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시 졸업했다.
처음, 그러니까 수능을 보고 대학교를 선택하기까지 나와 가족들 사이에는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그때는 가족 어른들의 영향력이 컸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고 싶은 대학 내가 가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등록금도 부모님이 내주는 것이고, 집에서도 계속 살 거니까. 사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 않아도 당연히 동의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현역 정시에서 가, 나, 다 군에 지원한 학교를 모두 합격해서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었는데, 엄마는 안정적인 교대를 가라고 했고, 그것 때문에 또 한 참 싸웠다. 그때는 결국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와 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선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학년이 지나고 과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왔다. 이번에는 아빠까지 나서서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하라고 했다. 나는 내심 일문과나 스페인어과를 가고 싶었다. (영어가 싫었다? 일본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리고 스페인어는 잠깐 배웠었는데 발음이 매력적이고 외국어가 재밌던 것은 처음이어서,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그때는 나도 확신이 없었으니까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로 영문과로 갔다.
영문과에 와보니 외국에서 살다와서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도 영어를 꽤 많이 접하며 살아온 편이지만, 그래도 영어로 생각하고 사전 없이 소설을 술술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런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대학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나마 나의 숨통을 트여준 것은 한국말로 번역된 자료들과 영어일지라도, 소설과 시, 그런 책 자체가 좋았다는 것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고시공부도 해보고, 취업 준비를 하며 전공 외에도 각종 공부를 했다. 법이나 경영, 회계 이런 내용들, 모두 그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한 것들은 아니었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학자와 같은 분들),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텐데 나는 재미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떠한 업무에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되고 (아무래도 일은 하면서 배워야...) 기억에 남는 부분도 많지가 않다. 오히려 기억나는 것들은 공부한 내용이 아니고, 신림동 고시촌 대형 학원에서 무거운 행정법 책을 들고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던 것들이나 학교의 대형강의실에서 하던 경제학 전공 수업에서 점심 먹고 졸리던 그런 장면들.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 흘러 흘러 흘러갔던 20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공부를 해 보기로 한 것은 30대 초반의 나이었다. 사이버대학교 교수님께서 방학 때 전화가 왔었다. 혹시 궁금한 것 없냐고 하셔서 제가 이 공부를 하기에 늦은 것 아니냐고 조금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에도 교수님은 30대 초반, 절대 늦은 것 아니고 이 학과의 특성상 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우선 내 마음이 궁금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지 않을까라는 작은 생각들.
막상 해보니 10대, 20대 때보다 공부할 시간은 없고, 체력은 떨어지지만, 의욕은 충만했다. 30대에 시작한 (그리고 2년 만에 잠시 중단한) 상담심리학 공부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라는 것을 최초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때”라는 것은 나라에서 정한 학제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하고 싶은 공부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관심과 궁금증이 생긴 때가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고시생활 뜬금없는 장면들처럼, 이 30대의 사이버대학교 생활을 하던 모습도 언젠가 한 장면이 되어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