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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un 08. 2020

엄마랑 싸웠다.

드디어 인정했다.

어느 명절, 엄마랑 싸우고 말았다. 아니지 드디어 싸우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문집을 봤다. 그 때는 내가 뭘 제대로 적을 수 없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나에게 한 마디씩 적어줬다. 아빠는 나에게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딸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키는 작아도 생각은 큰 아이로 자라라고 써줬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처음에는 아빠 엄마도 그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나에 대한 기대도 함께 커졌다. 나는 누구도 나에게 일부러 주지 않았지만 마음의 부담감을 내가 챙겨서 가지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숨기고 살았다.


나는 여기서 더 잘 되지 않아도, 그리고 갑자기 일이 다 어그러지더라도 다 괜찮다는 말이 무척 듣고 싶었다. 너로써 존재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다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듣고 싶었다. 굳이 입에서 귀로, 글로 써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음이면 충분하였다. 엄마 아빠는 4살의 나에게는,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의 나에게는 확실히 그렇게 대해주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노력과 성과들이 조금씩 쌓이며 엄마 아빠의 기대도 함께 커졌다. 진심을 알고 있기에 기대의 무게를 참아보려고 했다.


기대가 문제가 아니고, 나 혼자 멋진 척 하면서 참으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는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그 명절에도 그랬다. 그 한 마디 때문은 아니었지만, “다른 애들은 다 잘 사는데, 너네는 왜 이렇게 돈을 못 모았니?” 라는 가볍고도 아픈 문장에 나는 폭발했다. 거의 울부짖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엄마, 아빠에게는 내가 왜 그렇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냐고 화를 냈다. 솔직히, 언젠간, 꼭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그게 그 날이 될 줄은 몰랐지만. 화도 났겠다, 든든한 지원군(남편)도 있겠다. 그냥 마구 쏟아냈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입을 떼니 한 마디 할 걸 열 마디를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는 여러모로 충격에 휩싸였고 서로가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그게 나였다. 못 난 딸.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결론적으로는 이해를 잘 해주셨다. 본인들도 상처되지 않게 조심해서 말할테니 너도 너무 욱 하지 말아라. 그게 결론이었다. 며칠이나 지나서 엄마는 마음을 풀었다. 마음 속에 상처는 어딘가에 남았겠지만 다시 나의 엄마로 돌아왔다.

서로가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 동안은 괜찮았잖아 라는 생각. 그리고 가족끼리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해서 말해야 하냐, 라는 말. 물론 좋은 마음, 잘 되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고 짐이 된다. 스스로를 얽매는 쇠고랑이 된다. 내가 그동안 부모님 마음에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배려들이 모두 부정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다. 나의 배려는 배려라고 해도 나의 것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은 그게 배려인지, 자신이 받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하고 싶은 말을 나와 상대방이 모두 기분 나쁘지 않게 요목조목 적어서 전달해볼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오늘은 화내느라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깜박하고 못했다. 내가 잘 못 살더라도 진심으로 응원받고 지지받고 싶다는 말. 상담 하면서도 이야기 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를 억압하는 편이라고 했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참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러니 참지말고 조금씩 흘려보내다보면 욱과 화도 줄어들지 않을까? 이걸 엄마와 싸우며 몸소 체험을 했다.


싸운 다음 날, 5프로 정도는 후회되는 마음, 그렇지만 95프로 엄마가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0프로 정도 엄마가 털어버리길 하는 마음이었다. 부모의 기대가 아닌 나의 마음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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