽고 이 글을 쓸 때쯤에는 코 끝이 시리다. 이렇게나 빠르게 시간은 흐른다.
2.
모두가 꿈은 매일 꾼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도 꿈을 꾼다는데, 그 아기들은 어떤 꿈을 꿀까. 너네도 고충이 있겠지. 어쨌든 나도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내가 자주 꿨던 꿈들의 종류가 몇 가지 있다. 지금은 그런 류의 꿈은 잘 안 꾸는데 그래도 2-3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학생이 되어 시험을 보는 꿈을 계속 꿨다. 후련하게 시험을 잘 보는 꿈은 아니고, 문제를 다 못 풀었는데 시험 끝나는 종이 울리는 꿈. 그리고 학생인 내가 집 주변이나 학교 근처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꿈도 자주 꿨었다. 시간이 늦어서 허둥지둥 대는 꿈. 계속 같은 공간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꿈.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꿈이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내 무의식은 정답과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인가 보다.
3.
소설 속에서 “나”와 배정, 우미와 우나도 나처럼 도시의 길 위를 헤매고 있다. 여기저기 개발이 진행 중인 지방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네 사람은 재수학원으로, 자매 관계로, 또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도 뭉쳤다가, 저렇게도 뭉치고, 뭉쳐졌다가 또 흩어지기도 한다. 누구의 삶도 쉽고, 순탄하지 않았다. 화자인 나는 이런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이런 각자는 나중에는 조용하게 자기 갈길을 가게 된다. 그 속에서 이 길이 맞다는 확신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대충 될 데로 되라지, 라는 허무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았던 신도시가 떠올랐다. 거기는 서울 근처의 몇 개의 신도시 중 한 군데이다. 초등학교 2학년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이 분양을 받으신 새 집이었다. 이사를 가기 전 몇 번이나 새 집을 보러 왔었다. 언젠가 어릴 적 쓴 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 (그때는 국민학교) 이사 가기 전에 설렌다고 쓰여 있었다. 9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했다. 새로이 지어진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왔고, 5분 거리였던 집으로 가는 길, 길바닥에는 송충이가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북 선전문 같은 것들도 발에 밟혔다. 모두가 입주한 것은 아니라 놀이터는 한산했고, 혼자 그네에 앉아서 학교로 가는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는 시간, 또 그 반대의 시간을 세어보면서 오후 해 질 녘의 서늘한 시간을 보냈다.
그 동네는 모든 것이 새 것이라고 하였지만,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었고, 아직 개발 중이던 곳들도 많았다.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지금 모습은 또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처음 이사오던 그때를 생각해보면 아득하다. 일기에 쓰여있던 대로 나는 정말 새로운 생활을 기대하고 좋아하기만 했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것이 조금 걱정되고 두려웠을 텐데 마치 그것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일기에 설레는 마음만을 적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난 채로 어쨌든 굴러가는 인생, 옆 길로 빠질 수도 있고 비탈길을 만나 가속도가 붙을 수도, 오르막길을 만나 갑자기 멈출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옆에 있는 다른 돌들과 함께 가만히 땅에 누워 본다. 서로를 베개 삼아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낀다. 서로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서로의 집 문을 두드린다. 세대를 지나 음악은 이어지고, 그 음악은 주변에도 수평적으로도 퍼진다. 또 서로의 집 근처에서 기다려도 본다. 도시에서는 혼자이면 위험하다. 외로우니까.
아무도 아무를 찾지 않는 날이었다. 후덥지근한 여름 오후에 나는 아직 10대이고 그곳에서는 늘 10대이고 매일매일 길을 헤매고 있다.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는 말이다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 어떤 날에 내가 모두를 알게 되듯이 누군가 모두를 알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나도 알아 버려도 좋고 알아줬으면 좋고 알고 마음대로 그 누군가의 마음대로 나를 완전히 이해해도 좋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래 줬으면 좋겠다. 아주 짧은 순간 내가 모두를 이해하듯이 누군가가 길을 혼자 걷는 나를 보면 모두를 이해한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