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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un 25. 2020

나 때는 말이야

나의 청소년기

이번 학기에 청소년 정신병리와 치료 라는 강의를 들었다. 과제로 청소년기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작성하라고 하였다. 아래는 그 때 적은 글을 조금 수정해 보았다.


나는 장녀로 태어나서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공부를 어느 정도는 잘하는 편이었고, 특목고를 거쳐 원하는 대학교도 한 번에(?) 들어갔다. 이렇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모범생, 예쁨 받는 딸로 자랐을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중학생 때는 특목고에 가기 싫다고 반항 아닌 반항을 했고, 대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대학교에 가서도 학과를 선택할 때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다. 어느 정도는 부모님의 말을 들었고, 어느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청소년기에 어른처럼 굴었던 것 같다. 학업, 진로, 연애 고민들을 부모님과 거의 터놓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가 엄격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말하기가 그냥 꺼려졌다. 내 마음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화기애애한 친구들의 가족들이 부러웠다. 또 우리 부모님은 나처럼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인 딸을 둬서 만족스럽지 못 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내 성격이 이런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면서 합리화를 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통은 알아서 잘 해결하는 편이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말이 아니라 일기를 썼다. 엄마가 내 방 책상 서랍에 있는 나의 일기를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기 쓰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엄마가 읽어도 좋다는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조금은 미워한 것 같다. 부모님, 가족에 대한 불만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큰 부분은 내가 커오면서 완벽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나는 늘 부족한 자식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처럼 보이는) 부모님에게 서운함이 있었고, 그것이 세상과 사회에도 서운하고 억울함으로 표현될 때가 많았다.


부모님은 나에게는 기대가 너무 컸지만 3살 터울이었던 남동생에게는 늘 관대하셨다. 물론 나의 오해일 수는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셨고, 동생은 공부를 조금 못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런 점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온 것 같다. 엄마, 아빠는 모두 원가정에서 막내로 자랐다. 그래서 막내인 동생의 마음은 잘 이해하지만 장녀인 나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맞서서 알아서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 많은 지원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컸지만 한편으로 외로움이 컸던 것 같다.


개인 상담도 받아보고, 심리학, 상담심리학 강의를 통해 공부를 하며 내 안에 이런 마음들이 자리잡고 있구나, 그래서 내 스스로를 억압하며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불필요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구나, 이런 식으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 정도만으로도 후련했고, 만족했다. 상담 선생님은 언젠가 부모님께 한 번 이야기 꺼내 보라고 하셨지만, 솔직히 나는 용기가 안 났고,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또, 자기 합리화를 했다.


어느 명절, 엄마의 한 문장을 계기로 나는 이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왜 나에게 완벽한 지지를 해주지 않고, 늘 부족하다, 노력해라, 열심히 해라, 나는 잘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계속 부담을 주고 기대를 하는 것인지 힘들다고. 글로 쓰니 담담해 보이지만 나는 거의 울부짖으면서 말했다. 엄마도 속상했던지 울었고, 아빠는 당황했다. 그러니까 그날은 우리 가족에게는 최악의 명절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 가족은 다시 잘 지낸다. 아빠는 이렇게 한 번 털어낸 것이 좋은 기회인 것 같고, 우리는 늘 너를 지지했지만 성격상 말을 잘 못 해준 것 같다고, 그 점은 미안하고 앞으로는 말을 조심하며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너도 말을 가려서 하라고. 나는 수긍했다. 엄마는 몇 일을 서먹해 하다가, 나를 다시 걱정해주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다시 궁금해한다.


나 역시 느낀 점이 많다. 이렇게 오래 마음에 담아두면서 사니까 원할 때 제대로 이야기를 못 하고, 욱해서 감정이 격해진다는 것을 이번 계기로 격하게 느꼈다. 상처받은 엄마에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시간이 나의 완전한 독립을 이뤄줄 것이라고 믿어본다.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쓰라는 것이 이번 주제였다. 나는 내가 문제가 있는지 모르고 청소년기를 보냈고, 청소년기를 훌쩍 지나 청년이 되어서 그 문제를 인지했다.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풀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계기로 폭발시키듯 풀어버렸다. 그 방식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나의 어떤 모습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는 남편이 있고, 부모님과 남동생도 결국은 내 편이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의 앞으로의 삶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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