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6개월 정도 요가원에 다니다가 오고 가는 것이 귀찮아져서 더 이상 등록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가할 때의 느낌이 좋아서 요가소년님의 유투브를 보며 가끔 홈요가를 한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유연하지 않고 운동신경도 없어서 내 몸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다보니 깊어진다는 느낌은 잘 안들고, 어떤 자세를 할 때는 숨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나의 요가 라이프는 여기서 정체되겠거니 체념했던 것 같다. 나에게 “요가”하면 떠오르는 것은 유연함이 아니고 호흡이다. 숨 쉬기는 어렵다.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쉬어지는 것인데,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할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다. 요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잘 쉬자고 생각해도, 어느샌가 멈춰있고, 그것을 지각하는 순간 숨이 터져나온다. 호흡은 인간에게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마음챙김 인지치료 워크샵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치료 (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MBCT)이다.
세갈, 윌리엄스와 티즈데일(Segal, Williams, & Teasdale, 2002) 등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여 인지치료를 접목한 것이다. 집단으로 이루어지며 매주 2시간 30분씩 8주 동안 진행한다.
MBSR (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 : 1979년 메사추세츠 대학병원의 존 카밧-진(Jon Kabat-Zinn)이 불교의 명상법을 이용해 개발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MBCT는 총 8회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주의를 조절하기
1. 자동조종
2. 방해요인 다루기
3. 마음챙김 호흡
4. 현재에 머물기
우울증과 관련된 인지 재구조화
5. 수용하기 및 내버려 두기
6. 생각이 사실은 아니다
7. 자신 돌보기
8. 미래 기분 대처하기
내가 자세한 진행 방법에 대해 말하기에는 이론적 지식이 부족하니 그런 부분은 쓰지 않겠다. 그저 워크샵에서 내가 배우면서 느낀 것과 생각했던 것 위주로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1. 건포도 명상(raisin meditation)
건포도 한 알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만지고, 소리를 들어보고, 어떤 맛이 나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이런 냄새, 이런 맛이었나. 그 동안의 건포도와 관련된 자동조종 과정을 멈추고 생경함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들을 새롭다고 생각하니 정말 새롭게 느껴졌다.
2. 바디 스캔 (Body Scan)
워크샵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짧게 Body scan을 해 보았다. 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 손 끝에 에너지가 느껴졌고, 누워서 의식이 내 몸을 스캔하고 있으면 잠이 들어버린 적이 많았다.
Body scan을 할 수 있는 유투브 영상들을 접하기 쉬워서 안 해본 사람들은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잠이 안 올 때 복식호흡을 하면서 머리부터 손 끝, 발 끝까지 기운을 보내려고 하다보면 어느새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이 된다. 원래 취지와 잘 맞지 않아도, 나름대로 그렇게 활용하고 있다.
3. 걷기명상 (Walking meditation)
걷기명상은 목표지점을 정하지 않고, 그저 걷는다는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시간을 무한정 내기 어려우니 최대한 일상에서 활용해보려고 했다. 친구와 지리산 둘레길도, 남편과 탄천길도,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까지 오는 길도 걸었다. 짬을 내서 운동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걸을 때는 회사도 집안일도 떠오르지 않아서 좋았다. 노을이 지는 것, 물이 흐르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땀이 나는 것,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등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혹시라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걷는 감각에 집중한다. 회사 안에 앉아있으면 감각이 무뎌진다. 무뎌지다 못해 없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걷기 명상을 통해 내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기러기(Wild Geese)>
4. 근본적이고 철저한 받아들임, 수용 (Radical Acceptance)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설명을 듣다보니 이건 거의 사람을 포기하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데 어떤 것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모가 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일까? 부모가 되더라도 과연 온전히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이것은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와 네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되, 철저히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아마 오랜기간 수련을 해도 완벽히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루미(Rūmῑ)의 <여인숙(The guest house)>
5. 즐거운 활동 경험 일지
마음이 바뀌어서 행동이 자연스럽게 바뀌길 바라지 말고 행동을 바꾸어서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하기. 그 일환으로 “즐거운 활동 경험 일지” 작성이 있다.
이런 이론적 배경들을 모르던 대학생 때 나는 다이어리에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적었었다. 그 중에 하면 기분 좋아지는 목록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주로 좋아하던 행동들은 “좋아하는 영화 보기 (무한 반복)”, “호수공원 자전거 타기(바람 맞으면서)” 이런 유치하고도 순수한 것들이었다. 단순한 것을 적어서 그런가, 실제 그런 행동들을 하면 안 좋던 기분도 금방 나아졌던 것 같다. 어떤 기분일 땐 이런 영화를 본다, 이런 나만의 루틴들도 있었다. 그 영화들은 아직도 생각은 나는데, 지금 다시 보면 그 때처럼 효과가 있지는 않다. 마음도 상황도 모두 변하니까, 그 목록을 계속적으로 업데이트 해 줄 필요가 있다. 그 목록 업데이트를 안 해서 인지, 나이가 그 때보다 많아지고 인생이 더 복잡해져서인지 힘들 때 괜찮아지는 목록을 아예 새로 작성해야 할 지경이다.
6. 자기 자비 (Self-Compassion)
걱정, 염려를 기도, 기원으로 변환한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들으니까. 아무 말이나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망했다.” “구리다.” 이런 말들. 그런데 애를 쓰더라도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설령 정말 망하고 구리더라도, 굳이 한번 더 생각하고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 말을 기도와 기원으로. 내가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나의 마음에 여유가 항상 있기를. 이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이우경 교수님의 저서 <생각빼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장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렌시아(querencia)는 황소가 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만들 수 없더라도 시간적으로도 잠깐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요가를 통해 다이어트나 유연함이 아닌 숨 쉬기를 배웠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손에 꽉 쥐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또 몰려와서 정신 차리기 어려울 때 그리고 내가 그걸 너무 애쓰고 있고 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 그걸 일단 알아차려본다. 그리고 굳이 시간을 내어서 심호흡을 해본다. 처음에는 숨을 들이 쉬며 폐를 가득 채웠다가 내뱉고, 다시 숨을 마시며 공기가 온 몸으로 갔다가 다시 숨이 빠져나가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 없이 내가 있는 장소를 케렌시아로 만들 수 있다.
* 참고 내용 *
- 상담학 사전 (학지사)
- 메리 올리버(Mary Oliver), <기러기(Wild Geese)>
- 루미(Rūmῑ), <여인숙(The guest house)>
- 이우경, <생각빼기의 기술>
이우경 교수님의 서울사이버대학교 마음챙김인지치료 특강(2019년 9월 20일)을 듣고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