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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 Aug 12. 2022

우리가 당도할 '낯섦'.

낯설어본다_Ep.1

  3주가 흘렀다. 이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여전히 나의 경직된 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낯섦'이라는 모호한 지대에 홀로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마주할 뿐. 뉴질랜드의 좌우가 바뀐 도로, 길거리를 메운 다양한 언어들, 영어로 쓰여있지만 아직 언어가 서툴러 검색해야 이해되는 안내판까지. 풍경 속에 우두커니 놓인 내 모습은 마치 외딴 곳에 놓여진 섬처럼 퍽 처량해 보이겠지 싶다. 3주 차 이방인에게 처량은 제법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7월의 뉴질랜드는 겨울을 지나는 중이고, 일상의 속도감은 밤 6시 이후면 빠르게 정리되었다. 상점들과 간판들의 불빛은 모두 퇴근했다. 무료한 저녁은 나의 고요를 더욱 짙어지게 만들어 줄 뿐. 반면 책상위로 내려앉는 어둠을 빠르게 출근했다. 그때마다 내게 주어진 생경한 '낯섦'을 되려 정면으로 응시하려 한다. 처량한 이방인은 무력할 줄 알았겠지만, 아니다. 실은 어느 정도는 이 상태를 바랐다. 한국에서의 나는 프리랜서 강사, 학생, MBTI 상담으로 여러 모습을 수행했다. 그래서일까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조금은 동적으로 멈춰서 보길 갈망했다. 이곳에 오는 것으로 흐름의 전환점이 잡히길, 해묵은 오랜 감정들이 이완되길 바랐던 것일지 모른다. 코로나 탓에 2년 정도 입국이 늦어진 유학행을 주변 지인들은 덩달아 기뻐하며 축하해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홀로 남겨지는 나는 맞닥뜨린 시간 속에서 내내 어색하다. 그래서 이완을 바라는 건지도 다시 확실치 않은 채 모호할 뿐.

한동안 뉴질랜드에서 머물게 될 Onehunga, Church Street에 위치한 하우스.

 그래서일까, 나는 되려 이 단어를 더 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때에만 허락된 특별한 불편감. 마주한 단어를 비껴서 서지 않고 그대로 성질을 본다. 낯섦은 설렘이나 호기심과는 감정의 결이 다르다. 설렘과 호기심의 온도는 체온보다 다소 높아서 전체의 분위기를 빠른 입자 움직임으로 훑어내는 데 능하다. 이에 반해 낯섦의 온도는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한다. 코로나로 유학길에 오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강한 오클랜드대학교. 내 나름은 2년 동안 소속감이 있었으나 정작 실제로 온 이곳에 흐르는 공기와 시간성은 사뭇 달랐다. 줌에서 온라인으로만 접했던 사람과 공간은 오프라인에서 맞닥뜨렸을 때 경계가 필요한 실제적인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다소 경직된 자세로 전체를 이루고 있는 입자를 하나씩 만져본 뒤에야, 천천히 위축된 마음을 어딘가에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럴 줄로만 알았다.

구글 스트릿뷰로만 봐오던 도심 속 캠퍼스. 개강 전 나 홀로 캠퍼스 투어.

 마음에도 시차가 있는 걸까. 시간이 머물게 될 공간을 여럿 봐 둔 덕에 낯섦이 이탈하는 자리는 설렘이 차지하려 들었다. 낯선 것들에 대한 지극한 반응은 익숙해져야 하고 적응되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현재보다는 미래를 인생살이의 중점에 두고, 미래의 안정감을 꾀하며 사는 것이 지혜인 줄만 알았으니까. 문득 스치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중학 수학을 선행학습하기 위해 학원에 혼자 남아 못다 한 숙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출판사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답안지를 볼 수 있었지만, 정직함을 곧잘 행하던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굳이 선행 학습한다는 것이 와닿지 않기도 했다. 그 덕에 방학 특강 기간 내내 학원 선생님의 야근 유발자가 되었다.

사람도, 자연도, 건물도, 각자만의 시간성을 걸어간다.

 적어도 지금 내가 느끼는 뉴질랜드는 내일의 시간을 미리 선행 학습하지 않아도 된다. 지극히 현재에 충실한 낯섦과 가까이 지내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굳이 앞일을 내다보려 하지 않아도 적응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임을. 지금까지는 약속된 미래로부터 현재의 평안함을 구했고, 뒤틀린 시간성에서 갈길을 잃었다. 지금부터는 적응을 쫓지 않고 자연스레 길을 걸어도 될 것 같다. 이제는 적어도, 시간을 선행 학습하지 않는다 해서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으니.

 적응은 모순에도 순응하며 생존한다. 조금 나와 결이 맞지 않아도 이를 보이며 웃어야 하는 '지난 날의 나' 같아 보인다. 자연스럽지 않고 나답지가 않은 적응과 달리, 낯섦은 모순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발견한다. 비록 지금 인생의 성장 시계가 잠시 멈춘 듯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낯섦에 서서 모순 한잔의 여유를 잠시 홀짝이며. 나답지 않게 미리 웃어 보이기보다 내가 웃을 수 있을 때를 위해 주름진 웃음은 아껴두고 싶다. 잠시 내 시계의 시간을 웃음에 맞춰둔다. 언젠가 도래할 시간을 떠올리며 모순 앞에 습관적인 생존을 택하는 대신, 경직된 채로 모험을 골라 잡수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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